친절한 트럼프 언제까지…

▲ 미ㆍ일 정상회담이 별 탈 없이 지나갔지만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손을 잡았다. 지난 10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ㆍ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환율ㆍ주일미군 문제 등 예민한 사안은 입에 담지 않았다. 대신 ‘친절한 동반자’인양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었다. 문제는 트럼프의 웃음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다. 국제금융시장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보호무역주의를 끊임없이 강조했다. 취임 직후인 1월 23일 일본이 주축이 돼 움직이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일본과 양자 무역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중국과 일본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말하면서 환율전쟁에 시동을 걸기도 했다. 지난 10일 미ㆍ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마찰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 건 이 때문이었다.

CNN방송은 9일 “이번 미ㆍ일 정상회담은 2680억 달러(약 308조원ㆍ양국 통상 규모)의 무역 거래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아베 신조 총리는 미ㆍ일 정상회담에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ㆍ일 정상회담에 숨은 문제

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7일 1148.00원이던 달러가치는 정상회담 전날인 9일 1144.00원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예상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논란거리를 접어둔 채 아베 총리를 만나 활짝 웃었다. ‘19초의 어색한 악수’를 제외하면 논란이 될 만한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의 행보는 전임자들의 외교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정상회담 당일 달러가치가 1150.00원으로 다시 상승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일본도 한숨을 돌렸다. 무엇보다 환율조작국 논란에서 한발짝 빠져나가는데 성공했다. 주일미군 주둔비 증액 문제도 별 이슈가 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도 일본과의 관계 재정립을 주창했던 점을 감안하면 180도 달라진 행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월 31일 제약회사 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면서 “이들은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바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ㆍ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모습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공산은 극히 희박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ㆍ일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통화를 평가절하를 하는 국가들에 불만을 토로해왔다. 미국과 일본, 중국은 공정한 경쟁의 장에 놓이게 될 것이다.”

환율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거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ㆍ일 정상회담에서 환율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약달러와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이어갈 거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방증이다. 그가 환율 문제나 주일미군 주둔비 증액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이유가 아베 총리의 ‘선물보따리’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 전에 ‘미국 내 70만개 일자리 창출’ ‘4500억 달러(약 511조원) 규모의 신시장 창출’ 등을 약속했다. 여기엔 일본 기업들의 미국 투자계획이 포함돼 있다. 일례로 소프트뱅크는 향후 4년간 500억 달러 투자를, 도요타자동차는 향후 5년간 100억 달러 이상의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일본의 기관투자자 역시 미국 인프라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미ㆍ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면서 “일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이유”라고 강조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민감한 사안을 부통령에게 미루고 아베 총리를 환대했다. 2일의 체류 기간 4차례의 식사를 함께 했고, 27홀을 돌며 골프를 했다. 일본 총리가 미국 대통령과 골프를 함께한 건 기시 노부스케(아베 총리의 조부) 전 일본 총리와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함께 라운드를 한 1957년 이후 처음이다. 이례적인 환대였다는 얘기다.

웃으며 악수해도 불확실성 여전

흥미롭게도 양국 정상의 이런 행보는 ‘철저히 주고받는다’는 트럼프식 사고방식과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것을 ‘거래(deal)’라고 표현한다. ‘일본 기업들의 투자 약속’이 구체화하지 않거나 미국 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우호적인 입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이 우려를 나타내는 건 이 때문이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는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많아 다중적인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익숙한 과거가 아닌 트럼프식의 새로운 현실을 맞아 정책적 불확실성이 그 이전보다 확실히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큰 중국과 일본, 독일의 통화가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다음으로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큰 곳이 한국이다. 한국 역시 ‘트럼프발 환율전쟁’의 사정권에 들어 있다는 얘기다. 김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 보면 엔화와 함께 원화도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했다. 결국 외교능력이 한국경제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현 정부의 외교라인은 힘이 빠진 지 오래다.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더 큰 리스크라는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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