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법인카드: 부당 사용과 구멍➊ 
공공기관 법카 제대로 사용하나
총규모 집계하지 않는 정부
법인카드 제한업종 속 촌극
룸살롱서 못 쓰니 카바레로 우회
법인카드에 내재된 탐욕과 공돈

# 분명 국민이 만들어준 돈인데, 얼마만큼 사용하는지 모른다. 2006년 이후 17년간 공식 집계한 적도 없다. 총규모를 모르니, 다른 정보가 투명할 리 없다. 불·편법으로 결제한 돈을 제대로 회수했는지, 나랏돈을 쌈짓돈 취급한 이들을 엄정하게 처벌했는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공공기관 법인카드의 ‘비뚤어진 자화상自畵像’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 답을 찾기 위해 더스쿠프가 視리즈 「법인카드: 부당 사용과 구멍」을 기획했다. 공공기관 사람들이 법인카드를 불·편법적으로 사용한 흔적을 탐사하고, 거기에 숨은 허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그 첫번째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법망 밖 쌈짓돈 

누가 봐도 나랏돈인데, 얼마나 쓰는지 모른다. 규모가 작지도 않다. 마지막으로 집계한 2006년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2조원에 이른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일 거다(표➊ 참조). 그렇다고 ‘불·편법적 사용’을 통제하는 개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19년 ‘공공재정 부정청구 금지 및 부정이익 환수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이 나랏돈을 규제하는 내용은 빠졌다.
 
# 나랏돈의 실체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이 돈의 실체를 알아챘을지 모른다. 맞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법인카드’ 얘기다. 규모도 모르고, 개별법도 없으니, 법인카드를 통해 빠져나가는 나랏돈이 정상일 리 없다.

실제로 법인카드의 불·편법 결제내역은 단골메뉴처럼 ‘국정감사 테이블’에 오르고, 허구한 날 똑같은 질책을 받는다. 2023년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어김없이 ‘질책의 도마’에 올랐다. 일부를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례➊]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A씨는 한국지역난방공사 파견직원의 법인카드로 3년에 걸쳐 3800만원어치를 결제했다. 그중엔 A씨 가족이 먹은 한웃값 51만5000원이 들어있었다. 중앙공무원이 공사의 법인카드를 쌈짓돈처럼 굴린 셈이다. 

[사례➋] 창업진흥원 간부 B씨는 관용차 전기차 충전카드로 자신의 벤츠 전기차를 50회가량 충전했다. 창업진흥원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사례➌] 여기까진 약과다. 툭하면 ‘비리의 늪’에 매몰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은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5년 6개월간 법인카드로 2038억원을 결제했다. 월 30억8787만원, 하루에만 1억원을 법인카드로 긁었다는 거다(표➋ 참조). 모두 국민의 돈이다. 

# 공무원스러운 대책

공공기관이 법인카드를 얼마나 함부로 썼는지 엿볼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역설적이지만 2007년 국가청렴위원회, 2011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기관에 전달한 ‘법인카드 사용지침’을 통해서다.[※참고: 국민권익위는 국가청렴위원회·국민고충처리위원회·행정심판위원회를 통합한 조직이다. 2008년 신설했다.] 

[※참고: 2007년 국가청렴위가 조사한 공공기관 법인카드 자료의 기준점은 2006년이었다.]
[※참고: 2007년 국가청렴위가 조사한 공공기관 법인카드 자료의 기준점은 2006년이었다.]

시계추를 2007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10월 국가청렴위는 6쪽짜리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공공기관 법인카드 불법사용 감시강화’란 제목의 자료였다. 국가청렴위가 내놓은 대책은 크게 세가지였다.

가. 법인카드 색상·디자인을 특화해 일반카드와 구별
나. 법인카드 사용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 확립 
다. 모든 공공기관 법인카드 클린카드 의무화

언뜻 효율적인 대책을 제시한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공공기관 법인카드의 색이나 디자인을 튀게 만들면 사용자가 부담을 느낄 것”이란 발상은 그 자체로 공무원스러웠다.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겠다”는 대책은 낡아빠진 일반론에 불과했다. 더 황당한 건 법인카드를 의무적으로 ‘클린화’하겠다는 대책의 내용이었다. 

# 황당한 우회 

국가청렴위가 꺼내든 ‘클린카드’는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법인카드를 업무와 무관한 업종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를테면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제한업종’을 만들겠다는 거였다.

문제는 제한업종이라고 나열한 게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다. “…룸살롱, 유흥주점, 나이트클럽, 안마시술소, 전화방, 카지노, 성인용품점….”  이를 뒤집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했다. “공공기관 사람들이 나랏돈을 얼마나 쌈짓돈 취급해 왔으면 룸살롱·안마시술소에서 법인카드를 쓰는 것까지 제도적으로 막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제한업종’을 규정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1년 10월 국민권익위는 “공공기관들이 2007년 청렴위가 권고한 내용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제한업종을 추가로 발표했는데, 이 역시 국민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카바레, 요정, 스포츠마사지….” 공공기관 임직원이 룸살롱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지자 카바레나 요정으로 우회했다는 걸 시사하는 추가대책이었다.

도대체 공공기관은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법인카드를 어디서 어떻게 써왔던 걸까. 이젠 카바레나 요정에서도 사용할 수 없으니 어떤 꼼수를 동원해 법인카드를 긁어대고 있을까. 

# 인간의 부패 습성  

“돈은 성격을 부패시키는 게 아니라  부패한 성격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 뤼디거 달케-

많은 이들이 ‘부패의 원인’을 돈에서 찾는다. 돈이 인간의 심성을 타락시킨다는 거다. 하지만 독일을 대표하는 의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뤼디거 달케(Ruediger Dahlke)는 다른 의견을 낸다. “돈은 인간의 부패한 성격을 드러나게 만드는 요인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탐욕은 돈을 마주하는 순간 통제력을 잃는다는 거다. 

이런 부패적 성향은 ‘공돈’ 앞에서 더 도드라진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도박꾼의 통 큰 베팅에 빗대 ‘공돈 효과(House money effect)’를 설파했다. “… 도박꾼은 속칭 하우스에서 딴 돈을 공짜로 번 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도박꾼은 베팅을 통 크게 한다….” 공돈일수록 마구잡이로 쓸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리처드 탈러의 ‘공돈 효과’는 통제망이 허술한 공공기관의 밑단을 관통한다. 공공기관 사람들은 ‘내 돈’이라면 감히 사용하지 못할 곳에서 법인카드를 마구 써댄다. 법인카드로 자신의 전기차를 충전하고, 룸살롱이 막히면 카바레로, 카바레가 막히면 또 어딘가로 우회한다. 웃지 못할 모순이자 전형적인 모럴해저드다. 이런 탐욕의 극치 앞에서 우린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과연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강서구·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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