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구직활동한 청년 4명과의 인터뷰

공공기관에서 일명 ‘블라인드 채용’을 시작한 건 2017년이다. 지난해 7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채용절차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블라인드 채용’은 일정한 조건을 갖춘 민간기업으로 확대됐다. 그로부터 1년여, 구직자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지난 1년간 구직활동을 한 4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블라인드 채용의 실태를 짚어봤다.

개정된 채용절차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블라인드 채용을 체감하지 못하는 구직자들은 여전히 많다. [사진=뉴시스]
개정된 채용절차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블라인드 채용을 체감하지 못하는 구직자들은 여전히 많다. [사진=뉴시스]

2019년 7월 17일 개정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채용절차법)’이 시행됐다. 내용은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 누구든지 채용에 관해 부당한 청탁이나 강요를 하거나 금전·향응 등을 제공·수수해선 안 된다. 둘째, 구인자가 직무수행과 무관한 구직자의 개인정보를 기초심사 자료에 기재하도록 요구하거나 입증자료로 수집해선 안 된다. 법안은 상시 3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공공기관에 적용됐다. 위반시엔 각각 3000만원 이하,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이 법을 근거로 입증자료에 출신지역·가족관계·신체적 조건 등을 요구할 수 없는 ‘블라인드 채용’이 공공기관(2017년)을 넘어 민간으로 확대됐다. 개정 법안에 따르면 기업은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출신지역·혼인여부·재산 ▲직계 존비속과 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 등 구직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 없다.  

그로부터 1년여, 채용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난해 말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직 공채에서 중국 국적의 지원자가 최종 면접까지 통과했지만 국가보안을 이유로 불합격 처리된 사건이 있었다. 입사지원서에 국적·학력 기입란이 없어 연구원이 중국 출신임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거다. 이 사건은 채용시장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사례로 꼽히곤 한다.

정말 그럴까. 지난 8월 구인구직 플랫폼 잡코리아가 채용절차법 개정 1년을 맞아 구직자 26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데이터를 발표했는데,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난 1년간 블라인드 채용 절차를 밟는 기업에 지원한 구직자는 26.0%에 그쳤다. 블라인드 채용법이 공정한 채용에 기여한 정도가 ‘보통(48.0%)’이라고 느끼는 구직자도 숱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스펙보다 인성·직무 능력 중심으로 채용 전형이 바뀌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35%가 넘는 이들이 ‘달라진 걸 아예 모르겠다’고 답했다. 변화를 체감했다는 응답률(23.0%)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법과 현장의 괴리는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커뮤니티에는 ‘정말 블라인드 채용하는 것 맞느냐’는 취업준비생의 질문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법까지 개정해 블라인드 채용이 민간으로 확대됐음에도 채용과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구직자가 많다는 얘기다. 

그럼 취업 전선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블라인드 채용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걸까. 최근 1년 사이 구직활동을 한 이들 4명에게 블라인드 채용을 겪었는지, 채용시장이 공정해지고 있는지 들어봤다. 인터뷰는 인터뷰이(interviewee)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진행했다. 

✚ 각자 어떤 분야에서 취업을 준비하셨나요?
A(여·27)씨 : “올해 공무원에 임용됐고, 직렬은 일반농업입니다.”
B(남·26)씨 : “사기업·공기업 모두 준비하지만 사기업 위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원 분야는 마케팅 계열입니다.”
C(여·24)씨 : “상반기 금융권 사기업에 취업했습니다. 실질적인 취업 준비기간은 1년 정도입니다.”
D(여·24)씨 : “‘언론고시’로 불리는 언론사 취업을 준비 중입니다.”

✚ 요새 취업 시장 현황은 좀 어떤가요?
D씨 : “코로나 탓인지 올해 들어선 채용 공고자체가 잘 뜨지 않네요. 지원한 기업이 10곳도 되지 않아요.” 
B씨 : “애초에 채용인원이 많은 분야가 아닌 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집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 가뜩이나 좁은 취업문이 더 좁아져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개정된 채용절차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는데요, 그동안 블라인드 채용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A씨 : “최근 공무원 면접에서 경험했습니다. 면접관에게 제출하는 평정표에 수험번호와 이름만 적었습니다. 공무원 채용은 블라인드 원칙을 잘 지키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C씨 : “현재 취업한 곳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진행했었습니다. 서류전형까지는 확실했는데, 면접전형에선 확실하지 않습니다.” 

 

✚ 확실하지 않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C씨 : “최종면접 때 성적증명서 등 학교가 기재된 서류를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 측은 블라인드라고 설명했지만 지원자 입장에선 찜찜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죠.”
A씨 : “저도 일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습니다. 면접관이 가지고 있는 자기소개서에는 지원자의 사진이 부착돼 있었고, 면접에서 출신지역을 묻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의아한 건 면접장에서 ‘블라인드 채용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여러 차례 주의를 줬다는 겁니다. 앞선 일들과 모순된다고 느꼈습니다.”

✚ 블라인드 채용에서 조금씩 불편한 점들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사기업에 지원한 B씨와 C씨는 블라인드 채용을 경험했나요? 
B씨 : “경험이 있긴 하지만 잘 지켜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기업 채용 전형에서 출신지·학력·가족정보를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D씨 : “많은 언론사가 블라인드 채용을 하지 않습니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블라인드 전형을 진행했습니다. 서류전형에선 어떤 개인정보를 기입하면 안 되는지 명시한 가이드라인도 있었죠. 자기소개서에 출신지역과 출신학교를 밝히지 못하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지역 언론사 인턴 경험이 있어 비수도권 이슈로 얘기할 게 많았거든요. 처음엔 막막했지만 쓰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더욱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 두 분은 블라인드 채용이 아니라고 느낀 전형도 겪으셨는데요,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B씨 : “지난해 모 기업 채용 과정에서 겪었습니다. 그곳은 서류전형에서 주소를 기입했고, 면접관도 제 출신지역을 알고 있었어요. 무엇보다 면접장에서 다른 지원자가 스스로 부모님에 관한 정보와 출신지역을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별다른 제재도 없었고요. 평가에 반영됐는지 알 수 없지만, 황당했습니다.”
D씨 : “사실 대부분 언론사가 블라인드 채용을 하지 않아서 블라인드 채용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예요. 서류에서 증명사진·출신지·학력뿐만 아니라 어학점수·자격증 등 각종 스펙을 요구하는 것이 기본이죠. 어느 중소언론사의 서류전형에선 부모님의 생년월일과 직업까지 적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인터뷰이들은 주로 증명사진·출신지·출신학교를 수집할 때 블라인드 채용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나 개정된 채용절차법에 따르면 사진, 현 거주지, 주민등록상 주소, 출신학교를 수집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사진은 구직자의 동일성 확인을 위해서, 현 거주지는 출생지를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많아서, 출신학교는 ‘학력’ 또는 ‘출신지역’과는 달라서 수집이 가능하다(출생지·미성년 시기 거주지는 수집 금지).
 
하지만 D씨의 사례에 나왔던 부모님 개인정보 수집은 불법이다. 회사는 구직자의 직계존비속 또는 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 다만 D씨가 지원했던 중소언론사는 채용절차법이 적용되는 곳(상시 근로자 30인 이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앞선 A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가·지방직 공무원 채용은 블라인드 채용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법안이 구직자가 기대하는 블라인드 채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지역 거점 대학 낮게 보는 인식 남아”

✚ 황당하셨겠네요. 블라인드 채용 도입으로 취업이 좀 더 유리해졌다고 생각하나요?

A씨 : “블라인드 전형은 자리를 잡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업문 자체가 워낙 좁아 취업준비생에게 특별히 유리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C씨 : “네, 비수도권 대학 출신으로서 수도권 기업에 지원할 때 도움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아직도 채용시장에선 지역 거점 대학을 낮게 보는 인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고 출신학교를 서류에 기입하지 않는 곳이 늘면서 편견을 피할 수 있게 됐죠.”
D씨 : “서류전형조차 블라인드 전형을 하는 곳이 드물어 유리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 의견이 나뉘네요. 그럼 채용시장의 공정성은 개선됐다고 느끼나요? 
B씨: “공기업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뽑고 나니 신입사원이 40대라든가, 원자력연구원 최종합격자가 중국인이라든가 하는 사례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사기업에선 공정성이 개선됐는지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아직도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기업이 특정 학교를 편애한다더라’는 말이 나오니까요.”
C씨 : “어느 정도 공정해졌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요. 예컨대 AI 면접을 도입한 이유도 면접관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기 위해서잖아요. 지금까지 시행된 블라인드 채용이 완벽하진 않지만, 공정해지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D씨 : “채용 공고가 워낙 부정기적으로 떠서 공정해졌는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적인 예를 들면, 언론계는 여전히 학사 학위 이상만 지원하도록 제한하는 회사가 적지 않습니다. 과연 공정해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A씨 : “글쎄요. 학력·가족사항 등은 매우, 출신지 차별은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외모와 성차별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면 사진을 부착하는 관례는 외모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나 임산부 등을 향한 배려도 여전히 부족하고요.”

 

블라인드 채용 법안과 구직자의 인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사진=뉴시스]

✚ 배려가 부족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씨 : “얼마 전 공무원 면접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지원자가 면접관의 입술을 읽기 위해 투명마스크를 직접 준비해왔다고 합니다. 공고문에 편의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없어 벌어진 일이었죠. 물론 법령에는 장애인 편의지원 관련 조항이 있습니다. 문제는 지원을 기본으로 제공하진 않는다는 겁니다. 편의지원이 있다는 걸 알고 따로 문의한 이들만이 받을 수 있었죠. 법이 개선됐다고 현실까지 바로 개선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블라인드 채용 완전하지 않아 

취업에 성공한 이들도, 취업의 벽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도 블라인드 채용 전형이 완전하진 않다는 데 동의했다. 무엇보다 구직자들이 생각하는 ‘공정한 채용’과 법안에는 괴리가 있었다. 부모님의 인적 사항을 물어보는 등 불법 여부를 떠나 지원자를 평가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물어보는 기업은 여전히 있었다. 기업마다 입맛에 맞는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는 점도 문제였다. 

취업난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구직자들에겐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다. 수많은 스펙을 쌓고 공부했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고 좌절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채용 전형에서 구직자는 끝없는 을乙이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묻지 못한 채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 공정성을 향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 구직자는 절망에 빠진다. 블라인드 채용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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