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탈석탄 금고 선언 후 1년
탈석탄 금고 선언만 하고 실행엔 뒷짐
금고 배점 기준 마련한 곳 거의 없어

60조원. 국내 금융회사들이 2009년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석탄발전에 투자한 돈이다. 세계적인 친환경 기조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자 지자체들이 석탄발전에 투자하는 금융회사엔 돈을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탈석탄 금고 선언’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어찌 된 영문인지 ‘탈석탄 금고’를 위한 배점 반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석탄발전에 투자하는 금융회사들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사진=뉴시스]
석탄발전에 투자하는 금융회사들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사진=뉴시스]

“석탄발전은 대량의 온실가스를 유발한다. 석탄발전에 투자하는 금융기관(회사)엔 더 이상 금고 운영을 맡기지 않겠다.” 지난해 9월 8일 전국 지자체 45곳(광역자치단체 7곳·기초자치단체 38곳), 교육청(11곳) 등 56곳이 ‘2020 탈석탄 기후위기 대응 국제 콘퍼런스’에서 결의한 ‘탈석탄 금고 선언’이다. 

이 선언의 의미를 쉽게 설명하면 대략 이렇다. 지자체와 교육청 등은 각자 보유한 돈(예산)을 금융회사에 맡겨놓는다. 나름의 평가를 통해 금융회사를 선정하는데, 이때 석탄발전 사업에 돈을 대준 금융회사에는 감점을 주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곳에는 가점을 주겠다는 거다. 그러면 금융회사들이 석탄발전 투자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세계적인 추세다. 이미 수년 전부터 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1개국이 해외 석탄발전에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세계은행과 유럽투자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들도 석탄발전 투자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4월 기후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전면 중단하기로 한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의사결정이었다. 

이런 ‘탈석탄 금고 선언’이 말의 성찬盛饌에 그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이 선언에 동참한 지자체와 교육청이 56곳에 이르고, 교육청의 연간 예산 규모는 148조8000억원(2020년 기준)이나 된다. 금융회사가 석탄화력발전에 제공하는 자금도 적지 않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서울사무소)가 지난해 펴낸 ‘2020 한국석탄금융 백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국내 금융회사가 석탄발전에 제공한 전체 금융 규모는 60조여원이다. 이 가운데 민간 금융회사가 37조4000억원(전체의 62.3%)을, 공적 금융회사가 22조2000억원(37.0%)을 지원했다.[※참고: 60조원 가운데 금융제공 시기가 확인된 금액은 37조원이었는데, 그중 34.6%에 해당하는 12조8000억원이 2018년과 2019년에 집중됐다.]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웠는지 2020년 9월, 11월, 12월에 각각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이 ‘탈석탄 금융’을 선언했다. 올해 2월과 3월엔 농협은행과 하나은행도 동참했다. 이런 맥락에서 ‘탈석탄 금고 선언’은 금융회사의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문제는 지자체와 교육청이 ‘탈석탄 금고 선언’을 내놓은 지 1년이 다 돼가는 상황이지만, ‘탈석탄’을 골자로 하는 금고 배점 기준을 마련한 곳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상당수 지자체와 일부 교육청이 탈석탄을 꾀한 금융회사에 어떻게 가점을 주고, 반대로 어떻게 감점을 줄지 기준조차 만들지 않았다는 거다. 다소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보자. ‘탈석탄 금고’를 선언대로 실천하려면 각 지자체가 조례나 규칙에 따른 금고 선정 배점 기준을 손봐야 한다. 


탈석탄 외쳤지만 현실엔 반영 안 해

그런데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7월말 기준)에 따르면, 금고 배점 기준에 탈석탄 내용을 반영한 곳은 56곳 중 15곳(26.8%)에 불과했다.[※참고: 선언에 동참하지 않고 탈석탄 금고를 위한 배점을 변경한 곳은 제외했다.] 교육청 11곳 중 8곳이 배점 기준을 손봤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자체의 움직임이 유독 더뎠다. 지자체 45곳 중 배점 기준을 바꾼 곳은 7곳(15.2%)에 머물렀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배점 기준을 손봤다고 ‘탈석탄 금고 선언’을 유효하게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탈석탄’을 꾀한 금융사를 위한 배점이 고작해야 1~3점(100점 만점 기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가장 높은 3점을 배점한 곳은 경기 고양시 단 1곳뿐이었다. 1점을 배점한 곳이 1곳(충남 논산시), 나머지 13곳은 2점을 배점했다.[※참고: ‘탈석탄 금고 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경남도는 올해 5월에 조례 개정을 통해 금고 배점 기준에 탈석탄 관련 항목을 넣어 총 7점(친환경 투자와 친환경 정책 추진 실적 점수 각 1점씩 포함)을 배점했다.]

지자체들의 탈석탄 금고 의지가 선언만큼 강하지는 않았다는 건데, 그들은 이렇게 항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거다. 

행안부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르면 금고지정 배점 기준은 ▲금융회사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의 안정성(25점) ▲자치단체에 대한 대출 및 예금금리(17점) ▲지역주민이용 편의성(18점) ▲금고업무 관리능력(22점) ▲지역사회 기여 및 자치단체와 협력사업(7점) ▲기타사항(11점)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이런 행안부의 배점 기준은 손볼 필요가 있다. 배점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다. 예컨대 25점이 배점되는 ‘금융회사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의 안정성’의 경우,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시중은행의 신용도나 재무구조가 ‘좋음’으로 평가받고 있어 변별력이 없다. ‘관내 지점수’ 등이 요건으로 포함된 ‘지역주민 이용 편의성(18점)’ 항목도 마찬가지다. 최근 은행들이 지점이 온라인 영업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기 힘들다. 

그렇다고 지자체가 ‘행안부 기준’만을 탓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자체 중에서 행안부가 정한 배점 기준대로 배점을 하는 곳은 거의 없어서다. 지자체들에 충분한 자율성이 주어져 있다는 얘기다. 결국 지자체와 교육청의 ‘탈석탄 금고’ 선언이 신통찮은 결과를 내고 있는 배경엔 행안부와 지자체의 소극적인 행정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행안부 금고 산정 기준 바꿔야

정부는 2020년 1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공공부문의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재정운용 기준에 ‘지자체, 교육청 금고은행 지정 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도록 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회적 가치는 바로 탈석탄 금융이다.

국회에서도 2020년 7월 지자체의 금고 선정 시 ▲녹색산업 지원 ▲탈석탄 선언과 석탄 금융 투자 여부 ▲지속가능한 경영 추진 등을 배점 기준에 포함하도록 하는 지방회계법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참고: 이 개정안은 같은해 9월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논의된 이후로 더 이상의 진척은 없다.]

행안부든 각 지자체든 탈석탄 금고 배점 기준의 변경을 뒷전으로 미뤄놓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탈금고 선언’을 한 지 1년이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미 늦었다. 

김민수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metiszero@naver.com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