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반도체 슈퍼사이클 도래
국내에선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
후발주자와 격차 좁혀졌다는 게 이유
냉철하게 따져보면 다소 과한 위기론
과한 위기론이 되레 위기 부추길 수도

올 하반기 반도체 시장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할 거란 전망이 쏟아진다. 메모리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격차 전략’이 흔들리고 있는 삼성전자의 위기가 한국 반도체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정말 그럴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 반도체를 둘러싼 위기설을 살펴봤다.

삼성전자와 후발주자 간의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와 후발주자 간의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세계 반도체 시장이 슈퍼사이클(초호황)로 들썩이던 2018년. 한국 반도체의 양대 산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꽉 쥐고 있는 두 기업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해 반도체 수출액도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올해를 기점으로 반도체 시장에 다시 슈퍼사이클이 도래할 거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견은 많지 않고,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각하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억제됐던 소비가 급증하고, 주춤했던 세계 공장들이 가동률을 끌어올리면서 반도체가 귀해졌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한 미래 산업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수요는 더욱 증가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세계 시장조사기관들도 올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 전망치(전년 대비)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기존 10.9%였던 성장률 전망치를 19.7%로, IC인사이츠는 12.0%에서 두차례나 조정한 끝에 24.0%로 끌어올렸다.

그중 메모리반도체의 성장세가 가파를 것으로 전망했다. WSTS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올해 31.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기존 전망치인 7.6%보다 무려 24.1%포인트나 상향 조정했다. IC인사이츠도 반도체 시장을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로직반도체, 아날로그반도체로 나누고 각각의 성장률을 32.0%(D램 41.0%ㆍ낸드플래시 22.0%), 24.0%, 25.0%로 전망했다.

[※참고: 로직반도체와 아날로그반도체는 모두 시스템반도체의 일종이다. 로직반도체는 연산 기능을 수행하는 반도체다. 중앙처리장치(CPU)ㆍ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아날로그반도체는 빛ㆍ소리ㆍ온도 등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반도체를 말한다. 자동차의 차선이탈경보장치에 쓰이는 이미지센서(CIS)가 대표적인 아날로그반도체다.]

이런 전망을 입증하듯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꿈틀거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서버용 D램(DDR4 32GB) 가격은 지난해 말 110달러에서 올 6월 147달러로 치솟았다. 모바일용 D램(LPDDR4 8GB)은 같은 기간 27.6달러에서 30.2달러로, PC용 D램(DDR4 8Gb)은 2.9달러에서 3.8달러로 뛰었다. 2.4달러였던 낸드플래시(256Gb TLC) 가격도 2.6달러로 올랐다. 

시장조사기관과 업계의 예상대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살아나면 한국 반도체로선 더할 나위 없는 호재를 만나는 셈이다. 언급했듯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메모리반도체 패권을 거머쥐고 있어서다. 그런데 한국 반도체를 둘러싼 시선은 슈퍼사이클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2018년과 사뭇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대보단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왜일까. 

마이크론이 최근 14나노미터 4세대 D램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사진=뉴시스]
마이크론이 최근 14나노미터 4세대 D램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사진=뉴시스]

이런 우려는 최근 불거진 삼성전자 위기론에서 기인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마이크론 등 후발업체가 넘볼 수 없을 정도의 투자를 통해 독보적 1위를 유지하겠다는 초격차 전략을 써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초격차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멀찌감치 따돌리려던 경쟁업체들의 기술력이 되레 턱밑까지 쫓아왔기 때문이다.” 

우려를 키운 건 마이크론이었다. 이 회사는 최근 세계 최초로 14나노미터(㎚ㆍ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4세대 D램을 양산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생산 중인 15나노미터 D램보다 한단계 높은 기술이다. 마이크론은 지난해에도 176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삼성전자의 128단 낸드플래시보다 앞선 기술이었다. 신기술을 선점해왔던 한국이 미국 마이크론에 선수를 내준 셈이었다. 

메모리 점유율 격차 좁혀졌나

위기론이 피어오른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에선 “삼성전자와 후발주자들 간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좁혀졌다”고 꼬집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2016년 D램 시장 1위 삼성전자와 3위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각각 46.6%, 20.4%였다. 26.2%포인트에 달했던 두 기업의 점유율 차이는 4년 만인 지난해 18.2%포인트로 좁혀졌다.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이 41.7%로 떨어지고, 마이크론이 23.5%로 올라서면서다. 

낸드플래시 상황도 비슷하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2위 키옥시아(전 도시바메모리)의 점유율 격차는 19.0%포인트에서 15.0%포인트로 줄었다. 심지어 최근 새어 나온 마이크론의 키옥시아 인수설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단숨에 3.6%포인트로 좁혀진다. 한국 메모리반도체를 둘러싸고 위기설이 불거질 만한 이유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우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 반도체는 이제 ‘쇠락의 길’로 접어든 걸까. 그렇지 않다. 많은 전문가는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말한다. “우려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선 안 되겠지만, 우려가 공포를 견인해서도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와 후발주자들 간 시장점유율 격차가 좁혀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서다. 2014년엔 삼성전자(40.4%)와 마이크론(24.6%)의 D램 시장점유율 격차가 15.8%포인트로, 지난해 18.2%보다 더 적었다.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도 마찬가지다. 2014년 삼성전자(28.4%)와 키옥시아(22.1%)의 점유율 차이는 6.3%포인트에 불과했다. 지난해 15.0%포인트보다 8.7%포인트나 좁은 간극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를 넣으면 국내 메모리반도체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두 기업의 지난해 합산 점유율은 71.1%로 2016년 72.2%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줄었지만 SK하이닉스의 시장점유율이 오른 덕분이다. 더구나 인수ㆍ합병(M&A)에 나선 기업은 마이크론만이 아니다. SK하이닉스도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추진 중이다. 어느 쪽에서 보든 국내 반도체를 향한 우려는 지나친 구석이 없지 않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반도체 시장의 시장점유율은 기간별로 달라지는데, 그에 따라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후발주자의 거센 추격에 긴장해야 하는 건 맞지만 당장 위기설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김 연구위원은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에 앞서 차세대 제품의 양산 소식을 알린 것을 두고도 “한국 기업들이 더 분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것만으로 경쟁 구도가 뒤바뀌진 않는다”며 말을 계속했다. “양산을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제품이 시장에 공급되는 건 아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전까지는 통상 삼성전자가 먼저 차세대 반도체 소식을 알렸는데, 이는 사실상 마케팅 측면이 강하다. 그동안의 투자 상황만 보면 삼성전자가 되레 더 공격적이었다. 마이크론의 발표가 실제 경쟁력 차이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냉철한 분석과 적절한 전략 필요할 때

이건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는 단편적인 사실만 본 것”이라면서 “양산은 마이크론이 빠를지 몰라도 셀 크기, 접목 기술 등에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제품 간엔)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의 역할은 커지고 반도체를 둘러싼 패권전쟁은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 반도체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에선 후발주자의 추격을 경계하고, 경쟁력이 부족한 비메모리반도체에선 분발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과도한 위기론은 이성적 판단을 저해하고 되레 위기를 부추길 수 있다. 지금은 냉철한 분석과 적절한 대응 전략이 필요한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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