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수급난 당분간 지속
원두값 폭등 속 자영업자
100원 인상도 전전긍긍

“커피 빼고 다 올랐다.” 통계청이 발표한 식품물가 통계의 골자다. 실제로 지난해 식품물가는 4.7% 올랐는데, 커피값 만은 0.2% 떨어졌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소비자로선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요즘 같은 때 맘껏 마실 수 있는 커피는 효자나 다름없어서다. 하지만 “커피 빼고 다 올랐다”는 통계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 

원두 가격이 폭등하면서 커피 가격이 인상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원두 가격이 폭등하면서 커피 가격이 인상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연초부터 ‘커피시장’이 심상찮다. 지난해 시작된 원두 가격 폭등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커피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세계 커피 생산량의 30~40%를 차지하는 브라질의 이상기후로 작황이 부진한 데다,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여기서 기인한 ‘커피대란’은 전세계 커피시장을 흔들고 있다. 

글로벌 커피 체인 스타벅스가 커피 가격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건 단적인 예다. 케빈 존슨 스타벅스 CEO는 2021년 10월 열린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수개월을 버틸 만한 커피 재고를 비축하고 있어 14개월간 가격을 동결했지만 가격상승 압박은 계속 커지고 있다”면서 “우리에겐 가격 결정권이 있고 그런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지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형 커피전문점들은 가격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관계자는 “원두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상승 요인을 내부적으로 흡수해 왔다”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1월 13일부터 음료 가격을 100~400원 인상한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1월 13일부터 음료 가격을 100~400원 인상한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투썸플레이스 측은 “가격을 인상할지 말지 결정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원가 상승으로 인한 압박이 상당한 상황인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참고: 이디야·할리스 측은 현재로선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나마 대형 커피전문점들은 다행이다. 케빈 존슨 스타벅스 CEO의 말처럼 그들에겐 ‘가격 결정권’이 있다. 

문제는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커피전문점들이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대형 커피전문점의 경우 원두를 대량 선구매하는 데다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면서 “원두 가격 상승으로 인한 타격은 독립형(개인) 커피전문점에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참고: 독립형 창업은 프랜차이즈 간판을 달지 않고 개인이 점포를 여는 방식을 말한다. 프랜차이즈의 보호를 받는 가맹점주보다 원료비, 거리두기 등 외부 변수에 훨씬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독립형 커피전문점들은 지난해 말 시작된 원두 가격 상승세의 부담을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오은영(가명)씨는 “11월부터 원두 가격이 1㎏당 3000원씩 인상됐다”면서 “매달 사용하는 원두가 50㎏가량이다 보니 가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동작구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은숙(가명)씨 역시 이렇게 말했다. “9년간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이렇게 원두 가격이 오른 적은 처음이다. 원두 납품업체도 생두 가격이 오르면서 어려움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지난해 말부터 30% 오른 가격에 원두를 받고 있다. 커피뿐만 아니라 우유부터 디저트류를 만들 때 필요한 버터, 밀가루, 달걀까지 모두 올라 운영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코로나19 이후 영업시간 제한, 유동인구 감소 등으로 매출이 급감한 이들로선 이중고를 넘어 삼중고를 견디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원두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제 원두 가격 기준인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의 커피 C 선물가격은 2020년 1월 5일 1.25달러(이하 1파운드ㆍ약 0.4㎏ 당)에서 지난 12월 6일 2.50달러까지 치솟았다. 현재(1월 5일)도 2.31달러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원두 전문업체 502커피로스터스 김삼중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생두 수확량 감소, 해상 운임 상승, 환율 상승 등 생두 가격이 오를 만한 요인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브라질을 비롯한 커피 산지에선 냉해가뭄 등 이상기후로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커피 농가가 작물 재배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해상 운송 등이 안정화하더라도 커피 생산량 감소세는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독립형 커피전문점은 원재료 가격이 올라도 커피 가격을 인상하기가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개인이 운영하는 독립형 커피전문점은 원재료 가격이 올라도 커피 가격을 인상하기가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상황이 이렇지만 개인 커피전문점으로선 쉽사리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무엇보다 국내 커피 시장에 ‘저가 프랜차이즈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어서다. 특히 최근 수년 새 저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2000~3000원대 커피를 판매하는 개인 커피전문점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개인 커피전문점들은 맛이나 개성, 서비스 등으로 차별화를 꾀해왔지만 ‘가격’ 경쟁에선 버티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 커피전문점 사장 김은숙씨는 “좋은 원두를 써서 맛있는 커피를 팔겠다는 원칙을 지켜와서인지 가게 주변에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서도 밀려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저가커피 브랜드는 정말 당해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인 커피전문점 사장 최경민(가명)씨 역시 이렇게 말했다. “저가 커피전문점이 늘면서 소비자의 가격 저항도 커졌다. 100~200원 가격을 올리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이렇게 업체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커피 가격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커피만 빼고 다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식품물가지수는(2020=100 기준)는 전년 대비 4.7% 올랐다. 김밥(4.8%)부터 햄버거(3.6%), 치킨(3.0%), 삼겹살(2.4%)까지 빠짐없이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커피 가격(외식 기준)은 되레 –0.2% 낮아졌다.

이성훈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커피 시장의 경우 경쟁이 치열해 가격을 올릴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면서 “특히 개인 커피전문점은 가격이나 마케팅 경쟁에선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열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소비자로선 가격이 오르지 않는 커피가 ‘효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커피 시장을 들여다보면 100~ 200원에 한숨 짓는 자영업자가 있다. 원자재 가격이 껑충 뛰어도 가격을 올렸다가 손님이 떠날까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숱하다. ‘다 올랐는데 커피 가격만 오르지 않았네’란 통계에 숨은 그림자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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