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된 웹소설 넘겨보기
지잡 아카데미와 폐급 히로인들
우수한 아카데미 아닌 이곳
잡인생이지만 성장하는 인물들

졸업장을 위해 진학한 학생들이 모인 아카데미에서는 잡인생의 민낯을 보여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졸업장을 위해 진학한 학생들이 모인 아카데미에서는 잡인생의 민낯을 보여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젠 관심 장르로 자리 잡은 ‘아카데미물’의 인기는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전교 1등 이야기, 기상천외한 동아리 스토리, 테러리스트와 싸우거나 세계를 구하는 극단적인 설정을 답습한 천편일률적인 작품들이 잇따른 탓에 “또 아카데미냐?”는 빈축도 숱했다.

속칭 ‘또카데미’가 범람한 와중에 등장한 웹소설 「지잡 아카데미와 폐급 히로인들(이하 지잡아카)」은 아카데미물 전성기의 끝무렵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독특한 차별점을 갖췄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의 배경은 ‘지잡’ 아카데미다. ‘지잡’은 지방의 잡스러운 대학교란 멸칭蔑稱(경멸하며 일컬음)에서 비롯됐다.

「지잡아카」는 학벌주의가 만들어낸 환장할 만한 모습의 현실 속 지방대를 ‘지잡 아카데미’로 재현한다. 작중 배경인 ‘헤오든 아카데미’는 역사가 짧은 삼류 아카데미로 묘사된다. 대부분의 학생은 그저 졸업장만 필요하다. 능력 있는 소수는 일류 아카데미에 가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몸을 떨거나, 정치질과 알력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음울한 배경 속 등장인물들의 갈등은 거대한 대적이 아니라 하자 있는 사람들의 자기파괴에서 비롯된다. 「지잡아카」엔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마왕이나 악의 조직따윈 없다. 화려한 인간 승리의 서사가 아니라 서로 물어뜯는 아귀다툼 속 ‘잡’인생의 민낯을 보여준다.

스토리의 중심은 주인공 ‘데만’이 잡는다. 데만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병들어 있다. 학대받은 기억, 자신이 저지른 실수, 가족의 강요 등이 이들을 무력감의 구덩이로 밀어넣는다. 가령, 여주인공 ‘카이트’에게 아카데미는 일종의 놀이터다. 영주領主의 사생아인 카이트의 운명은 다른 귀족에게 후처로 팔려가는 것이다. 남성을 즐겁게하는 재주만 익히며 길러진 카이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는 아주 작은 몸부림으로 아카데미 입학을 졸랐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카이트는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의 ‘좋은 사람’은 소꿉친구인 데만이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카데미는 팔려가기 직전 얻어낸 유예遊藝의 공간일 뿐이다. 카이트는 그 유예를 데만과의 사랑으로 채우고 싶지만 주변의 따돌림과 멸시, 능력 부족으로 그러지 못한다. 음습한 성격과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의심으로 끊임없이 데만을 보채고 성가시게 만든다.

아귀다툼 속 잡인생

또다른 인물로 시선을 돌려보면 카이트의 칭얼거림과 투정은 귀여울 정도다. 남을 지배하지 않으면 도무지 안심하지 못하는 ‘리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성깔을 부리는 ‘티리아’의 모습을 보면, 이들과 같은 인간이 실제로 주변에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마치 불쾌한 인물의 불쾌한 행동이 소설에 가득 차있을 듯하지만, 이야기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계는 볼만하다. 등장인물, 주로 데만이 각자의 처지와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기본적으로 이 소설 또한 아카데미물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아카데미물의 테마는 교육을 받아 능력을 꽃피우는 것이다. 때때로 버거운 장면에 소설을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더라도, 마침내 이들이 한발짝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슬그머니 웃음이 흘러나온다.

김상훈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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