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우려되는 러시아발 ‘3차 오일쇼크’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 등 서방과 중국‧러시아 간 갈등이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안보’를 중시하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 등 서방과 중국‧러시아 간 갈등이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안보’를 중시하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커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증폭되는 모습이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에너지ㆍ원자재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혼란 등이 심화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부존자원이 빈약한 한국 경제로선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난제들이다.

발등의 불은 고유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쳐들어간 2월 24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3월 2일에는 110달러 벽도 뚫었다.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이 11년 만에 비상 비축유 6000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합의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한편에선 ‘3차 오일쇼크’를 우려한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이자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러시아와 서방의 충돌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이 러시아의 석유 및 가스 수출에 제재를 가하거나 러시아가 유럽으로 통하는 송유관을 잠그는 등 러시아 생산물량이 시장에서 배제되면 원유시장은 극심한 공급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고유가는 각종 물가를 자극하고 경제성장과 경상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으면 성장률이 0.3%포인트 낮아지고, 소비자물가는 1.1%포인트 오른다. 경상수지는 305억 달러 악화한다.

이미 실물경제가 심상찮다. 1월 산업생산이 전달보다 0.3%, 소매판매는 1.9% 각각 감소했다. 생산은 반년 만에, 소비는 1년 반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향후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지수순환변동치는 7개월째 하락세를 탔다. 2018년 6월~2019년 2월 사이 9개월 연속 하락한 이후 가장 긴 내리막 행진이다.

게다가 물가는 ‘월급만 빼고 죄다 올랐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치솟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다. 물가가 넉달 연속 3% 넘게 오른 것은 10여년 만이다. 2월 물가상승률은 4%대로 올라섰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고물가 속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조짐이다. 

이 와중에 정부는 어설픈 중립 외교로 러시아 제재에 뒤늦게 동참해 화를 자초했다. 미국이 반도체 등 57개 품목의 러시아 수출을 차단하면서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면제 대상 32개국을 정했는데 한국이 빠졌다. FDPR은 제3국이 생산한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사용했다면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 조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연합(EU)과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은 미국에 준하는 독자 제재안을 내놓아 FDPR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은 동참을 하면서도 뜸을 들이는 바람에 반도체와 조선 등 주력산업 수출에 영향을 받을 상황에 처했다.

정부는 휴대전화, 자동차, 세탁기 등 소비재는 FDPR 적용의 예외에 해당한다는 미국 상무부의 유권해석에 안주해선 안 된다. 한국산 제품이 포괄적으로 FDPR 적용 예외 대상으로 인정받도록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 IFT)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조치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우리 기업과 금융사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와 무역협회, 기업과 금융사들이 긴밀하게 공조하며 대처해야 할 것이다.

가장 큰 걱정은 러시아발 에너지 가격 급등세다. 원유와 천연가스 외에도 2차전지 핵심 원료인 알루미늄·니켈 공급도 러시아 비중이 5~6%다. 코로나 사태로 불안했던 원자재 공급난이 러시아 변수로 요동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러시아 의존도가 20% 이상인 수입품목이 118개에 이른다.  

정부가 사태 초반 선제적으로 독자적인 러시아 제재안을 내놓지 않은 것은 북핵 문제 해결 등 남북관계와 러시아가 10대 교역상대국이란 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 갈등을 빚는 경우 한국은 그동안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과 중국ㆍ러시아 간 갈등이 ‘신新냉전’으로 불릴 만큼 심화하고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국익을 보호하거나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현안별로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 국익에 맞춘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3ㆍ9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가동 단계부터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를 중시하는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내각에 ‘경제안보부’를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해보자.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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