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 몰려든 청년주택 사업자들
의무임대 기간 고삐 풀리면
임대료 제한도 없이 공급 효과 볼까

2016년 발표된 ‘역세권 청년주택’ 정책은 주택 개발을 하고 싶어 하던 토지주, 투자처를 찾던 자산운용사의 리츠(REITs), 상가 분양을 해오던 소규모 시행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의무임대라는 족쇄가 있었지만 서울시에 사업 의사를 밝힌 사업지만 150곳이었다. 입주 대상자인 청년들의 관심도 컸다. 경쟁률은 수십 대 1을 가볍게 넘겼다. 공급도 수요도 문제없어 보이지만 의무임대기간 ‘8년’이 지난 후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서울시가 2016년 발표한 역세권 청년주택 정책은 태생적 한계가 숱했다.[사진=뉴시스]
서울시가 2016년 발표한 역세권 청년주택 정책은 태생적 한계가 숱했다.[사진=뉴시스]

2015년 1월 서울시는 실패한 주택정책으로 평가받던 ‘역세권 시프트’를 다시 살폈다. 핵심은 지하철역으로부터 반경 500m인 역세권에 ‘장기 전세주택’을 공급하는 거였다. 성과는 이번에도 신통치 않았다. 사업 초기 500여호가 공급된 이후 진전된 결과물이 없었다. 재건축처럼 민간에서 조합을 만들어야 했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땅값이 저렴한 곳에서 사업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난관이었다. 이름은 ‘역세권 시프트’였지만 정작 땅값이 비싼 역 근처에선 개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6년, 서울시는 ‘역세권 시프트’와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정책을 결합해 청년층을 위한 주거대책을 발표했다. 이게 바로 ‘역세권 청년주택’이다.[※참고: 발표 당시에는 역세권 2030 청년주택으로 발표됐다.] 서울시는 ‘역세권 시프트’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역세권 범위를 250m로 좁히고 조합 없이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역세권 청년주택을 위한 ‘당근’은 명확했다. 용적률을 완화하고 층수 제한을 풀었다. 규제 완화에 지원책도 더해졌다. 사업 시행자는 건설 비용까지 2%대의 저리로 빌릴 수 있었다. 당근만 있던 건 아니었다. ‘고삐’도 있었다.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공급되는 주택의 10~25%는 공공에 기여해야 했다. 서울시는 최종적으로 평균 20%의 공공기여분을 확보해 공공임대로 공급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남은 80%의 주택에도 제한을 걸었다. 뉴스테이처럼 8년간 의무 임대하고 연간 임대료 상승선은 5%로 규제했다.

정책이 발표되자 갑론을박이 오갔다. “민간에 과도한 특혜를 준다” “8년 뒤 의무 임대가 끝난 뒤 사업자가 분양을 선택하면 용적률 완화나 건설 비용 저리 융자라는 혜택은 말짱 도루묵이 아니냐”는 거였다. 정책 발표 후 서울시는 “150개 사업지에서 검토를 요청했다”며 “성공적인 정책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검토를 요청한 150개 사업지 중 실제로 적합하다는 판단을 받은 곳은 19개였고 도시계획 고시문에 따르면 그해 사업지구로 지정된 곳은 4곳이었다. 민간 사업자의 관심은 꾸준히 이어져 2021년 7월 기준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촉진지구 지정을 위한 공람이 이뤄진 사업지는 100곳 이상으로 늘었다. 5년 만에 25배가 된 거다. ‘고삐’가 있어도 ‘당근’을 노린 사업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럼 누가 이 사업을 원했던 걸까. 이 질문은 역세권 청년주택의 진짜 수혜를 누렸을까란 의문으로 이어진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시 도시계획 고시문과 역세권 청년주택 안내 페이지를 통해 역세권 청년주택에 뛰어든 사업자들을 살펴봤다.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지의 평균 대지면적은 2715㎡(약 821평)다. 이보다 작은 1000㎡(약 302평) 사업지는 대부분 토지주가 시행사를 만들어 사업을 직접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이보다 규모가 커지면 부동산펀드나 리츠(REITs) 투자가 이뤄진다. 

눈에 띄는 곳은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이 리츠로 투자한 곳은 강동성내 역세권 청년주택(5893㎡ㆍ약 1782평)과 용산구 원효로3가 역세권 청년주택(1만6745㎡ㆍ약 5065평) 등이다. 2017년 탄생한 부동산 개발사 이지스리뉴어블스는 4개 사업지에서 역세권 청년주택을 추진 중이다. 비수도권에서 상가를 주로 분양하던 시행사 에드가도 역시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 GS건설의 자회사 자이S&D는 매입한 주유소 부지 4곳을 활용해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에 나섰다.

건설사들 역시 청년주택 시공에 관심을 보였다. 서울에서 정비사업 수주가 어려운 중견 건설사들이 대표적이다. 1호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충정로 역세권 청년주택’은 롯데자산개발이 시행을 맡았고 시공은 대보건설이 했다.

1000세대 규모 이상으로 ‘대규모 역세권 청년주택’의 이미지를 심은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8671.1㎡ㆍ약 2627평)’는 호반건설이 만들었다. 호반건설은 은평구 대조동(8661㎡ㆍ약 2624평)에도 비슷한 규모로 역세권 청년주택을 시공 중이다. 효성중공업도 ‘서교동 효성 해링턴 타워’에 이어 강동성내 역세권 청년주택 등을 수주했다. 한화건설 역시 영등포구 당산동2가 역세권 청년주택(대지면적 6316㎡ㆍ약 1913평)을 아파트 브랜드인 ‘포레나’로 만든다. 중견 건설사 입장에서는 역세권 청년주택이 서울 역세권에 ‘브랜드’를 광고할 수 있는 기회다.

 

서울시는 토지주들이 의무 임대 기간이 지나면 분양 대신 임대를 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사진=연합뉴스]
서울시는 토지주들이 의무 임대 기간이 지나면 분양 대신 임대를 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사진=연합뉴스]

사업자만큼 입주 대상자인 청년들의 관심도 컸다. 어바니엘 충정로, 숭인동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 등 대규모 청년주택의 청약 경쟁률은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발표된 직후부터 크게 두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째는 임대료다. 약 20%에 해당하는 공공 기여를 제외하면 나머지 80%인 민간 임대주택은 시세와 비슷한 가격에 임대료가 책정된다. 

서울시는 “뉴스테이는 최초 임대료를 민간이 자율적으로 결정하지만 역세권 청년주택은 다르다”며 “최초 임대료 산정 시 서울시가 개입하고 주변 시세를 고려해 중위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다”고 설명했지만 함정도 있다. ‘시세’가 오르면 역세권 청년주택의 임대료도 따라갈 수밖에 없어서다. 여기에 운영 사업자들이 ‘월 임대료’ 대신 ‘관리비’를 올리는 방식을 적용하면서 청년들이 부담해야 할 월 주거비는 더 커진다.

둘째 약점은 의무임대기간(8년)이 지난 후 사업의 향방이다. 8년 뒤 민간 임대주택을 팔아버리면, 청년주택의 근간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사업주 입장에선 당근을 쏙 빼먹고 또다시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주택의 취지 따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선택지도 넓다. 혹여 원하는 차익을 거두기 힘들다면 의무임대기간이 끝나고 계속 임대 사업을 하면 된다. 그때가 되면 임대료 상한선도 없다. 

 

서울시는 “전문가의 의견을 검토해보면 토지주들은 매각보다 임대 운영을 선호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며 “8년 뒤에도 임대주택 공급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민간 임대주택의 연 임대료 5% 상승 제한은 사라진다. 서울시가 예상한 대로 ‘임대’가 계속되더라도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부동산 투자업계 관계자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8년 의무 임대 후 수익이 나는 시점에 팔면 그만”이라며 “땅값이 오르는 데도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되물었다.

2016년 당시 많은 이들이 서울시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시세에 끌려다니는 초기 임대료를 막을 방도가 없어 보인다”. “8년 뒤 사업자들이 매각하면 또다시 고소득자만 역세권 주택을 차지하는 셈 아니냐.” 아쉽게도 이 질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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