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이슈로 배불린 대주주
지분 매각해 세금 내고, 빚 갚고
제약사 믿은 투자자만 손실

“제약·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이 붐을 일으켰던 2020년 주식시장에서 나돌던 말이다. 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주가 상승의 열매가 모두 투자자에게 돌아간 건 아니다. 주가 상승기를 틈타 주식을 매도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생각보다 많아서다. 그들이 하필 그때 주식을 팔아치운 이유는 뭘까.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소식으로 주가가 상승했던 2020년께 주식을 팔아치운 제약·바이오 기업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소식으로 주가가 상승했던 2020년께 주식을 팔아치운 제약·바이오 기업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는 ‘순풍에 돛 단 듯’ 상승기류를 탔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소식이 나돌면 주가는 어김없이 폭등했다. 그야말로 제약·바이오주 전성시대,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주가 흐름을 보인 곳은 ‘신풍제약’이었다. 

이 회사의 주가는 그해 2월부터 꿈틀거렸다. 신풍제약의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식약처 허가제품)’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였다. 주가는 곧바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해 2월 7000원대를 맴돌던 주가는 3월 1만원대를 넘어섰고, 6월 3만원대, 8월 10만원대로 치솟았다. 이후에도 신풍제약의 주가는 거침없이 상승했다. 2020년 9월 21일 사상 최고가인 19만8000원을 기록했다. 연초 주가가 6000원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8개월 만에 28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한 셈이었다.  

|하지만 신풍제약에 투자한 이들이 실제로 높은 수익을 거뒀는지는 의문이다. 2020년 12월 19만원을 기록했던 주가가 한달 후인 지난해 1월 10만원대로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를 보면, 신풍제약의 상승세만 보고 추격매수에 나선 투자자는 적지 않은 손실을 봤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인지 신풍제약을 통해 한몫 챙긴 세력이 따로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 다름 아닌 신풍제약과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송암사다.[※참고: 송암사는 부동산 임대업 등을 목적으로 2016년 설립된 신풍제약 지주회사다. 송암사의 최대주주는 신풍제약 창업주의 아들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신풍제약은 주가가 최고치를 기록하던 2020년 9월 21일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공시했다. “자사주 128만9550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 형식으로 매각했다.” 처분 가격은 주당 16만7000원, 이를 통해 신풍제약은 2154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챙겼다. 당시 신풍제약이 밝힌 자사주 매각 사유는 생산설비 개선과 연구개발(R&D) 투자금 확대였다. 하지만 이 돈의 용처用處가 실제로 그곳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다시 신풍제약의 2021년 사업보고서를 보자. 이에 따르면 자사주 매각대금을 사용하겠다던 생산설비 금액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고 연구개발비가 대폭 늘어난 것도 아니다. 신풍제약이 밝힌 연구개발비는 2020년 143억원(연구비+경상연구개발비)에서 지난해 382억원으로 239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자사주 처분 금액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1년 4월 신풍제약의 최대주주 송암사도 지분 200만주를 팔아 1680억원을 현금화했다.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2020년 5월)과 회사 임원(2020년 8월)도 지분을 매각해 각각 192억원, 8억원의 수익을 챙겼다. 신풍제약의 코로나19 치료재 개발 소식으로 배를 불린 세력이 따로 있었던 거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치료제 개발 호재를 이용해 최대주주가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한 것은 모럴해저드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지분 매각으로 마련한 자금을 회사에 쓰지 않았다는 건 신약 개발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심한 이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신풍제약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호재로 주가가 치솟은 2020년 무렵, 주식을 팔아치운 제약·바이오 기업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친인척)이 숱해서다.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기업의 주가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사진=뉴시스]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기업의 주가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사진=뉴시스] 

그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자. 부광약품의 주가는 치료제 개발 소식에 2020년 1월 1만4000원대에서 7월 4만원대로 상승했다. 주가가 4만원대를 돌파한 바로 다음날 정창수 부광약품 부회장은 257만주를 시간외 매매로 팔았다. 이 거래로 정 부회장은 1000 억원이 넘는 돈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부광약품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중단을 발표하기 3개월 전인 지난해 6월엔 김상훈 사장과 특수관계인 3명이 193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로 팔아 361억원을 현금화했다. 당시 부광약품은 증여세를 납부하고 부채를 상환하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뒷말이 무성했다. 투자자가 끌어올린 주식을 팔아 세금과 빚을 갚았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녹십자는 2020년 11월 회장은 물론 최대주주까지 줄줄이 지분 매각에 나섰다. 2020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 팔아치운 주식 수는 7만8000여주, 금액은 356억7000만원에 달했다. 회장과 최대주주는 모두 시간 외 대량매매가 아닌 장내 매도 방식으로 주식을 처분했다. 녹십자의 주가가 2020년 10월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8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는 걸 감안하면 가파르게 치솟은 주가를 이용해 주식을 매도한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소식에 2020년 2월 2만원대였던 주가가 6월 8만원대로 4배가량 치솟았던 일양약품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은 나타났다. 일양약품의 주가가 6만원대를 돌파했던 2020년 6월 최대주주의 친인척들이 5만5000주(우선주 24000주 포함)를 팔아치웠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임원들도 2020년 9월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아 18억원을 챙겼다. 당시는 유나이티드제약의 주가가 한달 만에 2만원대에서 10만원으로 치솟았던 시기다. 주가 상승세를 이용해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물론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주식 매도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주식 매각으로 마련한 돈을 어디에 썼느냐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대부분 부채를 상환하거나 세금을 내기 위해 주식을 매각했다. 회사의 성장과는 무관한 곳에 돈을 썼다는 거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현직 임원의 주식 처분이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감안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는 최대주주와 임원의 주식 매각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의 주식 매각 이후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제약·바이오 기업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2020년은 투자자들이 국내 제약사의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보고 투자에 나섰던 때”라며 “이 무렵 별다른 이유 없이 주식을 팔아치웠다면 투자자가 끌어올린 주가로 자신들의 배만 불린 셈”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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