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사업단 공동기획
슉슉팀의 신박한 프로젝트
정보 절실한 장애인들
청년들 도전에 응답할 차례

휠체어 이용자는 외출 시 많은 고초를 겪는다. 바닥에 튀어나온 턱, 복잡한 계단, 장애인 화장실 부재 등이 이들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요소를 파악해 개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신고와 일괄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톨릭대 ‘소셜벤처 캡스톤디자인 : 비즈니스모델링’ 수업을 수강한 청년 3명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슉슉’이란 팀으로 뭉친 이들은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시설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독특함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슉슉팀은 정보가 절실한 장애인들을 위해 게임을 접목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슉슉팀은 정보가 절실한 장애인들을 위해 게임을 접목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장애인이 불편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은 아직까진 ‘이상향理想鄕’에 가깝다. 올 4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출을 꺼리는 장애인 중 55.8%가 ‘불편해서’를 그 이유로 꼽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편의시설은 비장애인 위주로 설계돼 있다. 특히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하반신 장애인들은 아무 건물에나 들어갈 수 없다. 복잡한 계단, 비좁은 화장실 등이 불편을 초래해서다. 직접 여닫아야 하는 문도 비장애인에겐 아무런 문제가 아니지만 휠체어 이용자에겐 엄청난 장애물이다. 도로에서도 불편을 겪긴 마찬가지다. 불쑥 튀어나온 턱, 경사면, 미끄럽고 거친 지면 등이 사고를 유발한다.

한국소비자원이 2016년 실시한 전동휠체어 이용자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35.5%의 응답자가 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턱·장애물 등에 의한 걸림사고가 41.2 %로 가장 많았고, 간판 등 외부 장애물과의 충돌(36.3%), 운행 중 정지(32.4%) 보행자와의 충돌(22.5%)이 뒤를 이었다(복수응답). 전동휠체어 조사이긴 하지만 일반 휠체어 역시 사고의 유형은 비슷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에 휠체어 이용자에겐 ‘어느 도로에 턱이 있는지’ ‘어느 건물에 장애인 시설이 구비돼 있는지’ 등의 정보가 절실하다. KT가 사회공헌 서비스의 일환으로 2019년 론칭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휘리릭’ 앱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휘리릭은 건물 입구의 형태, 장애인 주차장 유무, 방지턱, 경사로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정부도 노력하고 있긴 하다. 행정안전부는 안전신문고 제도를 운영하면서 생활불편시설과 장애인 불편시설을 개선하고 있다.

문제는 휘리릭 앱이든 안전신문고든 운영상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시민신고 또는 일괄조사와 같은 직접수집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예컨대, A지역 도로에 턱이 있다는 사실을 시민신고를 통해 인지하거나, 일괄조사를 통해 확인하는 식이다. 

하지만 시민신고는 정보의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다. 일괄조사는 인건비 등 비용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질 높은 시설정보를 제공하면서 비용까지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20년 2학기 가톨릭대 ‘소셜벤처 캡스톤디자인 : 비즈니스모델링’ 수업을 수강한 이성재·조예신·이진민 학생(슉슉팀)은 흥미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밖을 돌아다니며 불편시설 사진을 찍어올리는 방식의 스마트폰 게임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개선해보자는 거였다. 


프로젝트명은 ‘게임으로 세상을 바꾸자’. 게임을 즐기면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시설정보도 자연스레 축적하자는 기획의 취지를 담았다.[※참고: ‘슉슉’이라는 팀명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슉슉 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슉슉팀의 일원인 이성재 학생의 말을 들어보자. “실제로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잡는 위치기반 AR(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를 아시죠? 이 게임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위치기반 게임과 불편시설 찾기를 결합하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게임명은 ‘동물농장(가제)’이다. 방법은 쉽다. 플레이어인 농장주가 농장 밖으로 이탈한 동물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동물을 찾는 게 기본 테마다. 동물을 찾기 위해선 여러 도로와 건물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개선이 필요한 곳의 사진을 찍어올리는 퀘스트(임무)가 부여된다. 임무를 마치면 동물이 농장으로 돌아오고 게임은 끝난다. 

게임으로 축적한 시설사진과 도로사진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정보로 활용된다. 재미와 공익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스마트폰 게임이긴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게임 시나리오와 UI(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완성했지만 앱 개발엔 착수하지 못했다. 개발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뜻이 맞는 개발인력을 찾는 것도 과제다. 슉슉팀이 숱한 공모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이유다. 

다행히 올해 초 작은 성과가 있었다. 경기 서남부 3개 대학(가톨릭대·한양대 에리카캠퍼스·한국산업기술대)이 지난 1월 공동주최한 제4회 사회적기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슉슉팀은 여세를 몰아 동물농장 게임을 2021년 ‘단비 대학생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출품했다.[※참고: 이 대회는 부천시와 부천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주최하고 중소벤처기업부 액셀러레이터 비전웍스벤처스가 운영한다.] 


조예신 학생은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데 스마트폰 게임을 통해 장애인을 돕겠다는 우리의 아이디어가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슉슉팀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혹여 바람이 이뤄졌더라도 그들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려면 수많은 불확실성을 극복해 내야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게임을 ‘공익’과 연결한 아이디어는 독특함을 넘어 아름답다. 이 청년들의 의미 있는 도전에 사회가 응답해야 하는 이유다. 

유두진 더스쿠프 전문기자
ydj12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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