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13편
이응준 「국가의 사생활」
장강명 「우리의 소원은 전쟁」
흡수통일 시대 다룬 두 소설
이질성 극복 못하면 갈등 불가피
통일해도 평화 장담하기 어려워
전쟁 비극 막기 위해 해야할 일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는 올해 초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상황은 냉전시대만큼이나 위태롭다. 이응준 작가의 「국가의 사생활」과 장강명 작가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흡수통일을 가정하며 우리가 전쟁의 비극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일깨운다. 

한국 정부와 북한이 강대강 대결만 벌이고 있다.
한국 정부와 북한이 강대강 대결만 벌이고 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다. 이듬해 독일이 통일에 성공했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했다. 서독의 헬무트 콜(1930~2017년) 총리는 붕괴 직전인 소비에트연방의 혼란을 놓치지 않고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여러 동유럽 국가로부터 통일을 승인받았다. 

동독의 총선에서는 서독과의 연합 체제를 지지하는 야당이 대승을 거뒀고 통일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많은 사람들이 콜 총리의 절묘한 외교에 찬사를 보냈지만, 통일 이후에 독일의 혼란은 그때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통일을 이룩할 당시 동독은 사회주의국가 중 가장 부유했고 서독은 세계 3위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통일 이후의 경제적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동독 출신 국민은 통일 국가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

수십년 동안 각기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관성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볼프강 베커 감독의 영화 ‘굿바이 레닌(2003년)’에 그려진 것처럼 통일 이후 동독인의 상실감은 너무도 컸다. 서독인들의 불만도 못지않았다.

언젠가 통일이 이뤄진다면 우리가 겪을 혼란은 독일보다 훨씬 심각하리라는 사실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동ㆍ서독에 비해 경제와 문화 차이는 훨씬 크고, 분단 기간도 훨씬 길다. 남과 북은 민간인 사이의 교역이나 왕래조차 거의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독일과는 달리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군사적인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악조건들을 극복하고 과연 남과 북은 무사히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까. 통일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수치적인 분석보다 어쩌면 문학적 상상력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남과 북 사이의 이질감은 이미 메우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통일이 이뤄지더라도 한반도에 평화가 오지 않을 수 있다.[사진=뉴시스]
통일이 이뤄지더라도 한반도에 평화가 오지 않을 수 있다.[사진=뉴시스]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2009년)」은 ‘흡수통일’ 후 통일 대한민국이 배경이다. 통일 이후 남한의 건설 회사들은 북한 지역에 진출해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대규모 인구 유입으로 인건비가 낮아졌고 기업들의 주가는 급상승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사람들은 박탈감에 시달린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값싸고 험한 노동에 내몰렸고 통일 이전에 가졌던 직업을 잃었다. 

새로운 갈등과 함께 범죄도 급증한다. 예비군만 무려 500만명에 달했던 북한에는 미처 회수하지 못한 총기 수십만정이 남아 있었다. 그 무기들은 암시장을 거쳐 범죄조직의 손에 들어간다. 총기 범죄 급증으로 경찰의 순찰차는 장갑차로 바뀐다. 

북한군 강경파들은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쿠데타를 계획한다. 주인공인 북한군 엘리트 장교 출신 ‘리강’은 통일 이후 살인청부업자로 전락한다. 그는 우연히 쿠데타 음모에 휘말린다. 소설의 후반부는 드라마 ‘아이리스’를 연상시키는 스릴러물로 급변했지만, 전반부에 묘사한 통일 대한민국의 풍경은 무척 사실적이다.

이응준이 통일 후에 초점을 맞췄다면, 장강명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2016년)」은 통일의 과정을 응시한다. 이 소설은 남한의 보수층들이 선호하는 ‘전쟁을 거치지 않은 흡수통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시작한다. 

흡수통일 과정은 결코 수월하지 않다. 남한과 북한은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이름만 ‘분계선’으로 바꾼 채 휴전선을 유지한다. 그리고 통일의 충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전에 중국과 미국이 개입한다. 두 국가는 북한지역에 상대국의 군대가 입성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 결과 분계선 북쪽 지역은 유엔평화유지군이 통치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철저하게 밀려났지만, 이를 ‘외교의 승리’라고 자축한다. 이렇게 전쟁과 급격한 변화를 회피하는 상황은 실제로 북한 전문가들이 이상적으로 여겼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남한 정부는 점진적인 통합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분계선을 해체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북한 지역은 사실상 국제적인 고립 지대로 남는다.

유엔평화유지군의 느슨한 통치 아래 북한 지역은 국제 마약조직이 운영하는 마약 생산기지로 전락한다. 통일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평가한 ‘점진적 흡수통일’이었지만, 현실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북한 지역에 범죄와 부패가 늘어갈수록 북한 사람들은 계속 남쪽으로 이주한다. 수많은 이주민이 유입된 남한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은 금방 임계점에 이른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작한 텍스트에 불과하지만 두 소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지점은 비슷하다. 이질성을 극복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일은 새로운 비극을 낳을 뿐이다. 통일의 노력은 이 사실을 직시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통일의 과정에 절대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도록 유도하기, 교류를 통한 이질감 극복, 국제사회 설득 등 필요한 질문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은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북한 역시 올해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지칭하면서 사실상 통일의 노력을 포기했음을 공표했다. 올해 초 북한 문제 권위자들인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 공동 기고에서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한국전쟁 직전 상황과 현재를 빗댔다. 

우리는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통일은 체제의 문제이기 전에 인간의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타자를 상상하려는 노력을 멈출 때 인간은 어리석은 비극을 반복한다. 두편의 가상통일 소설이 일깨워준 진실이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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