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스터닝 대표
디자인 공모전 플랫폼
노트폴리오와 M&A

가고 싶은 장소, 먹고 싶은 음식, 갖고 싶은 제품…. 소비자의 선택 기준에 ‘디자인’이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그만큼 소비자의 ‘보는 눈’이 높아졌다는 거다. 디자인 공모전 플랫폼 ‘라우드소싱’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다. 라우드소싱은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디자이너를 연결해주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올해 창업 9년차를 맞은 라우드소싱(스터닝)의 김승환(36) 대표를 만났다.

김승환 대표는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기업 · 상인과 디자이너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사진=천막사진관]
김승환 대표는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기업 · 상인과 디자이너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사진=천막사진관]

“한국엔 뛰어난 디자이너가 많은데 왜 한국 가게의 간판이나 제품의 디자인은 제자리걸음인 걸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 청년은 의문을 품었다. 각종 해외 디자인 어워드에서 한국 디자이너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정작 생활 속에서 좋은 디자인을 접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승환(36) 스터닝 대표가 2011년 디자인 공모전 플랫폼 ‘라우드소싱’을 론칭한 이유다. 그는 “디자인이 제품·서비스의 성패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디자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소상공인에 ‘숨은’ 디자이너들을 연결해주는 장場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 ‘디자인 공모전 플랫폼’은 일반인에겐 낯설 듯해요. 
“제품ㆍ패키지ㆍ로고ㆍ이밍 등 의뢰인이 필요한 디자인의 공모전을 여는 플랫폼이에요. 상금을 제시하고 공모전을 열면 참여하고 싶은 디자이너들이 작품을 제출합니다. 그중 의뢰인이 우승작을 선정하고 상금을 지급하면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를 위한” 

✚ 이전에도 디자인 공모전은 열리지 않았나요. 

“맞아요. 하지만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전유물이었죠. 라우드소싱은 디자인 공모전을 대중화하고자 했습니다. 이를테면 작은 카페의 소상공인도 공모전을 열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좋은 디자인을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였죠.” 

김승환 대표는 미국 유학생활 중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빼어난 디자인을 갖춘 상품으로 사업이 성공하는 사례를 숱하게 봤기 때문이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선 기업들이 디자이너와 일하는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훌륭한 인적 자원과 자산을 가진 대기업이야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겐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것 자체가 ‘힘겨운 문턱’이었다. 그는 그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 

✚ 오프라인 디자인 공모전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온 셈이네요. 
“기존엔 1년에 200~300건의 공모전이 열렸어요. 지금은 라우드소싱 등을 통해 연간 5000~6000건의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어요.”

✚ 공모전을 진행해오던 기존 업계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듯한데요.  
“그런 시선도 있었죠. 그럼에도 저희는 바꾸고 싶은 게 있었어요.” 

✚ 그게 뭔가요. 
“디자이너가 기업의 프로젝트를 따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자체 영업력이 부족하다 보니 에이전시의 울타리 안에서 활동해야 했죠. 이 때문에 디자인의 가치가 대부분 디자이너가 아닌 에이전시에 돌아갔고, 힘들게 밤새워 작업하는 디자이너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죠.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었어요.” 

오로지 디자인만으로 평가 

✚ 공모전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요. 

“맞아요. 누구나 실력만 있으면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학력이나 경력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요. 작품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죠.”

✚  성과가 있었나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디자이너분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KBS가 의뢰한 프로젝트에서 우승한 분이었는데, 자신만의 포트폴리오가 생겼다며 감사해하셨죠. 뿌듯했습니다. 디자이너 개개인이 ‘브랜드’가 되고 있다는 거니까요.” 

라우드소싱에선 디자이너 한명 한명이 브랜드다. 사진은 라우드소싱 홈페이지.[사진=더스쿠프 포토]
라우드소싱에선 디자이너 한명 한명이 브랜드다. 사진은 라우드소싱 홈페이지.[사진=더스쿠프 포토]

라우드소싱엔 12만여명의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등록돼 있다. 각 디자이너가 하나의 브랜드인 셈이다. 그동안 총 1만5000여건의 공모전이 진행됐고, 93억원의 상금이 디자이너에게 돌아갔다. 중소기업·스타트업·소상공인뿐만 아니라 대기업ㆍ방송국ㆍ공기업 등이 라우드소싱을 이용하고 있다. KBS TV 프로그램 ‘싸움의 희열’, ‘구르미 그린 달빛’의 로고나 LG ‘스마트월드’ 홈테마 디자인도 라우드소싱 공모전을 거쳐 만들어졌다. 

✚ 시장에 안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 4~5년은 라우드소싱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고민했어요. 초창기에 써보신 분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는데, 파급력을 갖추긴 쉽지 않았죠. 다행히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사업을 확장해갈 수 있었습니다.” 

✚ 의뢰인은 어떤 부분에 가장 만족하나요.
“무엇보다 퀄리티 높은 여러 시안(작품)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죠.”

✚ 결국 디자이너가 라우드소싱의 경쟁력인 셈이네요. 
“맞습니다. 저희와 함께하는 디자이너가 많을수록, 작품이 다양할수록 더 많은 의뢰인이 라우드소싱을 찾겠죠. 또 더 공모전이 많이 개최될수록 디자이너에게 기회가 열리고요.”

✚ 라우드소싱의 경쟁사는 없나요. 
“프리랜서와 의뢰인을 연결한다는 점에선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과 유사할 수 있어요. 하지만 라우드소싱은 ‘디자인’ 영역에 특화된 플랫폼을 지향해요. ‘디자이너들의 집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 일부 프리랜서 마켓은 디자이너에게 ‘가격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요. 가령 디자이너가 포트폴리오와 함께 가격을 제시하며 일종의 ‘호객 행위’을 하다 보니 자연히 가격 경쟁이 발생하는 거죠. 라우드소싱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디자이너가 얼마나 뛰어난 가치를 지녔는지 ‘잘 보여주는 것’에 라우드소싱의 성패가 달렸다고 생각해요. 가격이 아닌 포트폴리오를 강조하는 플랫폼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디자이너 커뮤니티와 손잡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라우드소싱에선 공모전 외에도 의뢰인이 디자이너에게 1대1 프로젝트를 의뢰할 수 있어요.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에게 더 많은 권한이 집중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의뢰인이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고, 함께 작업하고 싶은 디자이너에게 먼저 의뢰를 요청합니다. 그러면 디자이너가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이죠.” 

라우드소싱 운영사 라우더스는 지난 8월 디자이너 커뮤니티 ‘노트폴리오’를 인수·합병(M&A)했다. 사명도 ‘스터닝(STUNNING)’으로 바꿨다. 스터닝이란 ‘굉장히 멋진’ ‘깜짝 놀랄’이란 의미인데, 디자이너를 위한 플랫폼을 거듭나겠다는 김 대표의 의지를 담았다. 디자이너에게 ‘스터닝한’ 경험을 제공하고, 디자이너가 ‘스터닝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자는 거다. 

✚ 노트폴리오는 어떤 곳인가요. 
“‘디자이너들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고 공유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곳이죠. 여기서 디자인을 배우며 성장하는 디자이너들도 많습니다.” 

✚ 어떤 시너지를 기대하나요. 
“노트폴리오는 상당한 인력풀을 갖추고 있었지만 마땅한 수익구조가 없었고, 라우드소싱은 디자이너를 위한 더 많은 서비스가 필요했어요. 이런 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 스터닝이 추구하는 건 무엇인가요. 
“M&A를 한 지 3개월 정도 지났는데, 꽤 많은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대표적으로 ‘스터닝 클래스’가 있습니다. 아직 오픈하진 않았는데, 라우드소싱이나 노트폴리오에서 인지도를 쌓은 디자이너가 신인 디자이너나 학생에게 디자인을 가르쳐주는 온라인 수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 디자이너를 위한 또다른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나요. 
“크리에이터 센터도 만들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할 때 꽤 많은 디자인 리소스와 폰트·이미지 등을 필요로 해요. 그런 걸 모아서 제공하는 서비스죠. 이뿐만이 아니라 저작권 등 법률적인 부분도 지원하려고 합니다.” 

✚ 끝으로 스터닝을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나요. 
“디자이너라면 당연하게 쓰는 플랫폼이 되고 싶습니다. 전 국민이 네이버나 카카오톡을 당연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죠. 스터닝을 디자이너들이 맘 편하게 놀러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다른 디자이너와 소통하며 나중에는 수익도 창출하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글 = 이지원ㆍ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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