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51~301위 기업과 대형 위기
위기 성격에 따라 시총 주도주 완전히 달라져
2008년 금융위기 - 지주회사, 금융, 전기·전자
2020년 코로나19 - 제약·바이오, 게임, 방송·IT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와 같은 큰 위기는 기업의 실적과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경제는 물론 국내 경기도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어서다. 대형 위기가 닥칠 때마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의 시가총액 순위가 크게 출렁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국내 증시에선 두 위기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이를 분석하기 위해 더스쿠프(The SCOOP)가 2007~2009년, 2019~2021년 국내 증시 시총 순위 151~301위 기업의 변화를 살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참고 : 시총 1~150위를 분석한 결과, 상위권을 구성하는 기업은 위기 전후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시총 151~301위에 속한 기업들의 순위는 요동쳤다. 시총이 작은 기업일수록 갑작스러운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거다. 더스쿠프가 시총 중위권 기업의 순위 변화를 분석한 이유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같은 위기는 기업의 경영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사진=연합뉴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같은 위기는 기업의 경영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사진=연합뉴스] 

기업의 경영 환경은 변화무쌍하다. 숱한 요인이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가장 중요한 건 경기지만 정치는 물론 계절적 변화도 변수로 작용한다. 기업을 살아있는 생명에 비유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렇게 예측하기 힘든 시장에서 영원한 건 없다.

지금 기업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꽃길’만 걷는 건 아니다. 잘나가던 기업이 위기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시대와 기술의 흐름을 좇지 못한 탓에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위기가 기회로 작용하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닥친 ‘큰 위기’는 기업의 흥망을 가늠한다. 코로나19가 대표적 사례다. 코로나19로 수혜를 입은 기업도 있지만 벼랑에 몰린 곳도 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여행·항공 관련 기업은 아직까지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관련 기업의 보릿고개가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대로 IT, 플랫폼, 제약·바이오 기업은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울다 웃은 업종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침체 이후 찾아온 경기 반등세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해운·운송 관련 기업이다. 글로벌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운임비가 크게 상승한 탓이다.


이런 변화는 국내 증시의 시총 상위 종목의 순위까지 흔들어 놓고 있다. 지난해 7월 15일만 해도 국내 시총 순위(코스피+코스닥) 8위였던 카카오의 순위는 1년 만에 3위로 수직 상승했다. 같은 기간 대표적인 콘택트 산업인 카지노·여행·숙박업을 영위하는 강원랜드의 시총 순위는 46위에서 66위로 20계단 하락하며 국내 증시 시총 상위 50위에서 밀려났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시총 순위가 크게 출렁였다는 것이다. 시총 상위 종목이 이렇게 흔들렸다면 시총 중위권 기업은 더 큰 변화를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산업의 구조상 시총 상위 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기업이 시총 중위권 기업에 많이 포진해 있어서다. 시총이 상대적으로 작은 만큼 시장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을 가능성도 높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 시총(우선주 제외) 151~301위 기업의 순위 변화를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참고: 갑작스럽게 터진 위기가 기업과 시총 순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과 코로나19가 퍼진 2020년을 기준으로 삼고, 각 기준의 앞뒤 1년의 변화를 분석했다. 2021년 비교 시점은 6월 30일이다.]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터진 위기는 중위권 기업의 시총 순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08년 금융위기 = 13년 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7년 5.5%에서 2009년 -0.6%로 고꾸라졌다(국제통화기금 기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도를 비교적 잘 넘었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도 같은 기간 GDP 성장률이 5.2%에서 0.7%로 4.5%포인트나 떨어졌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 글로벌 경기침체가 독으로 작용한 탓이었다.

당연히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내 시총 중위권 기업에도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시총 151~301위에 속한 150개 기업의 전체 시총 규모는 2007년 70조7627억원에서 2008년 38조2576억원으로 45.9%(32조5051억원)나 감소했다. 순위도 크게 달라졌다. 150개 기업 중 2007부터 2009년까지 시총 순위 중위권을 유지한 기업은 66곳밖에 없었다. 나머지 84개 기업은 순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중위권을 들락거렸다.

특히 2007년 시총 순위 151~301위 기업 중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 5년이 흐른 2013년까지 상장폐지되거나 흡수·합병돼 사라진 기업은 22곳에 달했다. 시총 순위 중위권 150개 기업 10곳 중 1곳 이상이 글로벌 금융위기 거치면서 사라진 셈이다. 대표적인 기업은 성원건설(2010년), 케이씨오에너지(2010년), 평산(2012년), SSCP(2012년), 포휴먼(2011년) 등 5곳이었다. 상폐 이유는 자본잠식, 감사의견 거절 등이었다.

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의 체질이 제조업에서 기술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의 체질이 제조업에서 기술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총 중위권을 차지한 업종별 비중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7년 21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건설업종(건축자재 포함)의 수는 2008년 한 자릿수인 8개로 감소했다. 금융위기에서 기인한 경기침체가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2007년 시총 순위 202위였던 태영건설의 시총 순위는 2008년 475위, 2009년 502위로 떨어졌다. 경남기업은 2007년 186위에서 2009년 431위로 하락했고, 코오롱건설의 시총 순위도 같은 기간 262위에서 445위로 183위나 낮아졌다. 반대로 지주회사는 2007년 6곳에서 2009년 13곳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는 함의가 크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부실사업 정리 등 기업구조조정이 수월하고, 신사업 진출이 쉽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시총 중위권 기업이 글로벌 금융위기란 큰 위기 앞에서 회사를 접거나, 새로운 시장 진출을 모색했다는 얘기다. 정용택 IBK 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09년 당시 정부가 금산분리 규정을 완화하는 등 기업의 지주사 전환을 독려했다”며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을 재정비하는 과정까지 겹치면서 지주회사가 많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시총 중위권 기업 중에선 전기·전자, 반도체 관련 기업도 증가했다. 반도체 관련 기업은 2007년 13개에서 2008년 10개로 소폭 감소했지만 2009년엔 18개로 증가했다. 불황일 때 투자를 더 늘린 전략의 결과로 풀이되는데, 이 베팅은 적중했다. 반도체 시장이 2010년 이후부터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출 비중에서 반도체의 비중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2010년 이후다.

■2020년 코로나19 = 21세기 인류가 겪은 가장 큰 사건은 ‘코로나19’일 것이다. 연대 표기법을 기원전과 기원후를 의미하는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가 아닌 B.C(Before COVID)와 A.C(After COVID)로 바꿔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코로나19는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20년 전세계 GDP 성장률은 -3.5%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 전세계 GDP 성장률이 -0.9%(2009년)를 기록했다는 걸 감안하면 코로나19가 세계경제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국면에서 국내 시총 중위권 150개 기업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150개 기업의 전체 시총은 늘어났다. 2019년 128조786억원이었던 150개 기업의 시총은 지난해 169조9198억원으로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엔 211조3513억원으로 더 커졌다. 1년 반 사이에 시총이 65.0%(83조2727억원) 늘어난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불어닥친 주식투자 열풍이 시총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실적이 악화해도 주가만 상승하면 시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선 주목할 게 있다. 주가뿐만이 아니라 실적도 개선됐다는 거다. 코스피 상장사의 순이익은 2019년 53조7039억원에서 지난해 63조4533억원으로 18.1% 증가했다.

코스닥 상장사의 순이익도 같은 기간 13.0 %(2019년 3조4244억원→ 2020년 3조8702억원) 증가했다. 업종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코로나19의 영향에도 기업의 실적 성장세는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의 체질이 전통산업인 제조업에서 IT·반도체와 기술주 중심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언택트를 중심으로 한 IT 관련주의 실적은 좋아졌다”며 “제약·바이오 기업 중에서도 좋은 성과를 낸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 구조의 변화가 나타난 결과”라며 “코로나19가 증시 주도주에도 영향을 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에서 올해 상반기 국내 증시 시총 중위권 150개 기업에서도 이런 변화는 나타났다. 소비자와 대면할 수밖에 없는 업종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대표적인 게 가전 유통기업 롯데하이마트다. 2019년 250위였던 이 회사의 시총 순위는 지난해 303위, 올해는 326위로 밀려났다. 전기·전자 업종의 비중도 2019년 11개에서 올해 5개로 줄어들었다.

반면, 반도체 소재나 장비 관련 기업은 2019년 2개에서 올해 6개로 증가했다. 비대면 관련 산업인 방송·IT 등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반도체 검사 장비를 생산하는 리노공업의 시총 순위는 2019년 193위(시총 9800억원)에서 올해 138위(2조6750억원)로 55계단 상승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제약‧바이오주를 향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졌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제약‧바이오주를 향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졌다.[사진=뉴시스]

뭐니뭐니 해도 가장 가파르게 약진한 건 제약·바이오업종이다. 시총 순위 중위권에 속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수는 2019년 23곳에서 지난해 36곳으로 56.0%(13곳) 증가했다. 올해는 29곳으로 감소했지만, 2019년보단 많은 수다. 제약·바이오 기업 중 시총 순위가 수직 상승한 곳은 셀트리온 제약이다. 시총 중위권에서 맴돌던 이 회사는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2019년 151위→2020년 36위→올해 61위).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도 지난해 시총 순위가 반짝 상승했다가 올해 소폭 떨어지는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이는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 개발 가능성에 제약·바이오를 향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치료제나 백신 개발의 속도가 더뎌지면서 관련 기업의 주가도 하락하고 있다.

시총 중위권에서 게임 관련 기업도 2019년 2곳에서 올해 5곳으로 증가했다. 특히 ‘쿠키런: 킹덤’으로 대박이 난 데브시스터즈의 시총 순위는 2019년 1404위에서 올해 272위로 1132위나 올랐다. 시총은 816억원에서 1조488억원으로 12.8배가 됐다.

최석원 SK투자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시총 순위의 변화에서도 지금 어떤 종목이 투자자의 관심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며 “코로나19의 시국이 계속되면 언택트 관련주를 향한 관심은 다시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카오와 네이버의 시총이 3·4위를 차지한 것도 이런 변화가 반영된 결과”라며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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