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싱즈의 선행후지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주희朱熹는 ‘선지후행先知後行’ 사상을 정립했다. 먼저 알고 나서 행동한다는 주장이다. 세월이 지나 명나라의 왕양명王陽明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내놓는다. 앎과 행동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 새로운 사상이 주목받고 있다. 행동해야 알게 된다는 ‘선행후지先行後知’다.

중국에서 ‘선행후지’ 사상이 태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중국에서 ‘선행후지’ 사상이 태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중국의 현재 대입 시험제도 방식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선행후지先行後知’의 교육철학을 잉태하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국가의 교육정책도 경험을 우선시하는 ‘선행후지’ 방식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경험 우선적인 행동을 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선행후지’ 철학을 창시한 인물은 바로 중국의 현대교육가 타오싱즈陶行知다. 타오싱즈는 학생에게 책부터 주지 말라고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학생은 책을 사용할 뿐,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도서실에서 책을 보고, 교실에 있으면 책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생활을 위해 책을 사용하고, 책을 위해 책을 읽지는 않는다. 특히 자신이 직접 체험해 얻은 지식이 아니면 남이 아는 바를 아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직접 경험’을 강조했던 그는 1927년 난징南京에 효장사범을 설립했다. 이때 그는 교생실습 과정을 졸업 학년이 아닌, 1학년에 이수하도록 하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선행후지 교육을 반영한 대표적 사례다. 

사실 타오싱즈가 주창한 선행후지 개념은 이미 일상에서 통용되고 있다. 먼저 먹어보고 제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대형마트의 시식코너는 대표적인 선행후지적 사례다. 시식코너를 운영하는 제품은 최소 30%, 최대 6배까지 매출이 증가한다는 통계결과는 상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2015년 한국의 모 방송사 관계자들이 필자의 소개로 장쑤성江蘇省에 있는 방송국을 방문한 적 있다. 당시 한국 측은 출장 계획서부터, 방문도시 및 회사를 연구·분석한 두꺼운 자료를 준비했다. 먼저 알고, 그 뒤에 행동한다는 ‘선지후행’ 방식의 접근법이다.

같은해 이번엔 중국의 한 방송국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출장 왔다. 목적은 방송 분장술을 습득(기술제휴)하는 거였다. 3명이 출장 왔는데, 계획서 같은 문건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우선시했던 건 분장술 관련 제휴가 가능한 곳을 찾아가 경험해보는 거였다. 

필자가 중국기업과 한국기업이 만날 때마다 느끼는 대표적 차이 중 하나는 한국기업은 미팅을 시작할 때 준비된 계획서를 먼저 전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국 측이 미팅 시작단계에서 기획서를 전달하는 것을 필자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사전 기획서가 있더라도 첫 미팅에서는 꺼내지 않는다. 그들은 관련 문서를 일이 진행된 후에 업무 정리 형식으로 신속하게 작성했다. 

물론 사전 기획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처리하다 보면 돌발변수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의 분장술을 배우러 왔던 중국 방송사는 뜻하지 않은 경비가 발생해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선지후행’적으로 따지자면 경비 문제까지 모두 파악하고 왔으면 이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선행후지’적인 업무추진은 다소 허술해 보여도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하면 일 추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사전 기획서를 중시하는 방법이 ‘안정적’이라면, 먼저 행동하는 중국적 전략은 좀 더 빠르게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기준 14조7000억 달러로 미국(약 20조900억 달러)에 이어 제2위 경제대국으로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중국을 ‘짝퉁의 나라’로 보면서 그 발전의 저력을 믿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선 이미 ‘선행후지’란 새로운 사상이 시작되고 있다. 이는 중국이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룬 밑거름이 됐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선행후지’, 우리도 과감하게 도입해 볼 만한 사상이다. 

임형택 타오싱즈교육기금회 한중우호대사
taoxingz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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