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공무원도 재정 상황 잘 몰라
주먹구구 재정운영에 예산 남아돌아
정보 제공 방법만 바뀌어도 큰 개선

한 해 얼마의 세금이 걷히고 얼마를 써야 할지를 몰라 수시로 추가경정예산을 짜놓고, 매년 돈을 남기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면 어떻겠는가. 일부의 얘기가 아니다. 전국 지자체들이 이렇게 남긴 돈이 2019년 기준 66조원에 달한다. 이를 개선해야 할 텐데, 문제는 일선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속한 지자체의 예ㆍ결산 현황조차 제대로 모른다는 점이다.

지자체들은 매년 3~5회의 추경을 하고 있지만, 꼭 필요한 추경인지는 의문이다. 예산이 남는 경우가 허다해서다.[사진=뉴시스]
지자체들은 매년 3~5회의 추경을 하고 있지만, 꼭 필요한 추경인지는 의문이다. 예산이 남는 경우가 허다해서다.[사진=뉴시스]

일반 기업에선 지출 후 돈이 남으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나랏돈은 그렇지 않다. 돈이 남거나 모자라다는 건 사업 계획을 잘못 짰거나 혹은 계획을 짜놓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여서다. 예산과 결산이 딱 맞아야 좋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재정운영 상황을 보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나라살림연구소가 확인해보니 지자체의 세계잉여금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세계잉여금은 예산보다 더 거둬들인 세금과 세출불용액(예산 중 쓰고 남은 돈)을 합한 것인데, 2019년(2018년 회계 기준) 전국 243개 지자체의 세계잉여금은 69조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중앙정부에서 지급한 보조금 잔액들을 반납하고 최종적으로 남은 돈을 의미하는 순세계잉여금은 35조원에 달했다. 2020년(2019년 회계 기준) 잉여금은 66조5000억원(순세계잉여금 31조7000억원)이었다. 지자체의 재정운영 계획과 실제가 그만큼 차이가 난다는 거다. 

뭔가 개선해야 할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이런 잉여금 현황을 해당 지자체 소속 공무원들조차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년간 지자체장, 예산 담당 공무원, 지자체 의회 소속 의원 등을 만나 세금 관련 문제를 자문하는 과정에서 직접 느낀 결과다. 그들은 대부분 예ㆍ결산 현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개선 의지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아마도 예ㆍ결산 현황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를 발행하도록 의무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나라살림연구소가 A시 재정 현황을 살펴볼 때의 일이다. 2016년 이후부터 2020년까지 5년간의 연도별 재정현황을 살펴보려 했다. 이를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선 예산과 세입ㆍ세출결산 현황을 살펴보면 된다. 하지만 이 기초적인 내용을 살펴보는 데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우선 예산 재정공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예산 수치는 ‘본예산’뿐이다. 하지만 본예산만으로는 재정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최근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서 추경이 기본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서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자체의 재정을 모니터링해 본 경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자체는 2013~2016년에 약 3회, 2017년부터는 약 5회까지 추경을 하고 있다. 본예산과 함께 추경예산까지 살펴봐야 그해의 재정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지자체가 추경을 할 때마다 별도의 추경예산서가 발생하고, 각 추경예산서를 별도로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연도에 5회까지 추경을 했다면 그해에는 총 5개의 추경예산서가 생긴다.

결국 당해 연도 재정현황 파악을 위해서만 본예산과 세입결산, 세출결산, 그리고 5개의 추경예산서까지 총 8개의 파일을 살펴야 하는 셈이다. 최근 5년간 재정현황을 파악하려 한다면 추경 5회 기준 총 40개의 파일을 살펴야 한다. 심지어 추경예산서는 PDF다. 수치를 일일이 수기로 적어야 한다는 거다. 

정보 제공 방법만 바꿔도

한 해 전체 예산만 살펴보는 것도 이렇게 번거로운 상황에서 상세 예산까지 모니터링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전국 지자체가 243개라는 걸 감안하면 전국 지자체의 재정현황 파악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치 예산 모니터링이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이렇게 설계를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 귀찮은 작업을 통해 일부러 재정현황을 살펴보고 개선 방안을 도출하려 노력하는 공무원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만약 그런 공무원이 있다면 전국 지자체에 잉여금이 66조5000억원이나 쌓이도록 두고 보지도 않았을 거다. 

대부분의 공무원은 자신들이 속한 지자체의 예·결산 현황도 잘 제대로 모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부분의 공무원은 자신들이 속한 지자체의 예·결산 현황도 잘 제대로 모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나라살림연구소가 살펴본 A시의 재정현황은 어땠을까. 지난 2020년을 기준으로 볼 때 본예산이 5834억원, 최종추경예산이 9040억원, 세입결산이 1조1808억원, 세출결산이 8725억원이었다. 본예산은 세입결산의 49.4%, 세출결산의 66.8%에 불과하다. 세출결산은 세입결산의 73.9%다. 추경예산은 본예산의 1.5배에 달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 해에 세금이 얼마나 걷히고, 얼마의 세출 사업이 필요한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거나 다름없다. 예ㆍ결산 현황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고, 가공할 자료를 발행하도록 의무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참고: 특히 행정안전부에서 매년 게시하는 ‘지방재정공시 편람’은 개선이 필요하다. 여기엔 그해의 지방재정공시 작성법과 바뀐 법령 등을 안내하고 있는데, PDF로 제공하고 있어 민간에서는 해당 자료를 모니터링하고 가공하기가 어렵다.] 

공공의 데이터는 단지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공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혁신도 일어날 수 있다. 잉여금 66조5000억원도 줄일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꽤 쏠쏠한 혁신이 아닐까. 

송윤정 나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원
7566767@gmail.com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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