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미샤의 현주소
할리스 매각의 주역 ‘유 콤비’
미샤도 성공적 엑시트 가능할까

국내 1세대 로드숍 브랜드 ‘미샤(에이블씨엔씨)’가 창업주의 품을 떠난 건 2017년의 일이다. ‘샐러리맨 신화’로 일컬어지던 서영필 전 에이블씨엔씨 회장은 자신의 지분을 사모펀드 IMM PE에 매각했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지금 IMM PE는 에이블씨엔씨에서 엑시트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커피전문점 할리스를 매각했던 주역 김유진 대표, 신유정 상무가 에이블씨엔씨에서 다시 뭉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하지만 엑시트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 에이블씨엔씨가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전략실패, 유통채널 다변화 실패, 단기실적만 탐하는 사모펀드 특유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김유진ㆍ신유정 이른바 ‘유 콤비’는 에이블씨엔씨의 숱한 과제를 풀고 원하는 엑시트를 해낼 수 있을까.

국내 사모펀드계 ‘큰손’ IMM PE는 지난 2017년 에이블씨엔씨를 인수했다.[사진=뉴시스]
국내 사모펀드계 ‘큰손’ IMM PE는 지난 2017년 에이블씨엔씨를 인수했다.[사진=뉴시스]

‘3300원 화장품’ ‘착한 화장품’이란 별칭과 함께 2000년대 로드숍 열풍을 일으킨 ‘미샤’. 최근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에 시장의 눈이 쏠리고 있다. 에이블씨엔씨의 최대주주(지분율 59.2%)인 사모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이하 IMM PE)가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본격화할 거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그 배경엔 지난 6월과 10월 에이블씨엔씨에 합류한 김유진 대표와 신유정 상무(브랜드전략부문장)가 있다. 두 사람은 앞서 IMM PE가 보유하고 있던 커피전문점 할리스(현 KG할리스에프앤비)를 KG그룹에 매각한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김유진 대표는 IMM PE 출신으로 2017년 할리스 대표로 부임했다.

이후 3년 만에 매출액을 3배로 끌어올리며 할리스 매각을 이끌어냈다. 신유정 상무는 2018년 할리스 브랜드전략본부장으로 입사해 김 대표를 도왔다. 매각작업 완료 후에도 할리스에 남아 10개월여간 대표직을 맡았다. 

이들의 활약으로 IMM PE는 할리스 매각을 통해 투자금 대비 100%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참고: IMM PE는 2013년 할리스를 인수해 지난해 9월 KG그룹에 매각(지분 93.8%·매각가 1450억원)했다. IMM PE가 할리스 인수와 유상증자 등에 820억원가량을 투자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0% 가까운 차익을 실현한 셈이다.] 

이후 김 대표는 IMM PE로 복귀해 IMM오퍼레이션즈그룹과 에이블씨엔씨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IMM오퍼레이션즈그룹은 IMM PE 투자회사의 조직ㆍ전략 등을 관리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법인이다. 김 대표가 두 회사의 대표직을 모두 맡으면서 향후 에이블씨엔씨의 몸값을 올리는 매각 사전작업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신 상무가 맡은 역할도 적지 않다. 에이블씨엔씨는 신 상무 영입과 함께 조직개편을 단행했는데, 9개 사업본부 중 4개 주요 사업본부(상품ㆍ플랫폼ㆍ마케팅ㆍD2C본부)를 신 상무가 총괄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에이블씨엔씨를 또 하나의 ‘매각 성공 사례’로 남길 수 있을까.

[※참고: 할리스의 경우 IMM PE의 손을 떠난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4.7%(1649억원→1405억원), 76.6%(154억원→36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이디야와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매출액은 1.4%, 3.1%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각각 27.8%, 6.1% 감소하는 데 그쳤다. 사모펀드가 추구하는 단기적 실적 개선이 본질적 경쟁력 제고와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방증이다.]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에이블씨엔씨의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012년 고점(매출액 4552억원ㆍ영업이익 536억원)을 찍은 이 회사의 실적은 감소세를 거듭했다.

IMM PE가 인수한 2017년 이후엔 상황이 더 악화했다.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3075억원, -680억원으로 2017년 대비 17.6%, 507.1%나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영업적자 120억원을 기록했다. 실적을 반영하듯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2017년 7월 21일 2만3500원이던 주가는 현재 7800원(11월 3일)으로 66.8%나 하락했다. 

IMM PE는 인수 7년 만인 지난해 할리스를 KG그룹에 매각했다.[사진=뉴시스]
IMM PE는 인수 7년 만인 지난해 할리스를 KG그룹에 매각했다.[사진=뉴시스]

물론 실적이 악화한 덴 중국의 사드(THA AD) 보복조치, 코로나19 사태 등 외부 변수가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외부 변수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IMM PE 인수 이후 4년간 대표가 8번이나 교체될 만큼 ‘전략 실패’가 반복됐던 게 치명타였다.

대표적인 게 ‘볼트온(bolt-on)’ 전략이다. 볼트온 전략이란 유사한 업종의 기업을 인수해 외형을 키우는 방식으로, 사모펀드가 인수기업의 기업가치를 키우는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다. 에이블씨엔씨는 2018~2019년 중소규모 화장품 업체 3곳을 잇따라 인수했다. ‘돼지코팩’으로 알려진 ‘미팩토리’, 수입화장품 유통업체 ‘제아H&B’, 더마화장품 업체 ‘지엠홀딩스’ 등이다.

기존 미샤ㆍ어퓨 등 단일 브랜드숍의 한계를 벗어나겠다는 목표에서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제아H&Bㆍ지엠홀딩스는 자본잠식에 빠질 만큼 경영상황이 악화했다. 결국 에이블씨엔씨는 관리비용 절감 등을 목적으로 지난 10월 제아H&B를 흡수합병했다. 

‘유통채널 다변화’를 통해 매출을 늘리려는 전략도 쓴맛만 남겼다. 에이블씨엔씨는 2019년 6월 서울 이화여대 앞에 멀티숍 ‘눙크(NUNC)’ 1호점을 열었다. 미샤ㆍ어퓨 등 자사 브랜드뿐만 아니라 국내외 200여개 브랜드 8000여개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다. CJ올리브영과 같은 H&B스토어를 표방한 셈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비슷한 콘셉트를 기존 미샤 매장에도 적용했다. 미샤 매장을 ‘미샤플러스’로 교체하고 계열사 제품뿐만 아니라 23개 타사 브랜드, 1200여개의 제품을 함께 판매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미샤 가맹점의 반발을 무릅쓰고 미샤 주요 제품을 CJ올리브영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눙크는 사실상 매장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해 40여개였던 눙크 점포 수는 현재 15개로 줄었다. 미샤 점포 수 역시 2018년 698개에서 지난해 407개로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화장품 시장이 이미 어려워진 상황에서 뒤늦게 ‘멀티숍’에 뛰어들었다”면서 “더욱이 눙크나 미샤플러스는 ‘자사 브랜드숍’이나 ‘H&B스토어’로 보기엔 포지셔닝이 애매한 데다 소비자와 접점도 많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샤의 이런 부진을 사모펀드의 한계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화장품 산업에 정통한 전문가가 부족한 데다 빠른 의사결정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는 “화장품 시장은 트렌드가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중 하나”라면서 “그만큼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데 사모펀드가 운영하는 기업은 오너경영 기업과 달리 중요한 의사결정 등이 지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이블씨엔씨는 뒤늦은 2019년 화장품 편집숍 ‘눙크’를 론칭했다.[사진=뉴시스]
에이블씨엔씨는 뒤늦은 2019년 화장품 편집숍 ‘눙크’를 론칭했다.[사진=뉴시스]

사모펀드의 특성상 ‘수익성 개선’에 초점을 맞추면서 ‘히트 상품 부재→실적 악화’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의 지적이다. 일례로 에이블씨엔씨는 판관비(판매비·관리비)를 대폭 삭감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1121억원이던 판관비는 올해 상반기 839억원으로 25.1% 줄었다.

특히 급여 인건비(급여ㆍ복리후생비)가 17.5%(199억원→164억원) 감소했다. 조직개편 등을 거치면서 직원 수가 같은 기간 22.1%(397명→309명) 줄어든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광고비, 연구개발비도 각각 37.4%(163억원→102억원), 47.3%(19억원→10억원)씩 줄었다.

실제로 에이블씨엔씨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0.9%로 업계 최저 수준이다. 비슷한 규모의 화장품 업체 잇츠스킨(4.5%), 토니모리(2.2%), 클리오(1.9%) 등과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컨설팅그룹 리이치24시코리아 손성민 지사장은 “에이블씨엔씨의 경우 오랜 시간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온 만큼 마케팅 비용 등을 줄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과거 미샤의 보라색병 등처럼 혁신적인 제품이 부재한 건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에이블씨엔씨에 낙관적 전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일본 시장에서 10대를 중심으로 미샤 ‘쿠션 파운데이션’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건 긍정적 시그널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본법인은 지난해 코로나19 악재에도 386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면서 “향후 해외사업 저변 확대, 온라인 강화, 경영 효율화를 꾸준히 추구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이블씨엔씨가 IMM PE의 아픈 손가락인 것만은 분명하다. IMM PE는 숱한 과제를 풀고 에이블씨엔씨를 성공적으로 매각할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에이블씨엔씨는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할 수 있을까. 결과를 확인하는 덴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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