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성과에만 목매는 한국
성과보다 연구가치 집중해야
기초연구 이젠 공공에 맡겨야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의 백신을 신속하게 개발하기 위해선 기초연구가 튼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네릭(복제약)을 만드는 데만 매진하고, 눈앞에 성과에만 매달린 탓에 기초연구가 부실하다. 세계에서 긴급사용허가를 받은 21개 코로나19 백신 중 국산 백신이 단 한개도 없는 이유다. 말 그대로 사상누각沙上樓閣이 가장 큰 문제란 얘기다.

미국 NIH는 성과보다는 연구가치를 중시한다. 연구자의 자유로운 연구가 보장되는 이유다.[사진=연합뉴스]
미국 NIH는 성과보다는 연구가치를 중시한다. 연구자의 자유로운 연구가 보장되는 이유다.[사진=연합뉴스]

“에볼라ㆍ사스ㆍ질병X(미지의 신종 감염병) 등 감염병이 앞으로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런 예측을 내놨다. 그로부터 2년 뒤 예언은 적중했다. 미지의 신종 감염병이 출현했고 순식간에 세계를 덮쳤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언제 또다른 질병X가 나타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ㆍpandemic)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신종 감염병으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 핵심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앞으로 어떤 감염병이 출현할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한발 앞서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 답은 ‘기초연구’에 있다. 기초연구는 최종 산물을 만들어내는 상업연구나 응용ㆍ개발연구와는 다르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업적 성과를 내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과학적 지식 향상을 도모하고, 학술적 의미에서의 연구가치만 보고 수행한다. 

그 때문에 기초연구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새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토대가 된다. 송대섭 고려대(약학) 교수는 “긴 호흡으로 원천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향후를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이런 기초연구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의약품산업에 투입되는 연간 연구비 중 기초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8%(2019년 1351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들의 기초연구 비중이 20~40%에 달한다는 걸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참고: 세계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21개(8월 10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중 국산 백신은 단 한개도 없다.] 

우리나라의 기초연구 기반이 약한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글로벌 제약사들이 만든 신약의 복제약을 만드는 데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게 기초연구다. 당연히 기존에 있는 약을 따라 만들기만 하는 덴 기초연구가 필요 없다. 

실제로 2019년 기준 국내 의약품 생산액 순위 20위 안에 국산 신약은 단 1개뿐이다. 상위 20개 의약품의 연간 생산액 1조3202억원 중 국산 신약 1개의 생산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4%(534억원)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개발된 국산 신약은 33개다. 그중 순위에 오른 게 1개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면 복제약 비중이 얼마나 큰지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기초연구가 부실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눈앞의 성과를 요구하는 우리나라의 펀딩 구조도 문제다. 이는 민간이든 공공이든 마찬가지다. 특허출원, 임상돌입 등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가 연구의 평가지표가 되고, 그에 따라 투자ㆍ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R&D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일정기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서 “정부의 지원 목적 자체가 새로운 분야나 없는 약을 개발하는 게 아니고, 대부분 상업적 목적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문제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기초연구는 특성상 긴 연구기간을 필요로 한다. 별다른 성과 없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높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지금의 분위기 속에선 기초연구가 이뤄지려야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도 “최종산물을 카피(copy)해서 생산하는 기존 구조에선 이런 방식이 통하지만 산업을 선도하고 신약ㆍ백신을 개발하려면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당장 성과를 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연구가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실패를 실패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부실한 기초연구를 튼튼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민간에만 맡겨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게 무엇보다 기초연구는 상업성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이윤 추구를 최우선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에 활발한 기초연구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고혈압ㆍ항암제를 비롯한 돈 되는 분야는 민간기업이 알아서 연구하지만 돈이 안 되는 감염병ㆍ항생제 등은 반드시 필요한 분야임에도 (민간에서의) 연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기초연구를 민간에 맡기면 좋겠지만 그동안 수십년의 역사에서 이미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민간기업이 하기 어려운 분야의 기초연구를 공공이 주도한다. 미국은 국립의학연구기관인 국립보건연구원(NIH)이 기초연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고, 유럽은 교육부터 연구까지 전 분야에 걸쳐 공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도 최소 미국의 NIH처럼 국가적 보건산업연구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재 국내엔 기초연구를 할 인력이 없다. 석박사 과정을 밟은 연구 인력이 모두 민간기업이나 미국 NIH로 취업하기 때문이다. NIH를 가려는 이유는 연구 인프라가 뛰어나고 펀딩 규모가 크다는 점도 있지만, 성과에 목매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다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백신주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길을 헤매고 있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 할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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