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고점 전망한 한 IB 보고서
기업 체감온도, 지표 나쁘지 않아
하반기 메모리 계약 결과 긍정적
하지만 내년 전망 장담하지 못해
빨라지는 투자 속도는 우려할 만

‘메모리 시장에 겨울이 오고 있다(Memory - Winter Is Coming).’ 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보고서에서 시작된 메모리반도체 고점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이유다. 과연 메모리반도체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호황과 불황의 기로에 놓인 메모리반도체를 살펴봤다. 

올 하반기 메모리반도체 업황을 둘러싼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사진=뉴시스]
올 하반기 메모리반도체 업황을 둘러싼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사진=뉴시스]

연초만 하더라도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슈퍼사이클(초호황)’이 도래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언택트(비대면ㆍuntact)ㆍ펜트업(억눌린 소비 분출ㆍpent-up) 효과로 수요가 급증할 거란 이유에서였다. 시기적으로도 맞아떨어졌다. 통상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2~3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슈퍼사이클이 찾아왔던 때가 2018년이었으니 슬슬 업황이 되살아날 때가 된 셈이었다. 

기대감에 주가도 꿈틀거렸다. 삼성전자 주가는 5만원대에서 9만원대(1월 11일)로 껑충 뛰어오르며 ‘10만전자’를 넘어설 거란 기대가 쏟아졌고, SK하이닉스도 14만8500원(2월 25일)까지 올라 ‘15만닉스’를 돌파할 가능성을 높였다. 

달아오르는 업황을 반영하듯 메모리반도체 가격도 치솟았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1월 115달러였던 서버용 D램(DDR4 32GB) 가격은 6월 151달러로 뛰었다. 같은 기간 모바일용 D램(LPDDR4 8GB)은 28.0달러에서 30.2달러로, PC용 D램(DDR4 8Gb)은 3.0달러에서 3.8달러로 상승했다. 2.3달러였던 낸드플래시(256Gb TLC) 가격도 2.7달러로 올랐다. 

실적도 대폭 성장했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32조3100억원, SK하이닉스는 18조8159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양사가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던 2018년의 상반기 매출 35조8300억원, 19조902억원과 근접한 수준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할 거란 전망이 틀리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현재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흐르는 주된 기류는 기대가 아닌 불안이다. 시장의 기류를 바꿔놓은 요인 중 하나는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8월 11일 공개한 한 보고서다. 

보고서 제목은 다음과 같다. ‘메모리, 겨울이 오고 있다(Memory - Winter Is Coming)’. 메모리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고 있다는 게 이 보고서의 골자다. 쉽게 말해, 반도체 업황이 최고점(피크아웃)에 다다랐고, 이제 내리막길을 걸을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또다른 증권사들도 “수요업체들이 이미 충분한 반도체 재고를 축적했고, 언택트ㆍ펜트업 수요만으로는 큰 사이클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올 하반기부터 업황이 둔화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있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의 변화다. 지난 6월 4.6달러까지 올랐던 PC용 D램의 현물가가 7월 들어 상승세가 꺾이더니 8월엔 4.1달러까지 떨어졌다. 현물가는 기업 간 계약을 통해 책정되는 고정거래가격과 달리 업황이 빠르게 반영된다. 그 때문에 통상 현물가는 고정거래가격의 선행지표로 통한다. 현물가가 떨어졌으니 고정거래가격도 곧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메모리반도체 주문이 많은 상황에서도 노트북 제조업체들의 매출은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라면서 “이같은 미스매치가 의미하는 건 어딘가에서 재고가 쌓이고 있다는 건데, 결국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버 수요는 올 하반기 소폭 회복하겠지만 PC와 모바일 수요는 1분기 피크를 찍은 이후 모멘텀(상승 동력)이 둔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올 초부터 조금씩 뜨거워지던 메모리반도체 업황은 하락세로 접어든 걸까. 슈퍼사이클이 도래할 거란 전망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직 단언하긴 어렵다. 메모리반도체 고점론을 반박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내 반도체 제조업의 생산 활동이 여전히 활발하다는 게 그 첫번째 이유다.

이주완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생산과 출하가 역대 최고 수준임에도 재고는 매우 적다”면서 “2017~2018년 공격적인 설비투자로 생산능력이 크게 확대됐음에도 가동률지수가 높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데, 수요가 뒷받침되는 가운데 공급이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반도체 제조업의 생산능력지수ㆍ가동률지수ㆍ재고지수는 각각 222.1, 123.2, 116.5였다. 반면 반도체 업황이 한창 좋았던 2018년 7월 생산능력지수ㆍ가동률지수ㆍ재고지수는 각각 145.2, 118.6, 144.6이었다. 반도체 생산능력과 가동률은 높아졌고 재고 수준은 되레 낮아졌다는 얘기다.[※참고: 생산능력지수ㆍ가동률지수ㆍ재고지수의 기준은 2015년(2015년=100)이다. 가동률지수ㆍ재고지수는 계절변동요인을 제거한 계절조정 지수를 사용했다.]

 

메모리반도체 투자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메모리반도체 투자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온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올 하반기 메모리반도체 공급계약을 체결했거나 협상 중인데, 부정적으로 볼 만한 요인은 없다”는 게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측의 설명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통상 4~5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계약을 체결하는데, 호황기에는 계약기간이 1년까지 길어지기도 한다”면서 “이를 토대로 봤을 때 당장 올 하반기엔 수요 변화나 가격 조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럼 PC용 D램의 현물가가 떨어진 건 어떻게 봐야 할까.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추세를 봤을 때 급격한 하락은 아니다”면서 “단기적으로 소폭 하락하는 건 민감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더구나 PC용 D램 가격의 하락세가 장기적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의 비중이 15% 수준에 불과한 PC용 D램만 놓고 업황을 살피는 건 아무래도 과한 접근이기 때문이다.

김양팽 연구위원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5G가 본격 보급됨에 따라 모바일ㆍ서버 등 디바이스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도 늘고 있다. 특히 올 하반기부터 D램이 DDR4에서 DDR5로 전환되기 시작할 텐데, 그에 따라 교체 수요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거다. 일부 부정적 전망에도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가 지난 8월 보고서에서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성장률이 37.1%(6월 전망과 동일)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쉽게 속단하기 이르다는 거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외부환경요인이 다양해진 만큼 변동성도 높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코로나19 때문에 반도체 시장이 침체할 거라고 했는데 선방했다. 또, 올해 호황이 올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단기적인 전망은 내놓을 수 있어도 장기적인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당장 올해는 반도체 가격 조정이 없을 거라고 말할 순 있어도 내년엔 또 모른다는 거다. 분명한 건 예전에 비해선 상승 모멘텀이 확실히 떨어졌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말하는 슈퍼사이클이 실제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2022년 이후 메모리반도체의 미래를 속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반도체 투자 속도가 빨라지면서 공급과잉 리스크도 불거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2018년 상반기만 해도 3243억개의 메모리반도체를 만들 수 있었던 삼성전자의 생산능력은 3년 만인 올 상반기 2.4배(7872억개)로 커졌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생산능력도 8조4136억원 규모에서 12조2636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규모는 앞으로 더 증가할 공산이 크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D램ㆍ낸드플래시 분야의 장비 매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46%, 13% 늘어날 것으로 보여서다. SEMI는 “2022년엔 반도체 장비 매출액이 역대 최대치인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반도체 투자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요의 변동 폭이 큰 것과 달리 한번 늘어난 공급량은 다시 줄이는 게 쉽지 않다. 메모리반도체는 공장 가동을 멈췄을 시 손실이 큰 탓에 가동률 100%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 일부의 우려처럼 메모리반도체 고점론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막을 내렸던 2019년과 같은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기로에 놓여있다. 슈퍼사이클을 향해 내달릴지, 고점에서 고꾸라질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시장 안팎엔 기대보단 우려가 더 많이 깔려 있는 듯하다. 10만전자와 15만닉스를 바라보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각각 7만원, 10만원대로 떨어진 건 이를 잘 보여준다. 메모리반도체를 흔드는 불확실성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