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가성비폰 왜 인기 없나
이통사 공시지원금 적어
비싼 기기 팔아야 남는 장사
매장서도 굳이 추천 안 해

요즘 가성비폰을 찾는 소비자들이 부쩍 늘었다는 기사들이 많습니다.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고객들에게 플래그십 못지않은 성능을 뽐내는 가성비폰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가성비폰을 쓰는 이들을 찾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스마트폰 매장을 직접 방문해 답을 찾아봤습니다.

스마트폰 매장에서 가성비폰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스마트폰 매장에서 가성비폰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매년 비싸지는 스마트폰 가격 얘기를 한번 해보죠. 4~5년 전만 해도 1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의 기본 가격이 100만원을 우습게 넘어갑니다. 이러니 업계에선 ‘폰플레이션(폰+인플레이션)’이란 신조어마저 생길 정도죠.

이렇듯 스마트폰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면서 소비자들의 부담감도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조사한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통신비는 전년 동기보다 7.1% 증가한 13만285원을 기록했습니다. 통신비가 13만원을 넘어선 건 2003년 1분기(13만456원) 이후 20년 만입니다.

통신비 중 스마트폰 기깃값을 포함한 ‘통신장비’ 부문은 같은 기간 2만4000원에서 3만원으로 28.9% 증가했습니다. 통신서비스가 9만8000원에서 10만원으로 1.8% 늘어난 것보다 증가폭이 큽니다. 가계통신비를 늘리는 주범이 스마트폰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깁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소비자는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가성비폰’에 더 많은 눈길을 보냅니다. 대표적인 가성비 모델은 삼성전자 ‘FE(팬 에디션)’ 라인업입니다. 지난 10월 4일 출시한 이 모델은 출고가격이 80만원(256GB 기준)대로 2월에 출시한 플래그십 모델 갤럭시 S23(115만5000원)보다 30만원가량 저렴합니다.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보는 배터리 용량(4500mAh)과 카메라 퀄리티(5000만 화소)도 갤럭시 S23급에 맞췄습니다.

물론 가성비폰이라고 부르기엔 갤럭시 S23 FE의 가격대는 조금 비싸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제품의 인기는 꽤 높습니다.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지난 12월 둘째주 스마트폰 판매 동향에서 갤럭시 S23 FE의 판매량이 9위(KT 판매량 기준)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KT 관계자는 “구체적인 판매량을 밝히긴 어렵지만, 출시 후 4일간 플래그십 모델에 뒤처지지 않는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조금이라도 저렴한 스마트폰을 찾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단 얘기입니다.

30만~40만원대 가성비폰도 눈길을 끕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갤럭시 A34(49만9000원)’ ‘홍미노트 12프로(36만9000원·샤오미)’ 등의 가성비폰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 스마트폰을 리뷰한 유튜브 영상에선 ‘역대급 성능’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검색 결과만 놓고 보면 가성비폰도 꽤 쓸 만해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한 스마트폰 판매점을 방문했습니다. 이통3사 요금제를 모두 취급하는 매장입니다. 직원에게 “갤럭시 A34를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직원의 도움으로 갤럭시 S23과 성능을 비교해 봤습니다.

처음엔 두 제품(이하 S23·A34)의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모두 120㎐의 높은 주사율(초당 보여주는 정지화면 수)을 지원해서인지 터치 반응속도가 빠르고 영상도 끊김 없이 재생됩니다. 배터리 용량은 A34(5000mAh)가 S23(3900mAh)보다 오히려 더 컸죠. 이밖에 고속충전이나 지문인식, 얼굴인식 기능, 간편결제 기능인 삼성페이 등을 탑재한 것도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고객들에게 플래그십 못지않은 성능을 뽐내는 가성비폰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가성비폰을 쓰는 소비자를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통계도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IDCD에 따르면 지난 3분기 플래그십 제품군의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16.4%포인트 상승한 73.7%로 집계됐습니다. 10명 중 7명이 비싼 폰을 사용하고 있단 얘깁니다.

그 이유로 혹자는 가성비폰과 플래그십의 디테일 차이를 논합니다. 물론 세세하게 따져보면 두 제품의 성능 차이는 확연히 드러납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AP(Application Proce ssor)입니다. S23은 스냅드래곤 8 2세대, A34는 디멘시티 1080을 탑재했습니다. AP 비교 사이트 나노리뷰에 따르면 두 AP의 성능을 따져 매긴 종합 점수는 각각 93점과 46점이었습니다. 두 AP의 성능이 2배가량 차이 나는 셈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후면 카메라 화소 수도 S23(5000만 화소)이 A34(4800만 화소)보다 더 높습니다. 이 때문인지 사진을 확대했을 때 S23이 좀 더 선명한 화질을 자랑했고, 색감도 뛰어났습니다.

여러 앱을 동시에 실행할 때 요구되는 램 사양에서도 차이가 드러납니다. 8GB인 S23은 3~4가지 앱을 켜도 문제없이 돌아갔지만, 6GB인 A34는 다소 버벅대는 모습을 보여줬죠. 저장공간도 S23(256GB)이 A34(128GB)보다 2배 더 많습니다. 하지만 두 제품의 가격 차이가 2배나 된다는 점에서 이 정도 성능 차이는 당연한 듯합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를 생각하면 가성비폰은 여전히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 가성비폰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실 여기엔 판매자의 개입이 은근슬쩍 작용합니다. 보통 스마트폰을 살 때 소비자는 통신사로부터 ‘공시지원금’을 받습니다. 자사 요금제를 쓰는 대가로 기깃값을 깎아주는 게 공시지원금의 골자죠.

스마트폰 대리점은 “가성비폰을 먼저 추천하진 않는다”고 답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스마트폰 대리점은 “가성비폰을 먼저 추천하진 않는다”고 답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플래그십 스마트폰은 수십만원의 공시지원금을 받습니다만, 가성비폰은 얼마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로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싼 요금제를 쓸수록 공시지원금이 많이 나오는데, 가성비폰 구매자는 저렴하게 사려는 목적이 크기 때문에 비싼 요금제를 쓸 확률이 적다”면서 “가성비폰 공시지원금이 적은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스마트폰 매장에서도 소비자들에게 가성비폰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팔아봐야 마진이 얼마 남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죠. 통신사든 매장이든 사실상 비싼 폰으로 판매를 유도하는 셈입니다.

다시 매장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40만원 후반대의 A34는 고물가 탓에 지갑이 사실상 얇아진 기자에겐 매력적이었습니다. 판매점 직원도 “고사양 게임을 즐기거나 사진·동영상 화질에 민감한 분들이 아니면 A34도 충분히 좋다”고 추전했죠. 그래서 직원에게 ‘평소 갤럭시 A34를 찾는 고객들이 많으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뇨. 오늘, 아니 제 기억에 최근 일주일간 A34 기종을 콕 집어서 보여달라고 한 건 고객님이 처음이에요.” 여기서 나눈 대화를 1문1답으로 쉽게 풀어볼까요?

기자 : “그럼 가성비폰을 알고 온 소비자들은 거의 없다는 말인가요?”
직원 : “그렇죠. 그런 소비자들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자급제폰을 사서 쓸 거예요.”
기자 : “왜 그렇죠?”
직원 : “어차피 이 정도로 가격이 싼 폰은 통신사에서 주는 공시지원금이 거의 안 나와서 판매점에서 구입하나 인터넷에서 사나 가격이 비슷하거든요. 간혹 공시지원금을 20만원까지 주기도 하는데 이땐 요금제를 엄청 비싼 걸 써야 한다는 약정 조건이 붙어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들이 굳이 매장까지 와서 살 이유가 없는 거죠.”

직원의 말을 들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기자가 갤럭시 A34를 말하지 않았더라면, 직원이 이 제품부터 먼저 보여줬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겁니다. 판매점 입장에선 마진도 별로 안 남는 가성비폰보단 비싼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파는 게 더 이득일 테니까요.

가게를 나온 기자는 이번엔 통신사 직영의 대리점을 방문했습니다. 직원에게 갤럭시 A34나 샤오미 홍미노트 12프로 같은 가성비폰이 팔리느냐고 묻자 ‘이름을 알고 오는 고객은 거의 없다’는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고객에게 먼저 가성비폰을 권하기도 하느냐’는 질문에 직원은 “고객이 찾지 않는 이상 대리점 직원이 먼저 권유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답하며 말을 이었습니다. “비싼 스마트폰을 팔아야 대리점에서도 남는 게 많아요. 기기 한 대당 떨어지는 마진도 마진이지만 무엇보다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쓰는 고객들은 통신사 요금제도 비싼 걸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비싼 요금제를 쓸수록 매장도 통신사로부터 받는 게 많죠.”

가성비폰을 구매하려면 직원을 거쳐야 하는데, 고객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한 직원이 나서서 제품을 보여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휴대전화 판매점이든 대리점이든 가성비폰을 접하는 게 쉽지 않은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여기까지가 가성비폰 시장 밑단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공부해 오지 않으면 매장에서 가성비폰을 추천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습니다. ‘효도폰’이란 콘셉트로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성능이 한참 뒤떨어지는 구형 모델이어서 가성비폰이라고 부르기는 힘듭니다. 매장 어딘가에 꼭꼭 숨겨놓은 가성비폰의 현실,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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