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들만 알아듣는 그들만의 언어

“데두리 친다.” “상황을 건다.” “정상을 판다.” 마치 암호 같은 이 말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주로 쓰는 은어隱語다. 중개업자나 투기꾼들 사이에서만 통용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반대로 이들이 쓰는 은어의 뜻을 이해하면 부동산 시장에 접근하기가 수월해진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부동산 시장의 대표 은어들을 살펴봤다.

▲ 부동산 시장에는 업계 관계자가 주로 쓰는 은어가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2015년 개봉한 영화 ‘강남1970’에는 낯선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복부인’ ‘반지를 돌리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단어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배경을 짚어야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다. 땅 투기를 둘러싼 권력 다툼을 담고 있다.

낯선 단어들의 정체는 바로 부동산 시장의 은어다. 감독은 영화의 현실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실제 시장에서 사용하는 은어를 대사에 차용했다. 복부인은 부동산 투기로 큰 이익을 꾀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반지를 돌리다는 말은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를 경우 상품을 소개한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현으로 금반지를 주는 것에서 비롯했다.

은어란 특정 분야에 있는 사람들만 쓰는 언어다.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부동산 시장에도 이런 은어가 많다. 부동산 시장의 은어는 주로 부동산 종사자와 전문 투기꾼들이 수요자를 현혹하고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쓰인다.

반대로 말하면 부동산 시장의 은어를 알면 투기꾼들의 속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쓰는 은어에는 부동산시장의 흐름도 담겨 있다. 일반인들이 알아두면 부동산 경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공산이 크다.

부동산 시장의 대표적인 은어로는 ‘웃돈’이 있다. 웃돈은 지역에 대한 매수자들의 관심을 엿보는 비공식적인 수단이자 지표다. 웃돈이 오른다는 건 일대 부동산 시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증거다.

이 웃돈을 형성하는 게 ‘떴다방’이다. 떴다방은 이동식 부동산 중개업소다. 지방 각지를 돌며 단기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는 분양 시장에 뛰어들어 매물을 확보하고 웃돈을 얹어 되판다. 이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다수 확보한다. 청약 당첨자들의 분양권을 받아 웃돈을 얹어 되팔고 그 차익을 얻기도 한다.

중개업자들이 주로 쓰는 말로는 ‘데두리’ ‘교통’ 등이 있다. 데두리는 중개 업무를 할 때 매물의 가격을 올려 부르는 행위를 말한다. 상가 매매에서는 권리금을 올려 부르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매물로 내놓은 점포의 가격을 1억원으로 책정한 상가주인이 있다. 중개업자들은 통상 이 매물의 10%안팎을 올려 매수인에게 가격을 제시한다. 거래가 성사되면, 데두리 금액은 중개인의 몫이 된다. 일종의 수수료인 셈이다.

잔뼈 굵은 중개업자들 사이에서는 ‘다운 데두리’가 유행이다. 부동산 시장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수요자가 타깃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춘 수요자가 1억원짜리 건물을 7000만원에 원한다. 이들 수요자는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거래도 직접 진행하려 한다. 이럴 경우, 계약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가격 차이가 워낙 커서다. 수요자는 결국 중개업자를 찾아가게 된다.

은어 알아두면 좋은 이유

이때 중개업자는 수요자와 건물주의 심리를 이용한다. 이미 한차례 낮은 가격을 제시받은 건물주에게는 원래 수요자가 제시한 금액인 7000만원보다 높은 금액인 7500만원을 부른다. 그리고 수요자에게는 8500만원으로 올려 계약을 성사시킨다. 이렇게 중개업자가 건물주와 수요자 둘 모두를 속이면 차익 1000만원이 발생한다. ‘다운 데두리’는 이때 중개업자가 챙기는 몫이다. 사실 데두리는 중개업법상 위법행위다. 하지만 시장에서 종종 사용되는 만큼 부동산 구매를 할 때 데두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교통이란 은어도 시장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은 중개업자에게 수요자와 물건이 없을 때 다른 부동산에 고객과 물건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중간에서 그 거래를 성사시키는 경우다. 보통 분양권 시장에서 많이 이용하는 수법이다. 싸게 나온 매물을 중개인이 미리 계약한 후 다시 고객에게 비싸게 되파는 ‘찍기’도 널리 쓰이는 은어다. 시행사나 대행사는 찍기를 하기 위해 웃돈을 얹을 수 있는 자리를 선점한다.

중개업자들 사이에서는 ‘정상’이라는 단어도 쓴다. 집매매 후 40~60일. 임대시 30~40일 안에 빠른 입주가 가능한 물건을 말한다. 주택을 구입 후 원 구매자가 임차인으로 전세를 사는 경우에 쓰는 ‘주전’이라는 말도 일반인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투기 시장에도 은어가 많다. ‘돌려치기’가 대표적이다. 분양권 매매 의뢰를 받은 중개업자가 투기꾼들과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가격을 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 방법으로 가격이 오른 분양권을 실수요자에게 파는 것을 ‘막차 태워 시집 보내기’라고 부른다. 주택매매시 보상금과 입주권 모두를 매매 대상으로 하는 ‘통물건’과 이면계약을 통해 보상금은 투기세력이 갖고 입주권만 매매 대상으로 하는 ‘껍데기’도 자주 쓰이는 은어다.

‘상황걸기’는 상가분양시장에서 쓰는 은어다. 이는 매수자가 전화로 상품은 문의할 때 주변을 소란스럽게 해 계약이 잘되는 분위기인 것처럼 꾸미는 것을 말한다. 상가를 통매입하는 것은 ‘아도치기’라고 한다. ‘뚜껑닫기’는 분양이 되지 않는 자리를 먼저 소진하기 위해 좋은 자리의 물건을 먼저 빼놓는 경우를 의미한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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