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4개월 만에 다시 가보니…
외국인 관광객 하나둘 눈에 띄지만
상인들은 실질적 체감 못해
잘 되는 업종 쏠림 현상은 숙제

다라락 다라락, 여행가방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저곳 카메라에 풍경을 담으려는 이들이 있다. 명동거리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이다. 지난 2년 자취를 감췄던 그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상인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명동거리 속으로 들어가 그 이유를 찾아봤다.

명동거리에 외국인 관광객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사진=연합뉴스]
명동거리에 외국인 관광객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사진=연합뉴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어요. 우린 그것보다 하늘길 열리는 게 더 중요해요.” 지난 3월 대통령 선거 직후 만났던 명동상권의 상인들은 입을 모아 ‘하늘길 열리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의 상인들은 혹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하늘길이 꽁꽁 닫힌 탓에 손님들로 북적였던 메인스트리트의 화장품 가게들은 간판을 뗀 지 오래고, 골목 안쪽은 문을 연 점포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4분기 4.3%였던 명동상권의 중대형 상가(3층 이상 또는 연면적 330㎡ 초과 건축물) 공실률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워가던 2020년 2분기 8.4%로 상승세를 보이더니 그해 4분기 22.3%로 치솟았다.

지난해 4분기에는 급기야 공실률이 50.1%를 기록했다. “명동 상인들만 힘든 것 아니다”고 꼬집는 이들도 있지만 서울 지역 중대형 상가의 평균 공실률이 10.0%라는 점을 감안하면 명동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상인들의 밥줄도 끊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은 상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다. 생계를 잇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하나둘 명동을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서, 힘차게 인사하던 옆가게 청년이 배달 오토바이를 몰고 낯선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도 “곧 괜찮아지겠지”라며 참고 견뎠다.

인내가 통했던 걸까. 지난 3월 21일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접종을 완료한 해외입국자의 자가격리를 면제했다. 법무부는 6월엔 필수목적 방문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단기방문 비자발급을 일반국가(Level 1) 외국인 대상으로 확대했다. 끊겼던 외국인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참고: 단기방문 비자발급이 확대되면서 일반국가(Level 1) 대상으로 법령에서 정한 단체ㆍ개별관광, 친지방문, 상용활동 등 모든 분야의 비자발급이 가능해졌다. 2020년 4월 6일부터 중단했던 우수인재, 외국인 환자, 단체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전자비자 발급도 재개했다. 이와 함께 2020년 4월 13일부로 정지됐던 단기 복수비자 효력도 살아났다.] 

그럼 지금 명동은 어떨까. 명동을 방문했던 그때로부터 4개월이 흐른 7월 15일 금요일 오후 다시 명동을 찾았다. 봄을 지나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명동거리 속으로 들어가봤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부터 명동예술극장, 그리고 다시 눈스퀘어로 이어지는 그곳 명동거리의 분위기는 4개월 전과 사뭇 달랐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였던 것도 이유였겠지만, 4개월 전보다 사람이 확실히 많았다.

무엇보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쇼핑백을 든 이들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드디어 명동거리에도 희망이 싹 트는 걸까. 그때 그 상인들을 만나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2년 전부터 평일 장사는 접고 주말에만 영업하고 있다는 식당 주인 우숙경(가명)씨를 만나러 가봤다. 3월에 기자는 “가을에는 좀 괜찮아지려나 모르겠다”는 우씨에게 “하늘길이 열리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었다.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지만, 하늘은 열렸다.

예고 없이 방문한 탓일까. 이날 우씨는 개인용무를 보러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지만 식당의 풍경은 그때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비어 있던 주방엔 두명의 종업원이 요리를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외국인 손님 두팀이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게 반가웠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빠져나가자 조리실에서 분주하게 요리를 하던 조선족 종업원 장순영(가명)씨가 기자를 반겼다. “이제는 손님이 좀 오나 보다”란 기자의 질문에 장씨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2년째 금~일요일에만 나와서 일하고 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손님은 없어요. 점심 때만 반짝해요.”


환전소는 어떨까. 누구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걸 빠르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지난 3월, “환전업이 금융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지난 2년 동안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김종석(가명)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 자리에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명동을 떠난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난 2년 동안 명동을 떠난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김씨뿐만이 아니라 건물 한쪽에서 세 들어 있던 그의 환전소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건물은 현재 전체 리모델링 중이었다. 김씨는 어디로 갔을까. 당시 받았던 김씨의 명함을 꺼내 연락을 취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근에서 상품권을 판매하는 서찬호(가명)씨는 변화를 체감하고 있을까. 그 역시 “아직 큰 변화는 못 느낀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하나둘 오긴 하나 보더라고요. 그럼 뭐해요. 여기까지 안 와요. 호텔에 짐 풀고 저쪽 백화점에만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에요.”

노점에서 인형을 판매하는 오정임(가명)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싣고 오던 관광버스는 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데 개별관광객을 실어나르는 택시가 최근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명동 인근 호텔들이 방값을 많이 내렸나 봐요. 손님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죠. 어제만 해도 택시가 여러 번 외국인 관광객을 근처 호텔에 내려주고 갔어요. 그런데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매상은 도통 오르지 않네요.”

두사람의 말처럼 호텔 숙박요금이 저렴해진 게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요인 중 하나라면 하나다. 같은 이유로 같은 위기를 보내고 있는 호텔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며 눈에 띄게 줄어든 투숙객 유치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숙박요금을 내렸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서울 소재 호텔의 객실 이용률은 78.15%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급습하며 객실 이용률은 36.21%로 떨어졌다. 호텔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 숙박객의 비중이 1년 사이 54.49%에서 21.69%로 줄어든 영향이 컸다. 

호텔의 자구책은 요금을 내리는 거였다. 2019년 13만2794원이던 객실 평균요금은 2020년 11만224원으로 다소 저렴해졌다. 그 이후 공식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요금이 거기에서 더 낮아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복세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공실률이 그중 하나인데, 지난해 4분기 50%를 넘었던 명동상권의 공실률은 서서히 개선되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분기 기준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는 40.9%, 소규모 상가(2층 이하 또는 연면적 330㎡ 이하 건축물)는 42.1%를 기록했다. 10%포인트가량 하락했다.

하지만 메인스트리트는 여전히 임대를 기다리는 점포들이 즐비하다. 해외입국자의 자가격리가 면제되고, 비자발급이 확대되고, 여행가방을 끄는 외국인 관광객이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점포들은 그대로다. 밀리오레 맞은편, 글로벌 SPA 브랜드 유니클로가 나간 자리는 아직도 비어 있고, 간판만 남은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처참하던 골목 안쪽 상황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지난 3월 기자가 명동을 방문했을 때 마주한 풍경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점포가 텅 비어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난해 4월부터 임시 휴업 중인 휠라 키즈 매장의 휴업 기간이 올해 말까지로 특정됐다는 점 정도다.

상인들은 회복세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사진=뉴시스]
상인들은 회복세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사진=뉴시스]

이곳에 내려앉은 침체가 아직 거칠게 숨 쉬고 있다는 거다. 상인들이 회복세를 실질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일까. 서찬호씨의 말대로 백화점에서만 지갑을 열기 때문일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명동거리 지척엔 롯데백화점 본점이 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성지다. 명동 호텔에서 숙박하는 관광객들이 명동거리가 아닌 백화점에서만 지갑을 연다는 말은 사실일까. 롯데백화점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1~2년 전과 비교하면 외국인 관광객이 서서히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과거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주요 고객이었다면 최근엔 동남아시아나 서구 쪽 개별관광객들이 백화점을 방문하고 있다. 그 덕에 면세점도 활기를 찾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 역시 유의미한 매출 회복 효과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유커와 따이공(보따리상)의 객단가가 워낙 높았던 탓이다. 그럼에도 백화점 관계자는 “회복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면서 “최근 K-문화에 관심이 부쩍 많아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입국이 증가하고 공실률도 개선되고 있는데 정작 상인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명동이 변화해야 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명동이 과거의 영광을 누리려면 기본적인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한다”며 “과도한 쏠림현상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슨 얘기일까.

김 대표는 우후죽순 생겨났던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을 예로 들었다. 다양성 없이 한 가지 업종으로 몰리는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은 그는 “업종과 상권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가 명동을 다시 방문했던 지난 7월 14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4만명에 육박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더블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방역당국은 8월 중순 하루 확진자가 최대 28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세종이 된 BA.5의 빠른 전파 속도가 국민들의 면역력 감소 시기와 맞물려 또 한번의 유행기가 올 거라는 거다. 이제 겨우 긴장을 푸나 싶었던 명동상인들이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곳의 봄은 아직 멀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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