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12편
「벌들의 역사」와 「풀의 죽음」
절멸 앞둔 인류 위기 다뤄
벌 사라지면 생태계 무너져
식량 안보 위협하는 풀의 죽음
멸종이 멸종을 부르는 현실
전쟁 없이도 몰락 중인 인류

전쟁은 누군가 ‘미사일 스위치’를 눌러야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벌과 풀이 사라지는 시대. 꽃이 피지 않고 과일이 열리지 않고 곡식이 영글지 않는 시대. 그리고 그 모든 멸종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불안해진 식량 수급에 그간 쌓아왔던 민주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사라지고 인간들은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스스로 불러온 전쟁이다.

벌과 풀의 멸종은 곧 인류의 절멸을 의미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벌과 풀의 멸종은 곧 인류의 절멸을 의미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가 휩쓴 시대에 ‘인류의 절멸’을 다룬 두편의 소설을 다시 펼친다. 이 소설들은 인간이 멸망하기 전에 앞서 사라지는 것들을 응시한다. 노르웨이 작가 마야 룬데(1975년~)의 디스토피아 소설 「벌들의 역사(현대문학ㆍ2016년)」에는 각기 다른 시대에 ‘벌’을 다루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1852년의 동물학자 ‘윌리엄’, 2007년의 양봉업자 ‘조지’, 2098년 벌들이 멸종한 시대에 인공수분을 하는 중국인 ‘타오’다.

윌리엄은 여덟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윌리엄은 장남이 남긴 연구서를 참고해 새로운 꿀벌집을 개발한 결과 엄청난 부를 획득한다. 윌리엄이 개발한 꿀벌집 기술은 바다 건너 미국에 전수된다. 미국의 양봉업자들은 환호한다.

그리고 2007년에 사는 조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조지의 집안은 대대로 양봉업을 이어왔지만, 조지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양봉업을 물려받길 거부한다. 양봉업 지속을 두고 고민하는 조지에게 남쪽 지방에서 벌들이 떼죽음 당하고, 개체 수가 줄어간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2098년, 중국 쓰촨四川 지방의 거주민 타오는 벌들이 사라진 세상을 살아간다. 세살 아이를 둔 엄마인 타오는 매일 열두시간 이상 나무에 올라 꽃가루를 바르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타오가 아무리 꽃가루를 열심히 발라도 벌들의 효율을 따라가지 못한다. 과일 가격이 치솟고, 꽃들은 점차 멸종한다.

과일과 꽃이 줄어들면서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환경이 망가지고 생존이 위협받자 국가 체제와 민주주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붕괴하고, 살아남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더는 공동체에 의지하지 않는다. 타오는 자신의 아들만은 제대로 교육받아 더 나은 삶을 살길 원하지만 소풍을 나간 날에 아들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세 주인공의 운명은 결국 ‘벌’이라는 개체로 연결된다. 이들은 모두 자식을 키우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250여년이 흐르는 동안 세계는 더 나빠지기만 한다.

이 소설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을 오가면서 ‘벌’을 중심으로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 이야기를 합쳐 곧 다가올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노르웨이서점협회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문학상’과 ‘2017년 독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벌들의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ㆍ꿀벌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여왕벌과 새끼벌이 굶어 죽으면서 군집이 무너지는 현상)’은 지금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 군집 붕괴 현상으로 벌의 25% 이상이 사라졌고, 한국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토종벌 95%가 사라졌다. 온도 변화에 민감한 벌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아직도 인류는 벌들의 집단 폐사를 막을 방법을 알지 못한다.

영국 작가 존 크리스토퍼(1922~2012년)의 「풀의 죽음(폴라북스ㆍ2018년)」은 쌀ㆍ밀ㆍ보리 등 식용작물을 공격하는 ‘충리 바이러스(가상의 병)’가 만연한 영국의 미래를 다룬 소설이다.

충리 바이러스 확산으로 식물이 고사枯死하자 그것을 먹는 동물들이 죽는다. 식량과 가축이 줄어들면서 중국ㆍ인도 등 아시아에서 수억 명이 아사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바이러스 방역과 식량 비축에 문제가 없다고 자국민들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충리 바이러스가 유럽에 상륙하자 정부의 거짓말이 드러난다. 정부를 신뢰했던 영국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진다. 영국 정부는 소요 사태를 진압하고자 계엄령을 선포한다.

인구를 강제로 줄이고자 주요 도시에 핵폭탄을 사용하려는 정부의 계획이 알려지자 왕족과 부자, 정치인들은 해외로 도피한다. 국가가 국민을 버린 상황에서 국민들은 사회 질서를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개인들은 각자 스스로를 지키려고 크고 작은 무장 단체를 결성하고 영국은 무법지대로 변한다.

소설은 무리 지어 피난을 가는 다양한 인간상을 묘사한다. 주인공 존은 가족과 함께 런던을 탈출해 영국 북서부에 사는 형 데이비드의 농장으로 향한다. 친구 로저는 존에게 자신의 가족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존의 아내 앤은 피난 생활이 힘겨워지자 남편에게 친구를 버리라고 종용한다. 

존의 일행 중 한명인 총포상 주인 피리는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완전히 돌변한다. 피리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존 일행은 농장에 도착하지만, 이미 농장은 피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존의 일행까지 받아들인다면 식량 부족으로 모두 위험에 빠질 상황이었다. 존은 고뇌에 빠진다. 자신의 가족만이라도 농장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피난민들을 없애고 농장을 차지할 것인가.

꼭 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류는 멸종 위기에 놓일 수 있다.[사진=뉴시스]
꼭 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류는 멸종 위기에 놓일 수 있다.[사진=뉴시스]

「풀의 죽음」은 1956년에 출간됐다. 소설이 나온 지 70년 가까이 흘렀지만 소설에 그려진 풍경은 너무도 현재적이다. 영국 평론가 로버트 맥팔레인은 이 소설을 “시대에 앞서 위험을 경고한, 뛰어난 선견지명을 갖춘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반세기가 넘는 시차에도 「벌들의 역사」와 「풀의 죽음」은 마치 같은 소설처럼 읽힌다. 현재 인류는 120억명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지만 하루에 6만명이 굶어죽는다. 또한 세계를 수백번이나 멸망시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는 속수무책이다.

지금 숱한 동식물들은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고 있다. ‘벌’과 ‘풀’의 멸종은 곧 인류의 절멸을 의미한다. 첨단 기술로 만든 살상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미 인류는 몰락하는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과 에너지 가격 폭등에 시달리고, 팬데믹을 겪은 후에도 인류는 위기를 애써 외면한다.

당면한 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은 안전하리라고 착각하면서 이기적인 풍요를 꿈꾼다. ‘타오’와 ‘존’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인류의 미래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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