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인류」
인류학 연구자의 냉장고 문명 추적기

냉장고 의존은 식재료를 계획 없이 구매해 쓰레기를 양산하는 과소비를 낳기도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냉장고 의존은 식재료를 계획 없이 구매해 쓰레기를 양산하는 과소비를 낳기도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TV,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전자레인지…. 우린 많은 가전제품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중 냉장고의 혜택은 좀 더 특별하다. 필요시마다 사용하는 다른 가전에 비해 냉장고는 쉬지 않고 24시간 열일한다. 정전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냉장고 속 음식들은 어찌 될까. 냉장고가 멈추면 이래저래 보통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서 음식 만드는 일이 많아진 만큼 냉장고의 역할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각종 식재료와 밀키트를 구입하고 보관법을 검색한다. 어떻게 얼마나 냉장고에 둬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향한 믿음과 의존은 시대가 흐를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냉장고의 세계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신간 「냉장고 인류」는 인간의 역사와 냉장고의 관계를 고찰한다. 냉장고가 발명되기까지 부분적인 역사를 살펴보고 냉장고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도 알아본다. 아울러 냉장고에 의존할수록 낭비가 심해지는 현대의 소비사회도 비판한다. 저온유통 체계가 독점해버린 식품유통 체계의 구조,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한계 등 사회문제와 더불어 음식문화의 미래상도 그려본다.
 
저자는 “냉장고는 시대와 세대, 나아가 국경을 넘어서까지 인간의 생활 양식을 보여주는 창구가 된다”며 이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미국의 철도 산업으로 인해 시카고에서 냉장 기술이 발전한 것, 국내 최초 출시 냉장고, 계급별·지역별 냉장고의 현황, 베트남인과 고려인 등 각국의 냉장고 풍경을 차례로 소개한다.

“인간이 불을 다뤄 익힌 음식을 먹은 건 20만년이란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냉장고로 음식을 차게 보관한 역사는 불과 100년이다. 이 100년간 인류의 삶은 냉장고 중심으로 재편됐다. 120L로 출발한 냉장고는 이제 900L의 공룡으로 변신했다.” 저자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크기와 부피가 줄어드는 가전들과 반대로 냉장고는 용량이 점점 커져 왔다고 설명한다. 이는 사람들이 대용량 냉장고를 선호하며 더 나은 신선 기능을 요구해서다.

 
하지만 냉장고에 의존하는 경향은 식재료를 계획 없이 구매해 쓰레기를 양산하는 과소비를 낳기도 한다. 이는 에너지 낭비와 환경오염이라는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저자는 “냉장고의 역사가 중요한 건 시대마다 인간의 욕망이 투영돼 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사람들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 고스란히 담긴 냉장고를 들여다본다. 저자 집의 냉장고부터 시작해 전남 나주 종갓집의 냉장고, 광주 이주노동자들의 냉장고, 지하철 택배노동자의 냉장고, 요양원으로 실려간 할머니의 냉장고, 전기를 아끼기 위해 제작한 불광동 한 카페의 아이스박스까지 냉장고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에는 그 사람의 삶의 향기와 음식 냄새가 있는가 하면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과 햇반, 라면 봉지가 뒹구는 짠한 현실도 존재한다. “우리 시대의 냉장고는 그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처지, 경제적 신분, 나아가 사회계급까지 비추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는 대목이다.

세 가지 스토리

 
「말을 거는 영화들」
라제기 지음|북트리거 펴냄
 
영화는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단면을 파고들어 예리하게 읽어낸다. 적극적인 영화 해석을 통해 ‘영화 읽기’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영화 속에 담긴 메시지를 다각도로 생각하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고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황인환 지음|웨일북 펴냄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나의 마음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십상이다. 무심하게 살아가다 문득 치밀어오르는 감정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마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시’를 권한다. 때로는 시 한편이 복잡하게 얽힌 내면의 혼란에 ‘정답’이 돼 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게 느껴지는 날엔 스스로 ‘오늘 마음이 어때?’라고 물을 것을 조언한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전혜원 지음|서해문집 펴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는 그의 노동 가치와 연결된다.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좌우하는 건 개인의 노동에 매겨지는 가치나 다름없다. 이 책은 노동의 가치를 사람의 가치로 환산하는 오래된 현실이 합당한지 판단하는 데 골몰하지 않는다. 그보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 일터에서 생겨나는 문제에 주목한다. 시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9가지 질문으로 엮어낸 ‘한국 노동여지도’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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