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정세 불안
이란산 원유 공급 기대, OPEC 증산은 글쎄
친환경 정책에 미 셰일오일 투자도 주춤

“오일쇼크가 올 것인가.” 1980년대를 끝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단어가 다시 세간에 떠돌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가 급격히 올라서다. 2월 22일 두바이유와 서부텍사스원유는 각각 배럴당 91.90달러와 91.91달러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각각 19.3%, 20.8% 올랐다. 곧 배럴당 100달러, 아니 120달러까지 상승할 거라는 전망도 숱하다. 문제는 당분간 상승세가 꺾일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후폭풍을 취재했다. 

최근 국제유가가 상승세다. 오일쇼크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국제유가가 상승세다. 오일쇼크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배럴당 120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 지난 2월 16일 열린 국제에너지포럼에서 나온 전망이다. 국제유가가 펄펄 끓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최근에 터진 가장 큰 이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이다. 일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왜 침공(2월 24일)했는지 그 이유부터 살펴보자. 현 정세가 국제유가 상승세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시계추를 소련 체제가 붕괴했던 1990년대 초반으로 돌려보자. 옛 소련 시절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을 점령했던 러시아의 해상길은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일순간 막혀버렸다. 에스토니아ㆍ리투아니아ㆍ라트비아 등 발트해 연안국들이 독립하면서 러시아엔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는 항구들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부동항不凍港(1년 내내 얼지 않는 항구)을 얻기 위해 동유럽 국가에 친러 정부를 세우고 싶어 했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 자치공화국(크림반도) 내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합병한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는 반러 성향이 짙다. 심지어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대척점에 서 있는 러시아로선 불편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돈바스) 지역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을 지원하며 내분을 부추기는 이유다. 그 반군 세력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이다.

러시아는 그들의 분리독립을 인정해주고, ‘우호 협력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엔 DPR과 LPR이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러시아가 군사적 지원을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안정을 교묘하게 방해하는 구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자국의 군인을 배치하면서 ‘평화유지군’이라고 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이런 러시아의 행태를 ‘평화유지’가 아닌 ‘침공’으로 본다.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서진西進이 달갑지도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대對 러시아 제재를 취할 것”이라면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건 그래서다. 

지난 2월 7일(현지시간)에는 “러시아의 탱크나 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선다면 ‘노드스트림(Nord Stream)2’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참고: 노드스트림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직접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의미한다. 2011년 ‘노드스트림1’을 완료해 운영을 시작했고, 2018년에 착공한 ‘노드스트림2’는 지난해 완공해 승인을 앞둔 상황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대유럽 영향력이 커진다는 이유로 이 프로젝트를 반대했다.]

그럼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월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의 진입을 명령했다. 그러자 독일은 ‘노드스트림2’의 승인 절차를 중단했다. 24일 러시아는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한다고 밝힌 후, 우크라이나 군 시설을 정밀타격하는 등 침공을 시작했다. 

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국제유가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국제유가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서유럽으로 유입되는 천연가스가 감소하면 대체품인 원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러시아는 글로벌 원유생산량의 12.3%(2위ㆍ2020년 기준)를 담당하고 있다.

전쟁을 빌미로 러시아의 원유 공급량이 줄면 그만큼 국제유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들이 반영되면서 최근 국제유가도 올랐다는 얘기다.[※참고: 글로벌 원유생산량 1위는 미국으로 비율은 17.3%다. 사우디는 12.2%로 러시아에 이어 3위다.] 

OPEC도 셰일도, 어려운 증산

물론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다른 산유국들이 증산을 해주면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13개국)의 석유 생산량은 2390만 배럴로, 목표치인 2460만 배럴보다 부족했다.

파티비롤 IAE 사무총장은 지난 2월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최한 국제에너지포럼에서 “현재의 유가 변동성을 줄이려면 시장에 더 많은 물량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증산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다. 산유국들이 투자 부족으로 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최근 OPEC 보고서에 따르면 13개 회원국 중 이라크ㆍ리비아ㆍ베네수엘라 등 7개국의 1월 원유생산량이 투자 부족으로 전월보다 줄었다. 

심지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증산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자신들이 더 많은 원유를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OPEC 회장인 브루노 장 이투아 콩고 에너지장관은 “우리는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즉각적으로 고유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해명했다.

[※참고: 서방국가들과 이란의 핵합의 복원 협상에 진전이 있다는 건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 2월 17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이란 핵합의와 완전한 이행으로의 상호적 복귀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밝혔다. 이란의 원유 생산이 재개되고 이란산 원유가 세계 시장에 공급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약 5% 수준으로 알려져 있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동 산유국이 증산하는 게 어렵다면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유전 서비스 업체인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미국 내에선 2018년 2월 이후 가장 많은 석유 시추 장비(516개ㆍ2월 7~10일 기준)가 가동 중이다. 미국 석유기업인 엑손모빌과 셰브론도 최근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올해 산유량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셰일오일 생산량이 얼마나 증가할 지는 모를 일이다. 늘어난 시추 장비 수와 달리 원유 생산량이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은 낮아서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미 원유 생산량을 일일 1190만 배럴로 전망했다. 이는 2년 전 1297만 배럴보다 적은 수치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무엇보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내건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내 석유 시추를 제한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완전한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완전한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채산성이 떨어져 미국 내 셰일업체가 빚더미에 앉았다. 지난해 7월에만 230여개의 셰일업체들이 파산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셰일업체들에 투자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셰일오일 증산이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리스크가 사라지면 국제유가 상승세가 조금이라도 꺾일까. 우선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러시아는 동유럽 지역을 쉽게 포기할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로선 생존을 위해 계속 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흡수할 생각마저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리스크는 지금 벌어진 전쟁과 무관하게 남아있을 공산이 크다. 


고유가, 물가상승 더 부추길 듯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에 긍정적이지 않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이 5.5% 수준에 불과해 ‘러시아-우크라이나 리스크’에선 한발짝 떨어져 있지만,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란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특히 러시아로부터 원료를 많이 수입하는 석유화학 산업은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의 러시아산 수입 비중은 24% 수준”이라면서 “거래처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석유화학제품은 우리나라의 효자 수출품목 중 하나라는 걸 감안하면 큰 리스크다.

국제유가 상승이 가뜩이나 치솟은 국내물가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6% 올랐고, 석유류 가격의 기여도는 0.66%포인트(전체 3.61%포인트)였다. 최근의 상황을 두고 ‘오일쇼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사회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풀 만한 해법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만큼 고유가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만큼 긴장감을 유지해야 할 듯하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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