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1년 서울 입주 아파트
도색·배치·층수로 임대 주택 구분한 곳 있어
신축 아파트에는 소셜믹스 더 꼼꼼히 적용

서울에 있는 전체 주택 중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10% 안팎이다. 10호 중 1호는 임대주택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임대주택을 색으로, 장소로, 높이로 차별하는 사례는 툭하면 미디어를 타고 세상에 전파된다. 정말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는 ‘공존’할 수 없을까. ‘소셜믹스’는 닿을 수 없는 목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2020년~2021년 9월 10일 서울시에 입주한 아파트 단지 14곳의 실태를 살펴봤다. 발품을 판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임대 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섞어 짓도록 하는 소셜믹스는 그간 숱한 ‘꼼수’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웠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임대 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섞어 짓도록 하는 소셜믹스는 그간 숱한 ‘꼼수’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웠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2년 서울시는 ‘뉴타운’ 정책으로 서울의 그림을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강북에 있는 ‘낡은 집’들을 ‘새집’으로 다시 만들겠다는 거였다. 그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2008년에는 ‘17%’라는 조건도 생겼다. 뉴타운 지역에서 ‘재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 만들어지는 아파트 세대 수의 17%를 임대주택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 비율은 13년간 널을 뛰었다. ‘17% 이상’이었던 임대주택 의무 비율은 3년 만인 2011년 ‘17~20%’로 변경됐고, 또 3년 후인 2014년 9월엔 하한선이 사라지고 ‘15% 상한선’이 생겼다. 하한선이 사라졌지만 임대주택이 ‘제로’인 재개발 아파트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임대주택을 단지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7년 만인 2021년에야 임대주택 ‘하한선’이 다시 생겼다. 전체 세대수의 10~20%였다.

풍파가 있었지만 서울에 ‘새 아파트’를 만들 때 ‘임대아파트’는 필수 요건이 됐다. 앞으로 임대아파트 비중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정부는 공공재건축ㆍ공공재개발에서 임대아파트 비중을 더욱 키웠고, 서울시도 최근 지지부진한 아파트 재건축 사업장에 “중대형 임대아파트를 넣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임대주택이 늘어난 만큼 차별도 그림자처럼 뒤따랐다. ‘낮은 층수’ ‘다른 재질의 외벽’ 등으로 임대아파트는 분양아파트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지기 일쑤였다. 

경제력에 차이가 있는 입주민들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었던 ‘소셜믹스(Social Mix)’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다면 ‘소셜믹스’를 제대로 구현한 아파트 단지는 얼마나 될까. 임대아파트의 ‘숫자’는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는 건 가보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2020년부터 2021년 9월 10일까지 입주한 서울 아파트 단지는 48개(한국주택협회)다. 이중 구로ㆍ서대문ㆍ양천ㆍ영등포ㆍ용산ㆍ은평구에 있는 아파트 단지 14곳을 둘러보고 소셜믹스의 현주소를 확인해봤다.

■구분짓기❶ 색깔 =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구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색’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지만 전체가 임대동인 아파트는 다른 색상으로 칠하는 식이다. 2000여 가구에 달하는 강북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30개 동 이상이 한번에 만들어진 이 초대형 아파트 단지는 입구 쪽에 있는 2개 동이 임대아파트였다. 외형은 다른 동과 비슷하지만 색은 완전히 달랐다. 한눈에 들어오는 ‘구분 짓기’였다.

■구분짓기❷ 길 = ‘색’이 아닌 ‘길’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법적 근거를 활용한 것이어서 약간은 교묘한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주택법에서는 ‘주택 단지’를 나누는 기준을 ‘길’로 제시한다.

주택법 2조 12항에 따르면 주택 단지는 ▲철도 ▲폭 20m 이상의 일반 도로 ▲폭 8m 이상인 도시계획예정도로나 이와 비슷한 시설이 있다면 나눌 수 있다. 예컨대, 폭 8m 도로(2차선 도로)만 있어도 법적으로 아파트 한 단지를 두개로 쪼갤 수 있는 셈이다. 

구로구에서 확인한 아파트 단지가 그랬다. 아파트 단지로 진입하는 도로는 2차선으로 이뤄진 회전 교차로였다.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는 둘로 나뉘었다. 1단지는 아파트 수개동이 몰려 있었지만 도로 반대편에 있는 2단지는 1개 동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 1개 동이 바로 임대동이었다.

다만, 이 도로가 갑작스럽게 생긴 건 아니다. 원래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전부터 2차선 도로가 있었다. 이 도로를 완전히 없애는 대신 일부는 공원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아파트 진입로로 사용한 거다. 이건 불가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없는 도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서대문구와 양천구에 있던 몇몇 아파트 단지는 재개발을 하면서 새 도로를 마련했다. 한 단지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 사이를 도로가 가로지르도록 만들어 뒤편에 있는 주택가와 기존의 큰길을 이었다.

거대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단절될 수 있었던 공간에 교통 인프라를 제공한 거였다. 이 과정에서 단지는 두개로 나뉘었고 한쪽에 임대주택 아파트를 몰아넣었다.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 또 다른 단지는 아파트 사이에 ‘길’을 내면서 임대동과 분양동을 의도적으로 나눴다. 심지어 자동차 진출입구까지 따로 만들었다. 분양아파트 단지와 임대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게끔 만든 셈이다.

그렇다고 길의 공공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파트 뒤편의 주택과 앞쪽의 길은 단절돼 있었다. 혹시 원래 있던 도로가 아닐까 싶어 과거의 흔적을 확인했지만 아파트가 만들어지기 전 이곳은 평범한 주택가였다. 아파트를 분양동과 임대동으로 구분 짓기 위한 도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거다. 

■구분짓기❸ 층수 = 임대동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층수’다. 영등포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는 26~30층짜리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한데 섞여 있다. 하지만 높이 뻗어있는 스카이라인이 ‘특정동’에 이르러 급하게 추락하는데, 그 부분이 10층 이하 임대아파트의 시작점이다. 임대아파트의 층수를 높이는 게 일조권이나 조망권 침해 때문에 좌절된 탓일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이 임대아파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주택의 거리는 직선으로 30m 이상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저 차가 있었다. 어떤 임대동 뒤엔 주택이 아예 없기도 했다. 규제 등을 이유로 임대아파트를 낮게 만든 게 아니란 방증이다. 

이 지점에선 의문이 있다. 이렇게 ‘구분’을 지은 아파트는 합법일까. 서울시의 기준에 따르면 ‘외형으로 임대아파트를 차별하는 경우’는 기준 미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구분 짓기를 바로잡지 못한 까닭은 또 뭘까. 답은 두가지다. 첫째, 구분하지 말라고 강제할 수 없다.

둘째, 구분했더라도 페널티를 매길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정부나 지자체로선 ‘임대주택 비중’을 강제하고 있지만 배치 방식까지 강제할 순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소셜믹스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건축 계획을 수립했더라도 사업이 중단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안 지켜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셜믹스의 미래가 불안정한 것만은 아니다. 법적 허점과는 별개로 소셜믹스는 조금씩 사회를 파고들고 있다. 더스쿠프 취재팀이 둘러본 14개 단지 중 임대아파트를 색, 도로, 층수로  구분한 단지는 절반 이하인 6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8개 단지는 임대ㆍ분양아파트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지나치게 큰 면적’ 때문에 불가피하게 도로로 ‘동’을 나눈 단지는 있었지만 임대와 분양을 구분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단지를 나눴더라도 임대아파트를 한쪽에 몰아넣지도 않았다.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비슷한 층수로 만들어진 단지도 흔했다.[※참고: 물론 ‘복도식 배치’가 적용된 아파트 대부분이 임대동이었지만 이는 전용면적이 59㎡ 이하여야 하는 임대주택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일 뿐이었다.] 

이처럼 임대동이 아파트에 스며든 곳이 많다는 건 소셜믹스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수 있다. 최근엔 더 긍정적인 움직임도 있다. 서울시는 아파트 건축 계획을 심사할 때 소셜믹스 기준을 더 까다롭게 확인하기로 했다. 

아파트 도색, 출입구와 층수 등으로 임대아파트를 구분하는 건 소셜믹스 기준 미달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아파트 도색, 출입구와 층수 등으로 임대아파트를 구분하는 건 소셜믹스 기준 미달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 색상을 다르게 만들거나 도로로 단지를 나누는 행위, 층수로 임대아파트를 차별하는 행위 모두 소셜믹스 기준을 따르지 않는 행위”라며 “수년 전에는 소셜믹스 기준이 비교적 느슨해 이런 건축 계획들이 크게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셜믹스를 엄격하게 적용해서인지 최근 통과된 건축 계획들은 대부분 도시건축계획위원회에서 제시한 (소셜믹스) 기준을 충족한 상태다. 가면 갈수록 ‘차별 아파트’가 줄어들 거란 뜻이기도 하다.


소셜믹스는 ‘별종’이 아니다

기준만 바뀌는 건 아니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주민의 요건도 다양해지고 있다. 정부는 임대주택 입주 조건을 더 느슨하게 만들고 있다. 시세의 60~80% 수준으로 입주할 수 있는 행복주택(맞벌이 가구)의 경우,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20%까지 신청 조건을 넓혔다.

통합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려는 가구는 같은 기준일 때 중위 소득의 180%까지 신청할 수 있다.[※참고: 2021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20%는 2인 가구 기준 547만5042원, 중위 소득의 180%는 555만8542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임대아파트는 평범한 주거 형태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입주 조건이 완화되면 임대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사람도 많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아울러 분양과 임대의 외형적 구분을 막는 지자체의 기준도 섬세해지고 있다. 소셜믹스가 ‘특이한 아파트’가 아니라 ‘평범한 아파트’의 기준이 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색’으로 ‘길’로 ‘층’으로 임대아파트를 구분한 아파트 단지가 ‘구시대의 흔적’이 될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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