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11편
윌리엄 스타이런 「소피의 선택」
처절한 세 인물 교차 다룬 스토리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던 사람들
“해소 못한 슬픔은 자기 파괴 씨앗”
타인의 고통 외면하는 많은 시선들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에 안도한다. 비극의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자의 목소리를 껄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린 슬픔에 무지한 사람이 돼간다.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엇을 선택해도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에게 가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내몰린 자의 딜레마와 후유증을 그린 소설이다. 

1947년 미국 남부 출신 청년 스팅고는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입성한다. 스팅고는 출판사에서 잡일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스팅고는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유산 덕분에 뉴욕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

스팅고의 증조할아버지는 어린 노예 아리스테를 팔아 마련한 485달러를 은행에 저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축한 돈에 엄청난 이자가 붙었고, 스팅고는 그것을 상속받았다. 그는 좋은 작가로 성장해 돈에 얽힌 부채감을 덜고자 했다. 스팅고는 노예 제도에 반대한 흑인 반란 지도자 ‘터너’라는 인물을 소재로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참고: 실제로 윌리엄 스타이런은 「냇 터너의 고백」이라는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러나 스팅고의 평온한 삶은 곧 흔들린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는 이상한 이웃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 남성 ‘네이선’과 폴란드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 ‘소피’였다. 두 남녀는 날마다 심각하게 다퉜다. 밤마다 욕설과 고함이 오갔고, 가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이내 화해하고서 요란하게 섹스를 했다. 스팅고는 두 커플에 흥미를 느꼈다. 얼마 후 그들은 가까워진다. 스팅고는 소피에게 한눈에 반했고, 지적인 네이선에게도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소피의 억눌린 과거가 밝혀지면서 세 사람 사이에는 이상한 기류가 형성된다.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했을 때 대학교수였던 소피의 아버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 협력했다. 소피는 아버지의 제자인 남편에게 신물을 느꼈고, 나치와 싸우는 레지스탕스 대원과 불륜에 빠진다. 

하지만 소피의 애인은 독일군에 잡혀 처형된다. 소피의 가족들은 아우슈비츠수용소로 끌려갔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는 소피를 보고 한 독일군 장교가 흑심을 품는다. 독일군 장교는 그녀에게 두 아이 중 가스실로 보낼 한 아이를 고르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선택을 거부하면 두 아이 모두 가스실로 보낸다는 협박을 받은 소피는 망설이다가 어린 딸을 선택한다. 그녀는 가스실로 끌려가는 딸의 비명을 들으면서 오열한다.

소피는 잔혹한 학살의 피해자였지만, 결과적으로 살아남고자 나치에 협력한 가해자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소피는 잔혹한 학살의 피해자였지만, 결과적으로 살아남고자 나치에 협력한 가해자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소피는 남은 아들이라도 살리고자 수용소장 헤스를 성적으로 유혹하고 수용소 업무에 협조한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아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종전을 맞이한다. 미국으로 이주한 소피는 유대인 과학자 네이선을 만나 함께 살게 된다. 네이선은 소피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겪으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심각한 조울증을 앓는 네이선은 마약을 복용하며 버텼다. 네이선은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전쟁 중 나치의 학살에 협력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는 자신의 핏줄을 저주하면서 자해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유럽과 미국에는 유대인 차별 정서가 남아 있었다. 유대인 학살은 단지 나치의 의지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전쟁의 기억은 집요하고 복잡했다. 두 사람은 처절한 피해자이자 냉혹한 가해자이기도 했다. 네이선과 소피는 틈만 나면 서로의 과거를 들춰냈고, 그럴 때마다 전쟁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들은 서로를 저주하고 학대했다. 그러다가 가학적인 섹스를 하면서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이 스팅고가 밤마다 들었던 격렬한 소음의 정체였다. 

스팅고는 사랑을 고백하면서 소피에게 자신과 새롭게 삶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소피는 스팅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행복을 꿈꿀수록 그녀의 죄책감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소피는 자신을 학대하는 네이선과 함께 자살을 선택한다. 

1979년 「소피의 선택」은 출간하자마자 엄청난 판매 부수를 올렸다. 이 소설은 비유대인 여성 소피의 시선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뤄 화제가 모았다. 특히 폴란드에서는 딸을 죽음으로 내몬 소피가 독일군 장교와 동침하는 장면이 문제가 돼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소설 속의 세 인물이 처한 아이러니는 가해자가 명확할수록 피해자의 선함이 부각되는 착시에서 벗어나게 한다. 소피는 잔혹한 학살의 피해자였지만, 결과적으로 살아남고자 나치에 협력한 전범(가해자)이었다. 네이선은 유대인이 아닌 소피를 괴롭히면서 자신이 증오하는 인종주의자들과 비슷한 가해자가 된다. 가장 정상적인 인물 스팅고의 풍족한 삶은 흑인 노예를 팔아 축적한 증조할아버지의 재산 덕분이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소피의 선택」을 통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세 인물을 교차시키면서 ‘순백의 피해자’라는 환상을 해체한다. 그러면서 전쟁이 강요한 선택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소피의 선택」을 출간한 이후 윌리엄 스타이런은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우울증 보고서 「보이는 어둠(1985년)」을 썼다. 

슬픔을 해소하는 과정을 충분히 겪지 못한 사람은 내면에 분노와 죄책감을 쌓아두고, 그것은 자기 파괴의 씨앗이 된다. 이 책에서 작가는 ‘불충분한 애도(Incomplete Mourning)’를 설명한다. “나는 자기 살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으며, 고독한 배우인 동시에 외로운 관객이었다.” 이 문장은 마치 ‘소피’와 ‘네이선’의 내면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먼저 자신이 그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비극의 주인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자의 목소리를 껄끄럽게 여긴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슬픔에 무지한 사람이 돼간다. 서울 한복판에서 150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해도, 사람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그중 몇몇은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치부하면서 묻히기를 원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당신의 고통을 모른다’는 사실은 기이한 위로이면서 뻔뻔한 방관의 명분이 된다. 정신의학은 서로를 학대하는 소피와 네이선을 절망과 피해의식이라는 틀로 분석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의 시선에서 그들의 몸부림은 살아 있는 한 슬픔에 무뎌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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