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표 vs 국민 지표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가장 바람직한 방향.” 이번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본 대통령의 평이다. 소득과 소비가 늘어난 데다 분배의 불평등은 줄어들었다는 게 자찬의 근거다. 정말 그럴까. 한국 경제는 정말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보기 좋은 지표 뒤 그림자를 분석했다.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소득과 소비지출이 모두 큰 폭으로 늘었지만, 미래를 향한 불안감에 평균소비성향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소득과 소비지출이 모두 큰 폭으로 늘었지만, 미래를 향한 불안감에 평균소비성향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매우 기쁜 소식이다.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살아나는 경기에 여러 가지 정책 효과가 이상적으로 결합된 성과다.” 지난 11월 18일 통계청의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관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페이스북에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정리한 글을 올리자, 문 대통령은 이를 공유하고 ‘정책 효과의 이상적인 성과’라고 감탄했다. 지표가 어떻게 나왔기에 이렇게 극찬했을까.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지표는 크게 세 가지다. ▲소득증가율 ▲5분위 간 소득격차(5분위 배율) ▲월평균 소비지출이다. 먼저 소득증가율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8.0% 늘어난 472만9000원을 기록했다. 증가율만 떼놓고 보면 2006년 이후 역대 최대폭이다. 

정부가 특히 강조한 부분은 소득 5분위 중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총소득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1분위 가구의 총소득은 114만2000원으로, 2020년 3분기 대비 21.5% 늘었다. 전체 5분위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1분위 가구 소득은 근로소득(22.6%)과 이전소득(22.2%) 모두 늘어났다. 소득에서 세금·이자·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월평균 가처분소득(377만3000원)도 전년 동기 대비 7.2% 늘었다. 특히 소득 1분위 계층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91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7%나 증가했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줄었다”며 자찬自讚한 이유는 또 있다. 소득의 분배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이 5.34배로, 전년 동기(5.92배) 대비 하락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발생 이전(2019년)과 비교했을 때 4분기 연속(2020년 4분기~2021년 3분기) 떨어졌다는 것도 의미 있는 통계다.

[※참고: 소득 5분위 배율은 소득 최상위 20%의 평균소득을 최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값이 클수록 소득이 불균등하게 분배된다는 의미다.] 

 

소득이 늘어난 만큼 소비도 활발해졌다. 가구당 월평균 지출은 350만원(증가율 6.6%)이었는데, 이중 가계운영을 위한 상품·서비스 구입의 대가로 지출하는 금액인 ‘소비지출(254만4000원)’의 증가율도 4.9%를 기록했다. 2011년 3분기(5.8%) 이후 최대 수치다. 소비지출 금액은 2020년 3분기보다 의류·신발(10.0%), 가정용품·가사서비스(7.2%), 식품·음료(5.7%) 등 모든 품목에서 늘었다. 

그렇다면 소득과 소비가 증가했으니 정부의 말처럼 ‘민생이 개선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늘어난 소득을 항목별로 들여다보면 불안정하다. 무엇보다 증가율이 가장 높은 항목이 이전소득(25.3%)이다. 이전소득은 생산활동으로 얻은 게 아닌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무상으로 지급받은 소득을 뜻한다.

정부의 재난지원금과 소비플러스(저소득층에 1인당 10만원씩 추가 지급) 등이 더해진 게 1분위 소득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 3분기 공적이전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30.4%나 뛰어올랐다. 

소득·소비 늘긴 했지만…

지원금 효과는 근로소득을 들여다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3분기 근로소득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6.2%로, 2분기 증가율(6.5%)보다 낮다. 2020년 3분기 소득 구성비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올 3분기 전체 소득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62.5%로 2020년 3분기(63.5%)보다 1%포인트 줄었다. 반대로 이전소득의 비중은 17.0%로, 전년 동기(14.7%) 대비 2.3%포인트나 커졌다. 

부정적인 지표는 또 있다. 3분기 평균소비성향은 67.4%로 2006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균소비성향은 소득에서 얼마만큼을 소비에 쓰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가처분소득 중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이를 뺀 나머지는 저축으로 분류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2019년) 70%대였던 평균소비성향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 20년 1분기 이래 지난 2분기(71.7%)를 제외하고 6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계층의 3분기 평균소비성향은 전년 동기 대비 13.4%포인트 떨어졌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소비성향 하락에 대한 논의」 보고서에서 “평균소비성향은 일시적인 소득 여건보다 장기적인 여건을 향한 판단에 기초해서 결정한다”며 “전반적인 소비 회복세에도 평균소비성향은 코로나19와 함께 급락한 이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아 향후 내수 회복세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원금 덕에 월평균 소득과 소비지출이 늘었다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미래를 향한 불안감에 지갑을 선뜻 열지 못한다는 거다.[※참고: 가처분소득이 소비지출보다 더 크게 늘어나도 평균소비성향은 하락할 수 있다. 3분기 가처분소득이 7.9% 증가하는 동안 소비지출은 4.9% 느는 데 그쳤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가처분소득은 나쁘지 않은데 늘어난 만큼 소비를 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저축을 늘리거나 지출을 자제하는 건데, 가계 소비심리가 움츠러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외식·생필품 물가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9.41(2015=100)로,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10여년 만의 최고치다. 무엇보다 구매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큰 141개 품목의 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가 5.2%나 올랐다.

 

물가상승률은 저소득층에게 더욱 빠르게 오른다. [사진=연합뉴스]
물가상승률은 저소득층에게 더욱 빠르게 오른다. [사진=연합뉴스]

달걀(32.7%)·돼지고기(14.0%)·휘발유(33.4%)·오이(99.0%)·상추(72.0%) 등 자주 소비하는 품목의 가격이 훌쩍 오른 게 영향을 미쳤다. 필수품 가격이 치솟으니 서민의 피부에 와 닿는 물가상승세는 더욱 거셀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물가는 저소득층에게 더욱 가혹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소득 하위 10%의 물가상승률은 상위 10% 가구에 비해 연평균 0.2%포인트 더 높았다. 이태열 선임연구위원도 “저소득층일수록 전체 지출에서 식품·연료 등 반드시 사야 하는 제품의 비중이 커 물가상승의 충격이 크다”며 “반면 고소득층은 문화생활·여가 등 선택적인 소비가 가능해 물가상승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파르게 오르는 살림살이 물가

그럼에도 물가는 오를 일만 남은 듯하다. 외식 부문에선 교촌치킨이 지난 11월 22일자로 권장 가격을 품목당 500원에서 2000원까지 올리며 가격 상승의 신호탄을 쐈고, 식료품 중에선 동원F&B가 지난 1일부터 참치캔 22종의 가격을 평균 6.4% 인상했다.

업계를 이끌고 있는 기업들이 인상에 나선 만큼 다른 곳도 줄줄이 가격을 올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래도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란 분석이 나올까. 높으신 나리들의 귀엔 보기 좋은 지표 뒤 가려진 한숨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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