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사업단 공동기획
나비박스팀의 친환경 택배박스 ‘나비박스’
테이프 필요 없는 디자인 만들어

어제 무심코 뜯고 버린 택배박스를 기억하는가. 박스는 물론 테이프 쪼가리, 완충재 등 작은 물건 하나를 주문하는 데도 발생하는 쓰레기가 한더미다. 이렇게 쓰이는 택배박스가 한 해에만 33억7367개에 달하니, 택배 쓰레기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택배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청년 3명이 머리를 맞댔다. 가톨릭대의 ‘소셜벤처 캡스톤디자인 : 비즈니스모델링’ 수업에 참여한 ‘나비박스’팀이다.

택배박스는 배송 과정에서 많은 쓰레기를 배출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택배박스는 배송 과정에서 많은 쓰레기를 배출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금은 ‘택배 전성시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집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소비자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택배 이용 횟수가 2019년 99.3건에서 2020년 122건으로 급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문제는 늘어난 택배 물량만큼 배출되는 쓰레기도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용된 택배상자는 총 33억7367개. 여기에 박스를 밀폐하기 위해 사용된 일회용 테이프까지 생각하면 택배박스 쓰레기는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가톨릭대의 ‘소셜벤처 캡스톤디자인 : 비즈니스모델링’ 수업에서 만난 하누리·전혜영·이하림 학생은 택배박스에 주목했다. 이들은 테이프로 밀봉하는 택배박스 하나만 바꿔도 쓰레기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다다랐다. 세 학생이 팀명을 ‘나비박스’로 정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택배박스의 작은 변신이 택배 쓰레기 저감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가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택배박스 제작은 대학생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원자재 선택부터 제품 디자인, 제조 공정까지 까다로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비박스팀은 벤치마킹할 업체를 물색했고, 한 친환경 기업이 개발한 접착제 방식의 택배박스를 찾아냈다. 박스 내부에 점착성 테이프가 발라져 있는 이 제품은 일회용 테이프를 쓰지 않아도 단단히 고정된다는 점에선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접착제를 쓰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비박스팀은 접착제조차 쓰지 않는 박스를 만들어 보기로 결정했다. 세 사람이 숱한 아이디어를 검토했고, 그 결과 ‘끼움형 디자인’을 적용한 택배박스 도면을 완성했다. 이는 접혀있는 박스를 펴는 순간, 밑부분의 네면이 서로 맞물리면서 하단부가 완전히 밀폐되는 방식이다. 윗부분은 총 세군데의 홈을 만들어 퍼즐을 끼우듯 단단히 고정하는 방식을 썼다. 마지막으로 송장 스티커를 부착해 한번 더 고정하기로 했다.

나비박스팀은 지난해 11월 이 디자인을 들고 용산 전자상가를 찾았다. 하루에만 수만건의 택배물량이 발생하는 ‘택배의 성지’에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별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상인들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기존 택배박스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테이핑을 하면서 발생하는 소음공해가 극심하다” “분리배출가 어렵다” “택배를 받는 소비자들이 칼을 사용해 제품이 파손될 우려가 있다” 등 숱한 대답이 쏟아졌고, 나비박스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물론 풀어야 할 과제는 있었다. 20명의 전자상가 상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85.7%가 ‘가격이 부담된다’며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나비박스팀이 책정한 제품 가격이 일반 택배박스의 1.5배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나비박스가 널리 쓰이려면 제작단가를 낮추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나비박스팀은 아쉽게도 단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실제 택배박스 만드는 업체를 찾아가 납품단가 문제를 확인했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았다. 단가를 낮추려면 대량생산을 해야 하는데, 나비박스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실물을 보고 싶은 마음에 샘플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마저도 견적이 만만찮았다. 커팅기·접착기 등 기기 대여값만 5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이하림 학생은 “사람이 아닌 기계로 만드는 일이다 보니 견적이 어마어마하게 나와 샘플 만들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나비박스팀이 고안한 나비박스 프로젝트는 ‘미완’으로 끝났지만 이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자신들의 움직임이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누리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친환경 기업’이란 타이틀을 내세우는 기업이 정말 많아요. 하지만 이들 기업조차 택배박스에는 무심한 경우가 적지 않더라고요. 나비박스 같은 포장재가 많아진다면 ‘진짜 친환경’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학생들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 기업들이 답할 차례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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