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 15도의 비밀

정부는 기름 온도를 15도로 환산해 정유사에 석유수입부과금을 부과ㆍ환급한다. 일부 정유사는 주유소가 요청하면 기름 온도를 15도로 환산해 공급한다. 주유소는 기름 온도를 15도로 환산해 재고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국민만 이런 사실을 모른다. 온도가 1도만 올라도 제값만큼 기름을 못 채운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합리한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산자부는 이 시스템을 고칠 생각이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석유제품 15도의 비밀을 풀어봤다.

▲ 어떤 소비자도 주유소에서 정량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사진=뉴시스]

“날씨가 추워야 기름이 더 많이 들어간다.” 매일같이 차를 굴리는 이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속설이다. 물체의 부피가 온도가 높으면 늘고, 낮으면 줄어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거 없는 속설은 아니다. 석유, 특히 휘발성이 강한 휘발유는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정부는 정유사들로부터 수입부과금을 징수하거나 환급할 때 ‘15도’를 기준점으로 삼는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의 수입ㆍ판매부과금의 징수, 징수유예 및 환급에 관한 고시’ 제3조의 내용을 보자. “물량 단위가 부피 단위인 경우에는 섭씨 15도에서의 물량을 기준으로 한다.” 산자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온도변화에 따라 부피가 변하기 때문에 정확한 세금 징수와 환급을 위해 15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피환산계수표가 기준이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온도보정을 하지 않는 주유소들이 대부분이지만 온도 변화에 따른 손실분을 없애기 위해서 15도로 환산해 공급해달라고 하는 주유소들이 있다”면서 “이런 경우 정유사와의 계약에 따라 무게나 부피 중 하나를 선택해 온도보정을 해서 공급받는다”고 말했다.

주유소도 그렇다. 기름탱크 온도를 15도 기준으로 환산해 재고를 파악한다. 문제는 업계 사람들이 다 아는 진리를 소비자만 모른다는 점이다. 소비자에게 15도를 기준으로 기름을 공급하는 주유소는 단 한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아는 소비자도 거의 없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다. “여름에는 좀 덜 들어가고 겨울에는 좀 더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으니 총량은 똑같다. 이를 고려하면 소비자가 입는 피해는 없다.”

정유사 이익만 대변하는 산자부


사실이 아니다. 실제 두 주유소 휘발유 온도를 비교해보니 같은 날씨인데도 기름 탱크 온도가 달랐다. 주유소 포스(자동계산기계)에는 기름 온도가 명시돼 나오는데, A주유소의 휘발유는 19.7도, B주유소의 휘발유는 22.5도였다. 15도보다 높을 뿐 아니라 기름 탱크 온도를 알고 있다면 A주유소에서 기름을 더 넣을 수 있다.

온도를 의도적으로 높게 설정해 놓으면 소비자는 가격만큼의 기름을 공급받을 수 없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산자부 석유산업과의 부피환산계수표에 따르면 휘발유가 1도 오르내릴 때 1L당 0.001255L의 차이가 발생한다. 2016년 기준 국내 휘발유 소비량(보통휘발유 기준)은 7892만6000배럴(125억4134만1400L)이다. 휘발유 온도가 1도 달라지면 1573만9383L(L당 차이×국내 휘발유 소비량)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해 평균 휘발유 가격은 1402.64원(오피넷 자료 기준).

결국 휘발유 탱크 온도가 1도 오르면 전체 주유소의 매출이 총 220억7668만8171원(1573만9383L×1402.64원) 오른다는 얘기다. 온도가 4도 달라지면 매출 이득은 조단위로 확 늘어난다.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석유제품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이를 공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자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산자부는 석유 유통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황당한 주장이다. 모든 소비자가 내는 간접세 ‘유류세’를 살펴보자. 이 세금엔 수입부과금이 포함돼 있다. 정유사가 부담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입부과금을 실제로는 최종 소비자가 부담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소비자는 15도를 기준으로 기름을 구매할 권한이 있음에도 산자부는 신경도 안 쓰고 있다는 거나 다름없다.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이런 해명도 내놨다. “석유제품 판매 온도를 15도 기준에 맞추려면 별도의 기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주유소의 부담비용이 올라가고, 이는 전체 석유제품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어 오히려 소비자에게 손해다. 또한 우유나 음료도 액체지만, 15도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15도 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주유소들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고, 이에 따라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 부담이 더 커질 거라는 주장이다. 궤변이다. 정부가 석유 유통단계에 ‘15도 기준’을 일괄 적용하면 이를 준수해야 하는 건 기본적으로 공급업체다.

온도만 공개해도 공정거래 가능

비용부담도 주유소가 아니라 정유사 몫이다. 정부는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단속을 해야 한다. 마치 주유소와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말하면서 정유사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15도 기준을 맞추려면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답은 간단하다. 주유소 주유기에서 나오는 기름 온도를 공개하면 끝이다. 익명을 원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주유소처럼 소비자도 온도변화에 따른 정량을 요구하는 건 상식적”이라면서 “추가적인 부담을 하지 않는 선에서 정부가 기준을 만들고 시행하면 시장 참여자들은 따라가는 것”이라면서 개선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럼에도 산자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산자부 석유산업과는 “현재 온도환산거래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온도를 공개할 필요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온도가 1도 변화에 따라 수천억원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겠다는 거다. 문제는 그 피해를 아무런 정보가 없는 국민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