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통계의 함정: 알뜰폰 오류➊
알뜰폰 고성장 보도하는 언론들
정부 “알뜰폰 가입자 1585만명”
사실이라면 10명 중 2명 알뜰폰
하지만 실제 가입자 800만여명
차량관제 포함돼 수치 부풀려져
거품 걷어낸 알뜰폰의 자화상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알뜰폰 가입자 수엔 치명적인 ‘통계 오류’가 숨어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알뜰폰 가입자 수엔 치명적인 ‘통계 오류’가 숨어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알뜰폰 가입자가 1500만명을 넘었습니다. 온갖 언론 매체들은 ‘알뜰폰이 드디어 꽃을 피웠다’는 내용의 기사를 앞다퉈 쏟아냈습니다. 사실 가입자 1500만명은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가 8300여만명 수준이니, 국내 소비자 10명 중 2명이 알뜰폰을 사용하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알뜰폰 가입자는 정말 그렇게나 많을까요?

#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알뜰폰 1500만명은 ‘통계의 함정’에 빠진 결과에 불과합니다. 알뜰폰 외 항목을 알뜰폰으로 간주한 탓에 수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진 겁니다. 사실 알뜰폰 가입자 수는 과거와 비교해 그다지 늘지 않았습니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이 통계 결과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더스쿠프가 통계의 함정에 빠진 알뜰폰 시장의 현실을 다시 짚어봤습니다. 더스쿠프 視리즈  ‘통계의 함정: 알뜰폰 오류’ 첫 번째 편입니다.


‘알뜰폰 가입자 1500만명 육박, 이동통신사 견제세력으로 급성장’ ‘“약정노예·고가요금제 싫어” 1500만명이 알뜰폰 택했다’ ‘성장 주춤했던 알뜰폰 불씨 살아날까’….

최근 알뜰폰 업계를 다룬 언론 매체들의 기사 제목입니다. 이 내용처럼 알뜰폰은 최근 들어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내 알뜰폰 가입자 수는 1585만1473명에 달합니다.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8389만1773명이니, 국내 소비자 10명 중 2명이 알뜰폰을 사용하는 셈입니다.

통계만 보면, 알뜰폰이 SK텔레콤·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의 대항마로 부상한 건 분명한 듯합니다. 가입자 수가 업계 3위(가입자 기준)인 KT(1775만8837명)와 맞먹는 수준이니까요.

알뜰폰 가입자 수가 1500만명이 넘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소비자들은 정말 통계에 나타난 것처럼 알뜰폰을 많이 쓰고 있는 걸까요? 10명 중 2명이 알뜰폰 가입자라고 하는데, 주변에서 ‘알뜰폰 요금제를 쓴다’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든 건 왜일까요? 알뜰폰 가입자가 1500만명을 넘었다는 통계는 사실일까요?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통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985년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는 전년도 졸업생들의 초봉을 조사해 학과별로 평균값을 내봤습니다. 그 결과, 문화지리학과 학생들이 가장 많은 초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영이나 무역·의대·법대 등 돈 잘 벌기로 유명한 학과들을 모조리 따돌렸죠.

문화지리학과 학생들이 모두 유능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문화지리학과 학생이었던 그가 NBA에 입단하면서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았고, 이것이 통계에 반영되면서 문화지리학과 졸업생의 평균 초봉값이 크게 늘어난 겁니다.

조던도 문화지리학과 졸업생이니 통계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통계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힘듭니다. 이는 데이터 통계의 ‘함정’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입니다.

■ 질문❶ 가입자 수 왜 부풀려졌나=자, 이런 관점에서 알뜰폰 통계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과기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무선 통신서비스 통계 현황’이란 통계정보를 주기적으로 발표합니다. 이 통계는 ▲이동통신 기술방식, ▲이동통신 용도, ▲이동통신 가입유형 등 다양한 분류법으로 무선 통신 서비스에 가입한 회선 수를 보여줍니다.

그중 ‘이동통신 기술방식별 회선 현황’을 보겠습니다. 여기엔 ‘가상이동통신망 사업자(MVNO)’란 항목이 있습니다. 일단 통계치부터 볼까요? 흥미롭게도 2023년 12월 기준 MVNO 회선 수는 1585만1473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앞서 들었던 알뜰폰 가입자 수와 일치합니다.

마이클 조던의 연봉이 적용된 전체  졸업생의 초봉 평균값이 급상승한 건 ‘통계의 함정’ 중 유명한 사례로 꼽힌다.[사진=연합뉴스]
마이클 조던의 연봉과 노스캐롤라이나 졸업생 평균 초봉의 상관관계는 유명한 통계의 오류 사례로 꼽힌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숫자가 같다고 해서 ‘MVNO가 알뜰폰’이란 건 아닙니다. 먼저 MVNO의 사전적 정의부터 들어보시죠. “MVNO는 물리적인 이동통신망을 보유하지 않고, 이동통신망 사업자로부터 임차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이통3사로부터 통신망을 빌려 쓰는 사업자는 모두 MVNO라는 겁니다. 알뜰폰도 이통3사의 통신망을 가져다 쓰니 MVNO에 속하죠.

여기서 중요한 건 ‘알뜰폰만이 MVNO는 아니다’란 점입니다. 태블릿PC나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부터, 기계 간 통신이 이뤄지는 ‘사물지능통신(Machine to Mach ine)’도 MVNO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중에서 알뜰폰처럼 이통3사의 망을 빌려 쓰는 업체가 꽤 있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요금제든 사물지능통신이든 기지국을 빌려 쓴다면 모두 MVNO라는 겁니다.

이번엔 ‘이동통신 용도별 회선 수’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항목은 쓰임새에 따라 분류한 회선 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중 ‘고객용 휴대전화 MVNO’라는 분류 기준이 눈에 띕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짜 알뜰폰 가입자 수’입니다. 2023년 12월 기준 고객용 휴대전화 MVNO 회선 수는 871만9267명으로, 앞서 봤던 MVNO 회선 수(1585만1473개)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 질문➋ MVNO 왜 급증했나=그럼 알뜰폰·사물지능통신 등을 포함한 MVNO 회선 수는 어떻게 15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급격히 늘어난 걸까요? 답은 사물지능통신에 속해 있는 ‘차량관제’에 있습니다.

2019년 12월 25만1667개였던 차량관제 회선 수는 이듬해인 2020년 12월에 214만779개로 1년 만에 8.5배가 됐습니다. 이는 과기부가 2020년 10월부터 이동통신망 사업자(MNO)에 속해 있던 차량관제를 MVNO로 옮긴 데 따른 결과입니다. [※참고: MNO는 MVNO에 통신망을 빌려주는 사업자로, 이통3사가 여기에 속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과기부가 분류 기준을 바꾼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차량관제는 우리에게 친숙한 ‘커넥티드카’를 만들 때 쓰이는 통신 기술입니다. 자동차에 이동통신 기술의 일종인 차량관제를 접목해 자율주행을 비롯한 각종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커넥티드카의 골자입니다.

커넥티드카를 위해서 현대차·벤츠코리아·기아 등 자동차 업체들은 몇년 전부터 MVNO 사업자 자격을 취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겁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과기부도 차량관제 회선 수를 MNO가 아닌 MVNO로 집계하기 시작한 거죠.

이후 자동차 업체들은 앞다퉈 MVNO 사업자를 얻어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본격화했고, 그에 따라 차량관제 회선 수도 급증했습니다. 현재 회선 수는 604만2992개(2023년 12월)로 3년 전(214만779개)보다 3배 증가했죠.


자! 이제 MVNO 가입자가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이유를 아셨을 겁니다. NBA에 입단해 수백억원의 연봉을 받았던 마이클 조던이 문화지리학과 졸업생들의 평균 초봉을 끌어올렸듯, 커넥티드카 열풍으로 불어난 차량관제 회선 수가 전체 MVNO 회선 수를 견인한 겁니다.

물론 과기부가 집계한 통계 자체엔 큰 결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류 기준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MVNO를 알뜰폰으로 단순 치환해 보도한 언론 매체들에 있습니다. 2021년 11월 공개적으로 ‘알뜰폰 1000만명 돌파’를 자축했던 과기부도 이런 표현법이 옳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기부 관계자는 “국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MVNO의 브랜드명으로서 알뜰폰이란 이름을 썼을 뿐이다”고 말했습니다만, ‘알뜰폰이 곧 MVNO’란 잘못된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더스쿠프도 이 논란에서 자유롭진 못합니다. 이 기사를 쓰기 전까진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알뜰폰 가입자 수를 집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턴 올바른 방식으로 알뜰폰 가입자 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국내 알뜰폰 가입자 수는 2023년 12월 기준 871만9267명입니다. 지난 5년간 증가한 수는 170만명으로, 증가율은 23.0%에 그칩니다. 사실상 알뜰폰 산업이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혹자는 “알뜰폰 통계가 잘못됐고, 가입자가 별로 늘지 않았다는 게 소비자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당장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알뜰폰 시장의 현실은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뜰폰은 ‘소비자의 가계 통신비 경감’이란 분명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입된 서비스입니다. 이런 알뜰폰이 정체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소비자의 가계 통신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알뜰폰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통계적 오류’를 걷어낸 알뜰폰엔 어떤 문제가 깔려 있을까요. 이 질문의 답은 視리즈 ‘통계의 함정: 알뜰폰 오류’ 두번째 편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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