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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세계경제 스타 美·日
日 임금상승, 美 미들아웃 신드롬
英, 낙수효과 재추진에 총리 낙마
日 “한국 평균임금 높아 더 부유”
美 연착륙 비결 ‘고임금+저물가’

미국과 일본은 2023년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썼다. 미국은 가파른 임금 인상에도 물가를 낮추고 최저 실업률을 유지했다. 일본은 임금 인상으로 중산층 소득을 높여 디플레이션 탈출이 임박했다. 2020년의 한국, 2023년의 미국을 롤모델 삼아 움직이는 일본의 전략과 이와 반대로 움직이는 우리의 전략을 살펴봤다.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 美·日 성장 원인=2023년 세계 경제의 화두는 미국과 일본의 약진이었다. 금리인하기가 아직 오지 않아 최종 승자라고 표현할 순 없지만, 적어도 세계 경제계의 스타가 두 나라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 중심엔 임금 인상이란 화두가 있었다. 

일본은 수십년간의 디플레이션에서 마침내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이후 3년 연속 물가상승률 2%를 상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 인플레이션율은 2023년 7월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했고, 11월에도 2.8% 상승했다. 

미국도 임금상승과 물가하락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주목받았다. 미국의 중앙은행 관료들과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의 임금상승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자 2022년 초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임금상승, 최저실업률, 물가하락을 이어갔고, 학자들과 관료들은 이론을 수정해야 했다. 

임금상승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현상은 낙수효과(trickle down)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에서는 2022년 10월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대기업과 고소득자 감세라는 낙수효과 정책을 추진하다가 취임 45일 만에 낙마했다. 대책 없는 부자 감세와 낙수효과 기대를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파운드화와 국채가치는 폭락했고, 총리도 자리에서 내려왔다. 

영국은 2010년 이후 평균 실질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팬데믹으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많은 사람이 생활비 부족으로 곤욕을 치르던 상황이었다. 영국 매체 트리뷴은 2022년 4월 ‘신자유주의가 생활비 위기를 불러오는 방법’이라는 기사에서 “영국의 유연한 노동으로 발생한 저임금 문제가 생활비 부족을 불러왔다”며 “에너지 가격과 임대료를 통제하고, 임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일본의 롤모델➊ 2020년 한국=일본 출판그룹 슈에이샤 온라인판은 8일 ‘일본과 한국, 누가 더 부유할까’라는 기사에서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의 신간 「일본 경제는 어떻게 부활할 수 있을까」의 내용을 요약 보도하며 “한국은 일본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적지만, 평균임금은 더 높아 부유하다”고 결론지었다.

노구치 교수는 저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0년 통계를 사용해 “일본의 1인당 GDP는 4만88달러로 한국의 3만1638달러보다 많지만, 한국의 평균임금(취업자 1인당 GDP)이 더 많다”면서 “GDP에는 정부지출‧ 설비투자 등이 포함되지만 임금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여유 시간을 확보하는 게 가능해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취임 이후 중산층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취임 이후 중산층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료 | 일본 총무성, 전년 대비]
[자료 | 일본 총무성, 전년 대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월 7일 NHK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올해 민관이 힘을 합쳐 물가상승에 지지 않는 임금 인상을 실현하겠다”며 중산층 소득 주도의 경제성장을 강조했다. 일본은 기업들에 법인세 세금감면이라는 당근을 주면서까지 임금 인상을 유도해왔다.

최근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18개월 연속으로 실질임금이 줄어들자, 미야자와 요이치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2023년 12월 늘어나는 사내유보금 문제를 지적하며 법인세 인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은 최저임금도 2016년 이후 매년 3% 이상 올렸다(2020년 제외). 

그런데 2024년의 한국은 2020년과는 다른 길을 택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올해 우리 정부는 대기업과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한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세법 개정안으로 서민·중산층 세부담이 5504억원 감소하고, 고소득자 세부담은 590억원 줄어들며, 대기업 세금도 1363억원 축소된다고 수정했다.

세법 개정안으로 서민‧중산층뿐만 아니라 고소득층이나 대기업도 상당한 수혜를 입는다는 건데, 정부는 애초 서민‧중산층 세부담이 6302억원 줄고, 고소득자 세부담은 710억원 준다고 주장했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월 2일 한국거래소에서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일본의 롤모델➋ 2023년 미국=미국의 고용시장은 2023년 12월에도 여전히 뜨거웠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지난 5일 “이제 임금 인상이 물가상승률을 앞서고 있다”며 “중산층 가정의 진전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미 노동부는 2023년 12월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보다 21만6000개 증가하고, 시간당 평균임금이 늘었으며, 실업률은 시장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낮은 3.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옐런 재무장관은 “고용을 약화시키지 않은 채 인플레를 낮추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우리 실업률은 23개월 연속 4%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며 연착륙을 자신했다. 

미국에서는 ‘중산층 주도 경제성장(미들아웃‧Middle-out)’의 효과가 확인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들아웃이란 중산층의 소비를 끌어올려 경제성장에 나서야 한다는 말로, 중산층인 임금근로자들의 소득을 높이는 정책의 이론적 배경이다. 미들아웃은 대기업과 부자들의 소비가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대표적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인 낙수효과의 효력이 증명되지 못한 반발로 등장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 5일 “고용을 약화시키지 않고 인플레를 낮췄다”며 연착륙을 자신했다. [사진=뉴시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 5일 “고용을 약화시키지 않고 인플레를 낮췄다”며 연착륙을 자신했다. [사진=뉴시스]

미 재무부가 2023년 12월 발표한 ‘미국 가구의 구매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실질임금 증가율은 지난 1년 동안 0.8%를 기록하며 최근 10여년간 평균 증가율보다 높았다. 미국 근로자의 지난해 중위 연소득은 2019년보다 1000달러 많았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까지 OECD 회원국들의 가계 실질소득은 4분기 연속 증가했다. 미국은 지난해 1분기, 2분기 실질소득이 각각 2.3%, 0.5% 증가하면서 캐나다에 이어서 두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21년 10월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으면 소비와 수요가 살아나지 않아 경제성장을 바랄 수 없다”며 임금과 소득의 증대를 강조해왔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도 지난 4일 “지난해는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의 흐름을 전환한 한해였다”며 “2024년에도 임금과 물가가 균형 있게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중산층 소득을 높여 디플레이션 탈출이 임박하는 과정은 다른 나라들의 경제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경제매체 로이터에 따르면 태국은 지난해 12월 최저임금을 2.37% 인상하면서 올해 1월에 또 최저임금 인상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세타 타위신 태국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2024년 3월에도 추가로 임금 인상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며 -“최저임금을 1년에 한번 인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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