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달라진 슈퍼사이클 주기
메모리반도체 불확실성 높아져
내년 메모리 업황도 장담 어려워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났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상승세로 접어든 지 불과 1년 만이다. 통상 슈퍼사이클 주기가 2년여간 이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이번엔 업사이클이 짧은 편이다. 하지만 반론도 많다. 지금은 슈퍼사이클이 끝날 시기가 아니고,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거다. 무슨 말일까.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내년부터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 거란 전망이 나왔다.[사진=연합뉴스]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내년부터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 거란 전망이 나왔다.[사진=연합뉴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슈퍼사이클은 통상 4~5년 주기로 찾아온다. 그렇게 찾아온 호황은 2년여간 지속된다. 하지만 이번엔 타이밍이 조금 빨랐다. 2018년 말 슈퍼사이클이 끝나고 불과 2년여 만인 2021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또 한번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실제로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지난해 말 바닥을 치고 올해 내내 상승세를 이어갔다.

호황이 2년여 지속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일러도 2022년 말까지는 이어져야 맞다. 하지만 최근 메모리반도체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올 4분기 고점을 찍고 내년부터 본격 하락세에 접어들 거란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D램 가격이 올 4분기 3~8%, 내년엔 15~20%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예상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상승곡선을 그리던 PC용 D램(DDR4 8Gb)과 서버용 D램(DDR4 32GB)의 고정거래가격이 지난 10월 각각 9.5%, 4.4% 하락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시그널은 또 있다. 일부에선 “고정거래가격의 선행지표로 통용되는 현물가격의 하락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슈퍼사이클 종결론’의 근거로 꼽는다. 실제로 지난 하반기 하락세로 돌아선 PC용 D램의 현물가격은 지금도 추락 중이다. 한때 5.1달러까지 올라섰지만, 지난 10월 3.4달러로 주저앉았다.

이를 감안했을 때 D램의 고정거래가격이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얘기다.[※참고: 고정거래가격은 반도체 제조업체와 수요업체 간의 계약을 통해 형성된 가격을 말한다. 통상 3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반면 현물가격은 시장에서 거래된 가격이다. PC용 D램과 낸드플래시에만 현물가격이 있다.]

 

그렇다면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은 불과 1년여 만에 막을 내릴까. 장담할 순 없다. 무엇보다 메모리반도체 불황의 시작을 알리는 근거 중 하나인 ‘현물가격’이 더 이상 선행지표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물가격(PC용 D램)을 보고 다른 메모리반도체 제품들의 가격 변화를 예측할 수 있었던 건 PC용 D램이 메모리반도체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할 때의 얘기였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메모리반도체 사용처가 다양해졌고, 모바일용ㆍ서버용 D램 수요가 PC용 D램의 수요를 앞질렀다. PC용 D램의 현물가격이 더 이상 다른 제품을 대표할 수 없게 됐다는 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PC시장이 크지 않고, 서버용ㆍ모바일용 제품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인공지능(AI), 자동차 등 메모리반도체가 필요한 디바이스가 더 다양해질 것”이라면서 “각각의 시장 상황이 다르고, 시장별로 영향을 받는 요인이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PC용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선행지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럼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내년에도 이어질까. 이 또한 장담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라보게 달라졌기 때문에 예전의 슈퍼사이클 주기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무엇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부쩍 높아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분위기를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 만큼 불확실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라면서 “부품 수급 문제와 그에 따른 생산 계획 조정, 전방산업의 반도체 재고 상황, 위드코로나 전환 등 변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을 판단하는 기준이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과거엔 무어의 법칙에 따라 2년마다 반도체 용량이 2배씩 증가했다. 전자업체들은 그에 맞춰 신제품을 개발하고, 메모리반도체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메모리반도체 기술이 사이클을 주도했다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공정이 미세화하면서 단기간에 기술을 높이는 게 어려워졌다. 전자업체들도 새 반도체 제품을 기다리지 않고, 신제품을 개발한다. 제품군도 다양해졌다. 언제 어디서 수요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예전과 같은 사이클이 더 이상 나타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이상 과거의 슈퍼사이클 주기를 잣대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전망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4~5년 주기로 나타나는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을 과거와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표면적으론 4~5년 주기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2017년 이미 10~20년 주기의 슈퍼사이클이 시작됐고, 그 안에서 회복기와 침체기의 부침이 반복되고 있다.” 2021년 호황을 맞았든, 2022년 불황을 맞든 큰 틀에선 ‘슈퍼사이클 범주’ 안에 있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불황이 찾아올 거란 위기론에도 정작 반도체 업계에선 별다른 우려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격조정이 온다고 해도 과거 불황 때처럼 큰 폭의 하락은 없을 거란 자신감에서다.

김양팽 연구위원은 “내년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거라고 하는데, 수요 감소라는 표현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스마트폰, PC 등 수요가 급증하면서 올해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부쩍 늘어난 측면이 있는데, 이 수요가 줄어든다고 해도 지난해보단 많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최대 20% 하락한다고 해도 2019년 때보단 여전히 높다”고 덧붙였다. 

일부의 전망처럼 내년 메모리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이 끝날지는 속단하기 이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슈퍼사이클을 가늠하는 판단기준도 흔들리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새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때까지 언제 호황이 올지, 호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가늠하는 것도 어려울지 모른다는 거다.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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