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버거 속 한국경제의 민낯
점점 서구화하고 다양해지는 입맛
MZ세대까지 합류하면서 소비층 확대
고물가에 억눌린 사치 욕구 해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연이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왔다. 한곳은 추정 몸값이 1조원에 이른다. 미국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도 하나둘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문을 여는 곳마다 문전성시다. 국내 버거 시장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왜 이토록 버거에 열광인 걸까. 슬프게도 그 안엔 한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연이어 매물로 나왔다.[사진=뉴시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연이어 매물로 나왔다.[사진=뉴시스]

# 시장에 ‘버거 한상’이 차려졌다. 지난해 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과 KFC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데 이어 한국맥도날드와 맘스터치까지 매물로 나왔다. 버거 빅5 중 롯데리아 빼고 다 나온 셈이다.

그들이 바라는 몸값도 비싸다. KFC는 희망 매각가가 100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맥도날드는 5000억원, 버거킹은 7000억원, 맘스터치는 1조원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선 “몸값이 과하다”는 게 중론이지만 코로나19 영향권에서 호실적을 거둔 업체들은 몸값을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의지가 큰 게 사실이다. 과연 그들은 시장에서 원하는 몸값을 받으며 새로운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 미국 버거 브랜드가 국내에 속속 상륙하고 있다. 미국의 3대 버거로 불리는 쉐이크쉑은 2016년 강남에 1호점을 내며 국내에 첫발을 내디뎠다. 쉐이크쉑 국내 사업권을 갖고 있는 SPC그룹은 부산·대구·대전 등에 현재 22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 1월엔 세계적인 셰프인 고든 램지가 론칭한 ‘고든 램지 버거’가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 아시아 첫 매장을 열었다. 고든 램지 버거를 국내에 들여온 진경산업은 외식사업 경험이 전무한 우산·패션전문 유통업체다. 


5월엔 대우산업개발의 식음료 부문 자회사 이안GT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먹어 ‘오바마 버거’란 애칭이 붙은 미국의 세프버거 브랜드 ‘굿 스터프 이터리(GOOD STUFF EATERY)’를 들여와 서울 강남에 1호점을 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bhc그룹은 올해 안에 미국 서부 지역을 대표하는 버거 브랜드 ‘슈퍼두퍼’ 1호점을 서울에 낼 계획이다. 

버거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코로나19로 배달수요가 증가하고 혼밥족이 늘면서 2015년 2조3000억원이었던 버거 시장은 지난해 4조원 규모(유로모니터 추정치)로 성장했다. 눈에 띄는 건 수제버거의 활약이다. 미국의 유명 수제버거 브랜드가 속속 국내에 들어오고, 골목골목마다 개성 있는 수제버거 가게들도 하나둘 생기고 있다.

그렇다면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는 환경에서 비싼 수제버거는 어떻게 소비자들을 사로잡았을까. 

■비결❶ 프리미엄 전략 = 수제버거가 뜨는 첫번째 비결은 ‘프리미엄’ 전략이다. 일단 가격대가 높다. 쉐이크쉑의 시그니처 메뉴인 쉑버거는 단품 가격이 7300원이다. 여기에 감자튀김(4100원)을 추가하면 1만1400원이다. 또 다른 인기메뉴인 스모크쉑은 단품 가격만 9300원이다. 맥도날드의 빅맥이 5400원인 것과 비교하면 꽤 비싸다.


굿 스터프 이터리는 단품 가격만으로도 1만원이 넘는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먹었다는 ‘프레지던트 오바마 버거’가 1만3900원이다. 고든램지 버거는 이보다 훨씬 비싸다. 인기메뉴인 포레스트 버거는 단품 가격이 3만3000원에 이른다. 스위트 포테이토 프라이즈는 1만원이다. 여기에 레몬 에이드 한잔(7000원)을 곁들이면 지갑에서 5만원이 빠져나가는 셈이다. 

물론 가격만 올려 받는 건 아니다. 프리미엄 전략에 맞게 건강한 재료와 색다른 시도도 많이 한다. 굿 스터프 이터리를 보자. 국내 1호점인 강남점은 세계 최초로 매장 내에 스마트팜 ‘GT팜’을 설치했다.

‘NOT FAR FROM THE FARM(농장은 바로 옆이어야 한다)’는 슬로건 아래 갓 재배한 채소를 당일 버거와 샐러드에 사용한다. 과거 ‘패스트푸드’ ‘정크푸드’로 취급받던 버거가 ‘제대로 된 건강한 한끼’로 인식되면서 수제버거 수요가 늘고 있는 거다. 

■비결❷ 다양해진 고객층 = 고객층도 다양해졌다. 이성훈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식습관이 서구화하고 있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라탕이 인기를 끄는 건 소비자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입맛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수제버거도 마찬가지다. 단조로운 저가 메뉴에서 고급 메뉴로 진화하면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가치가 그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패스트푸드로 버거를 소비했던 기존 고객층에 MZ세대까지 합류하면서 고객층이 넓어졌다”면서 “수제버거 시장은 앞으로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결❸ 억눌린 욕구 = 수제버거가 인기를 끄는 배경엔 한국경제의 어두운 민낯도 있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억눌린 사치 욕구를 해소할 데가 없는 서민들이 수제버거를 통해 그걸 해소하고 있다는 거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인플레이션으로 서민들의 실제 생활 수준은 상당히 심각해졌다. 수제버거가 인기를 끄는 건 그 스트레스를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무슨 말일까. 곽 교수가 설명을 이었다. 

“사치를 하고 싶지만, 집값이 많이 올라서 집을 살 수가 없다. 팬데믹 영향으로 여행 경비도 많이 올랐다. 패션 시장은 또 어떤가. 명품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아무리 사치를 하고 싶다 한들 지갑이 가벼워진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수제버거는 어떤가. 개개인의 관점에서 ‘비교적 소비 가능한 고급화’인 셈이다. 한끼 식사로는 비싼 가격이지만 그걸 감당하기 위해서 빚을 져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게 작은 사치를 부리면서 억눌린 욕구를 달래는 거다.”

곽 교수는 수제버거를 통해 사회적으로 도태되고 싶지 않은 심리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맛집 앞에 줄을 서고,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 ‘나도 대열에 합류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거다. 계산기를 두드려가면서 소비를 해야 하는 우울함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나도 돈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심리가 수제버거 하나에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값비싼 수제버거에 숨은 애달픈 자화상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