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언제까지 규칙을 고수할 텐가

영화 옥자를 아는가. 국내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으니, 별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이들이 숱할 거다. 하지만 옥자에 숨은 함의含意는 상당히 무겁다. 혁신 전략으로 글로벌 영화 업계의 판을 깨뜨리고 있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옥자를 통해 무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은 언제까지 규칙을 고수할 것인가.” 더스쿠프(The SCOOP)가 넷플릭스의 질문을 들어봤다.

▲ 영화 ‘옥자’는 관객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국내 미디어 시장에 미친 영향은 크다.[사진=뉴시스]

30만953명. 영화 ‘옥자’의 최종 성적표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등 손대는 영화마다 흥행 잭팟을 터뜨린 봉준호 감독의 작품치고는 초라한 스코어다. 틸다 스윈튼, 폴 다노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가 출연하고 5000만 달러(약 600억원)가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성적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다. 무엇보다 환경이 좋지 않았다. 국내 상영관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3사가 이 영화를 스크린에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이콧이었는데, 이유는 괘씸죄다. ‘극장 상영 이후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라는 영화 산업의 기본 룰을 깼다는 거다. ‘옥자’는 개봉과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로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5000만 달러의 자본을 대준 게 글로벌 OTT(Over The Topㆍ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동영상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였기 때문이다. ‘옥자’의 초라한 성적을 영화 업계가 온라인 공개와 극장 개봉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사업 방식을 경계한 결과로 봐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경계의 고삐를 바짝 조였음에도 옥자가 극장을 떠난 뒤에도 남은 게 있다.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이다. 영화 업계가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을 견제하기 위해 보이콧을 했는데, 정작 사업 모델이 남았다는 건 역설적이고 흥미로운 결과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옥자’를 통해 한국 미디어 산업에 던진 질문의 의미는 크다.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규칙(스트리밍서비스)이 등장했는데, 언제까지 기존 규칙(영화 개봉 후 스트리밍서비스)을 고수할 지를 묻는다.

이 질문의 함의含意를 찾기 위해선 넷플릭스의 성장 스토리를 봐야 한다. 이 회사는 1997년에 설립된 기업이다. 당시 사업 모델은 오프라인 DVD 렌털 사업.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한 건 10년 뒤인 2007년이다. 그사이 성장세는 놀랍다. 2002년 1억5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넷플릭스의 매출은 지난해 88억 달러를 넘었다. 2002년 주당 8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20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글로벌 유료가입자 수는 1억명으로 불어났다.

옥자의 성적은 진짜 초라했나

이런 놀라운 성장의 배경에는 ‘규칙 바꾸기’ 전략이 있다. 문성길 경기콘텐츠진흥원 산업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넷플릭스의 모델을 분석한 「넷플릭스하다」의 저자다. “‘넷플릭스하다(Netflixed)’라는 말이 있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됐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넷플릭스라는 브랜드가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 이 회사를 단순히 동영상 플랫폼 기업으로 보면 안되는 이유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게임의 규칙을 하나씩 바꿨다. 애초 이 회사는 VOD를 대여하던 동영상 플랫폼 기업이었다. 플랫폼 기업은 이점이 많다. 제품이나 콘텐트가 없어도 플랫폼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를 이어주면 그만이다. 구글ㆍ우버ㆍ에어비앤비 등이 이 전략으로 시장을 잠식한 것처럼 넷플릭스도 세력을 넓혀 나갔다. 무엇보다 넷플릭스는 자체 단말기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넷플릭스가 공급하는 콘텐트를 품을 수 있는 플랫폼을 PC,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셋톱박스, 비디오게임기 등으로 다변화했다.

넷플릭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플랫폼 안에 있는 사용자를 묶어둘 장치를 만들기를 원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트’다. 개방된 플랫폼에 소비자를 모을 수 있는 무기로 ‘콘텐트’를 선택한 것이다. 2013년 공개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넷플릭스가 만든 대표적 콘텐트다. ‘옥자’ 역시 그중 하나다. 넷플릭스가 훌륭한 플랫폼 기업이자 콘텐트 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실제로 2012년 4편에 불과했던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트는 지난해 126편으로 30배 급증했다. 넷플릭스는 내년에도 80억 달러를 콘텐트 제작에 투자할 계획이다.

넷플릭스가 이렇게 규칙을 파괴하자 업계가 흔들렸다. 전통의 미디어 공룡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든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넷플릭스의 전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넷플릭스의 주요 콘텐트 제공업체인 월트디즈니는 “넷플릭스와 계약이 종료되는 2019년 이후 콘텐트를 공급하지 않고 자체 서비스로 공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1세기폭스도 자체 스트리밍 채널을 통한 콘텐트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제 넷플릭스가 던진 질문 “언제까지 규칙을 고수할 텐가”의 함의를 찾아야 할 때다. 국내 콘텐트 제조사들은 자본과 성적에 끌려 다닌다. 시청률에, 입장 관람객 수에 목을 맨다. 그사이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지고 스토리가 산으로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옥자’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리얼’이 그랬다. 국내 OTT 기업의 미래도 밝지만은 않다. 이들은 대부분 이동통신사의 ‘부가 서비스’로만 운영되고 있다. 서비스를 기획한 모기업과 다른 사업의 자본 없이는 자생하기 어려운 구조다.

넷플릭스는 다르다. 이 회사는 ‘창작자들의 재능’에 제작 현장을 맡긴다. 동시에 이용자들의 선호도를 조사한 ‘빅데이터’를 틈틈이 반영한다. 플랫폼 기업이자 콘텐트 제작 기업, 동시에 IT 기업이기도 한 넷플릭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적은 수의 오리지널 콘텐트 하나하나가 세계 각국에서 이슈를 몰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플랫폼+콘텐트 전략

이런 맥락에서 옥자의 초라한 성적표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경쟁력을 얕볼 수 없다. 국내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코드커터(cord cutter)’란 말이 있다. 코드커터는 기존 지상파, 케이블, 위성TV 등을 끊고 인터넷으로 영상 콘텐츠를 즐기는 소비자를 뜻한다. 코드커터가 유행한 덕분에 올해 넷플릭스의 미국 가입자 수는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추월했다. 국내 영화계를 술렁이게 한 넷플릭스의 활약이 어디로 번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넷플릭스의 혁신은 지금부터다. 부지불식간에 한국 업체들이 생존의 기로에 설지 모른다. 넷플릭스의 질문 속에 숨은 함의는 어쩌면 ‘경고장’일지 모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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