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➌
같은 사안엔 판결 같아야 상식적
현실은 한 법원서도 판결 제각각
쪼개기 소송만 막아도 모순 해결

# 지난 2월 더스쿠프는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 1편 ‘7년 전 글꼴 도용했습니다: 갑자기 저작권 소장이 날아왔다(통권 586호)’란 기사에서 무분별한 글꼴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던 한 비영리법인의 사례를 소개했다.

# 그러면서 해당 재판에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비영리단체는 똑같은 사안 탓으로 ‘쪼개기 소송’을 당했는데, 건별로 전혀 다른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 마지막 편이다. 

비슷한 사안에서는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비슷한 사안에서는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가정을 하나 해보자. A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했다. B도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했다. 운전자나 사망자의 상태, 음주 수치, 사고 장소와 방식, 심지어 차종까지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법원이 A에겐 무죄를, B에겐 징역형을 선고했다면 어떻겠는가. 많은 이가 ‘이상한 재판’ 혹은 ‘불공정한 재판’이라고 비판할 게 분명하다. 비슷한 재판이라면 그 결과도 비슷해야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여기 조금은 상식적이지 않은 재판이 있다. 글꼴개발업체 C사와 비영리법인 러빙핸즈 간 글꼴 저작권 침해 재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가 통권 586호(2024년 2월 19일 발간)에서 보도한 ‘7년 전 글꼴 도용했습니다: 갑자기 저작권 소장이 날아왔다’란 기사를 복기해보자. 

러빙핸즈는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들을 돕는 NGO다. NGO엔 거쳐 가는 자원봉사자들도 숱하다. 2013년 러빙핸즈에서 활동한 한 자원봉사자는 인터넷에서 ‘비영리 목적이라면 무료’라고 전제된 글꼴프로그램을 내려받아 러빙핸즈 홍보물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다. ‘(비영리 목적이라면 무료이니) 비영리법인에서 사용하는 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글꼴을 사용한 것도 한두 문장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햇수로 7년 후인 2019년, 해당 글꼴 저작권을 가진 글꼴개발업체 C사가 러빙핸즈에 “저작권을 침해했다”면서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당초 러빙핸즈는 C사와 합의를 하려 했다. 의도치 않게 C사의 글꼴을 또 다른 홍보물에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모든 문제를 함께 합의하길 원했다. 

하지만 C사는 이미 500건 이상의 형사고소를 진행한 이력이 있는 저작권 관련 소송의 베테랑이었고,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실제 사용한 글꼴의 가격이 아닌 글꼴 패키지 가격을 제시했다. 낱개로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니 묶음상품 가격을 내라는 거였다. 

게다가 C사는 또다른 저작권 침해 사례가 나온다면 건별로 합의금을 요구하겠다고 주장했다. 일괄 합의를 거절했던 거다. 러빙핸즈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합의에 실패했고, 소송으로 이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과정에서 종종 저작권 침해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원봉사자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과정에서 종종 저작권 침해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법적 결과는 어땠을까. 우선 C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러빙핸즈를 상대로 총 3건의 형사고소를 했는데 모두 각하됐다. 각하는 따져볼 필요가 없어 고소 신청 자체를 거부하는 거다. 이후 C사는 2019년 11월 러빙핸즈에 360만원을 내놓으라면서 1차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6월 1심에서 법원은 “러빙핸즈가 C사에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러빙핸즈는 항소했고, 같은해 11월 2심에서 법원은 “러빙핸즈가 C사에 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러빙핸즈는 다시 항소했다. 2021년 3월 대법원은 2심을 그대로 인용했다. 결국 러빙핸즈는 50만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C사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저작권 침해 건별로 추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4월 2차(660만원), 5월 3차(1300만원), 6월 4차(330만원)까지 총 3건이다. 모두 같은 법원이었다.

당시 러빙핸즈는 해당 법원에 “각 사건이 사실상 하나이니 통합해서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잦은 소송으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3건의 소송을 각각 진행했다. 이른바 쪼개기 소송이 진행됐던 거다. [※참고: 또다른 저작권 침해가 발견되면 C사가 별도의 소송을 또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민사소송 3건의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2차와 3차 민사 판결은 2023년 2월 같은 날 나왔는데, 둘 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내용이었다. 러빙핸즈의 승이었다.

그런데 2023년 6월에 나온 4차 판결은 또 달랐다. ‘러빙핸즈가 C사에 33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놨다. ▲원고(C사)는 저작권 침해 행위 시점별로 불법행위를 구분해서 3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앞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하더라도 소권 남용이라 하기 어려우며, ▲저작권 침해라는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는 게 판결의 이유였다. 러빙핸즈는 항소했고, 2023년 11월 결국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힌 이유는 뭐였을까. ▲누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글꼴프로그램을 복제해서 사용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는 점, ▲원고가 2013년 당초 글꼴을 비영리 목적으로 무료 배포했다는 점, ▲글꼴프로그램이 비영리이자 비상업적으로 사용된 점, ▲저작권 침해가 일회적 사용에 한정될 뿐 아니라 그 내용도 인사말에 불과한 점 등이 참작된 덕분이었다. 

재판 결과를 도식화하면 ‘➊1차 대법원 50만원 지급 판결→➋2차 원고 청구 기각 판결→➌3차 원고 청구 기각 판결→➍4차 330만원 지급 판결→➎4차 항소심 원고 청구 기각 판결‘로 정리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대법원 판결을 제외한 이 모든 판결이 법원 ‘1곳’에서 나왔다는 거다. 내용도, 시기도 똑같은 사건의 판결이 판사에 따라 달랐단 얘기다. 특히 ‘➍4차 1심’은 ‘1차 대법원 판결’을 통해 당초 원고의 손해배상청구액(360만원)이 최종 50만원까지 줄었다는 점마저 고려하지 않은 채 ‘3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똑같은 사안에선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상식적인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거다. 판사에 따라 배상액도 늘었다 줄었다 하고, 판결도 오락가락한다. 

어쩌면 법원의 이런 행태가 C사가 ‘쪼개기 소송’을 거듭하는 빌미를 제공했을 수도 있다. C사 입장에선 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만큼, 소송을 많이 제기해야 뭐라도 얻어걸릴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비슷한 사안을 두고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헌법학) 교수는 “국민 입장에서 똑같은 사안에서 똑같은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여기는 것도,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면서 “따라서 둘 사이의 갭을 메울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판사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수단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인공지능(AI) 판사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어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법원이 쪼개기 소송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같은 사안을 다르게 판결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사진=뉴시스]
법원이 쪼개기 소송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같은 사안을 다르게 판결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사진=뉴시스]

사실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는 점에는 순기능도 있다. 이런 여지 덕분에 억울한 사람이 구제를 받을 수도 있어서다. 조금은 결이 다른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견해가 새로운 법적 관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가 3심제를 택하는 것도, 판사 개인이 모두 헌법기관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순기능만큼 역기능의 피해도 크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할 해법은 없는 걸까. 장 교수는 “다만 러빙핸즈 글꼴 저작권 사건의 경우에는 해법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피고도 같고, 사안도 같으면 묶어서 판단하는 게 옳다. 그런데 법원이 러빙핸즈의 ‘병합’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납득할 수 없다. 애초에 묶어서 판단을 했다면 같은 소송의 결과가 재판마다 달라지는 일은 없지 않았겠는가.” 애초에 쪼개기 소송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단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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