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성장 이끌 구심점 없는 LX
구본준 회장의 오랜 숙원 반도체
LX세미콘 육성하면 시너지 날까
75% 육박하는 내부거래 낮춰야

‘구본준호號’ LX그룹이 출범한 지 5개월여가 지났다. LX인터내셔널, LX세미콘, LX하우시스 등 탄탄한 기업들을 계열사로 두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다. LX그룹의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그룹의 성장을 이끌어갈 만한 주력 계열사도 불분명해서다. 최근 구본준 회장이 LX세미콘을 구심점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문제는 LX세미콘이 LX의 구심점 역할을 해낼 수 있느냐다. 

반도체는 구본준 회장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구 회장이 LX세미콘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도체는 구본준 회장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구 회장이 LX세미콘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LG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지 5개월여, LX그룹을 둘러싼 평가다. 시장이 LX그룹의 미래를 아직은 불투명하게 보고 있다는 거다. LX홀딩스의 주가가 상장 첫날(5월 27일) 1만2000원으로 출발해 지난 6일 8770원까지 떨어진 건 이런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구광모 LG 회장과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상대 지주사의 지분 정리가 끝나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LX그룹의 확실한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지적이 나오는 걸까. 현재 LX그룹은 지주사 LX홀딩스를 필두로 LX인터내셔널(상사), LX판토스(물류), LX하우시스(인테리어), LX세미콘(반도체), LX MMA(화학소재) 등 5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각 산업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하지만 계열사 간 시너지는 둘째 치고, 구심점 역할을 맡아 큰 그림을 그려나갈 주력 계열사가 분명치 않다. 

당초 그룹 내 ‘맏형’으로 꼽히는 LX인터내셔널이 중심축이 될 거란 기대가 많았다. LX인터내셔널은 계열사 중 자산 규모가 가장 크고 연간 매출액도 10조원이 넘는다. 문제는 부족한 수익 창출 능력이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해 159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는데, 공교롭게도 자회사 LX판토스의 영업이익 1603억원을 빼면 되레 적자다. 저물어가는 트레이딩 사업을 대체할 신사업을 발굴하고 있지만 성장성이 어떨지는 의문이다. 

LX하우시스도 상황이 썩 좋지 않다. 무엇보다 영업이익이 지난 2018년 반토막 난 뒤 3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최근 계열분리 후 처음 발행한 회사채가 흥행하는 덴 성공했지만 외연을 넓히기 위해 뛰어든 한샘(국내 1위 가구업체) 인수전에선 고배를 마셨다. 그룹 내에서 몸집이 가장 작은 LX MMA는 2018년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 

그나마 LX판토스는 2년 연속 1000억원 이상의 연간 영업이익을 창출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 때문에 업계에선 “LX판토스가 그룹의 신사업 투자를 위한 캐시카우(수익 창출원ㆍCash Cow) 역할을 도맡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관건은 기업공개(IPO) 시점이다. “LX판토스의 상장 시점은 적어도 구광모 회장과 구본준 회장의 지분정리가 끝나고 난 뒤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럼 LX의 구심 역할을 맡을 계열사는 없을까. 현재로선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업체ㆍFabless) LX세미콘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성장률이 가파르다. 지난해 94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전년 대비 무려 2배가량 증가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해는 1분기에만 95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을 1분기 만에 넘어선 셈이다.

LX세미콘의 주력 제품인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시장이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최근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을 잡고 신성장동력 확보에 나섰다. 양사는 3D ToF(비행시간 거리측정ㆍtime-of-flight) 센싱 기술을 활용한 솔루션을 개발 중인데, 이 기술은 모바일ㆍ자동차ㆍ물류 등 여러 산업에서 활용될 만큼 전망이 밝다. 

이 때문인지 업계에선 “구본준 회장이 LX세미콘의 성장에만 유독 힘을 싣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그룹 지주사인 LX홀딩스를 제외한 계열사 중 유일하게 LX세미콘에만 구 회장의 이름이 미등기임원으로 올라가 있다. 양재동에 있는 LX세미콘 사옥에 구 회장 개인 집무실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나머지 계열사는 광화문 본사와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양재동에 있는) LX세미콘에만 별도의 집무실을 마련한 것”이라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구 회장이 LX세미콘에 신경을 쓰는 덴 나름의 이유도 있다. 

사실 반도체는 구본준 회장의 ‘못다 이룬 꿈’으로 통한다. 1997~1999년 LG반도체(현 SK하이닉스) 대표를 맡았던 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꿈을 꿨지만 1999년 회사가 매각되면서 물거품이 된 전례가 있어서다. 

 

문제는 LX세미콘이 진짜 구심 역할을 할 수 있느냐다. 업계 한 관계자는 “LX그룹은 계열사 간 연결성이 낮아 시너지를 내긴 어렵다”면서 “그나마 LX인터내셔널이 다른 계열사를 아우를 수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효과가 크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X세미콘이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75%에 달하는 내부거래 비중을 낮춰야 한다. 지난해 LX세미콘이 기록한 1조1619억원의 매출 중 8759억원은 LG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올린 실적이다. 혹여 LX그룹의 독립이 LG 계열사와의 거래에 영향을 미친다면 LX세미콘의 실적도 널을 뛸 공산이 크다는 거다. 

그룹이 성장할 땐 구심점이 필요하다. 삼성은 전자, 현대는 건설, LG는 가전이 그 역할을 했다. LX그룹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주력 계열사 육성, 신사업 발굴, LG로부터의 독립 등 숱한 과제를 풀어야 하는데, 아직 구심점이 없다. LX세미콘은 과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아직 반반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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