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중단 소식에 관련주 폭락
최대주주·특수관계인 수상한 매도
백신개발 호재로 누가 배 채웠나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께 ‘제약·바이오’란 간판은 그 자체만으로 호재였다. 그럴싸한 간판을 앞세워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나선 기업의 주가는 예외 없이 상승세를 타기도 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있었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임상 중단을 고려하거나 이미 백신 개발을 포기한 제약사가 숱하다. 당연히 끝 모르게 상승했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그사이엔 힘빠진 투자자만 남았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을 포기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 제약·바이오는 말 잔치만 무성하고 제대로 된 건 없다.” 국내 한 제약·바이오 상장사의 주식 토론방에 달린 투자자의 한탄이다. 투자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이렇게 비판한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국내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상황이 2년째 답보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기점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너도나도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여기엔 정부 정책도 한몫했다. 그해 2월말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코로나19 진단제·치료제·백신 등 개발을 위해 긴급 연구과제를 공모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제약·바이오 기업은 29곳, 개발 품목은 33개에 달했다(3월 22일 기준). 하지만 1년이 넘도록 개발을 완료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직 없다. 

현재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곳은 4개 기업이다.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GBP510)와 유바이로직스(유코백-19), 치료제는 신풍제약(파라맥스), 종근당(니파모스타트)이 임상3상을 진행 중이다. 이중 지난 3월 21일 질병관리청이 선구매(1000만회분) 계약을 체결한 SK바이오사이언스의 GBP510이 그나마 진행 상황이 빠르다.

[※참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1월 GBP510 임상3상 참여자 4000여명 모집을 완료했다. 이를 통해 올해 상반기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3월 22일에는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 임상 3상 시험계획(IND)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2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거다. 

문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포기하려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임상 중단을 선언한 기업도 적지 않다. 제넥신·큐리언트·대웅제약·부광약품·일양약품 5곳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았거나 부스터샷까지 접종한 인구의 비율은 각각 85.9%, 62.5%(이상 3월 20일 기준)에 이른다. 여기에 우세종으로 자리 잡은 오미크론의 치사율이 계절독감(0.01%)보다 조금 높은 0.14%로 알려지면서 엔데믹(풍토병) 전환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제약·바이오기업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다. 백신·치료제 개발을 포기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며 “어렵게 개발한 백신과 치료제의 경제성이 떨어진다면 백신·치료제 개발을 지속할 제약·바이오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임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제약·바이오 기업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며 “백신·치료제 개발을 포기하는 곳이 예상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주株에 돈을 넣은 투자자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제약·바이오 기업 중 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 적지 않아서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을 포기한 5곳도 국내 상장사다. 

임상 중단 소식에 주가 폭락

그럼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포기 소식은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참고: 지난 2월 11일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텔라세벡 임상 2상 중단을 발표한 큐리언트의 주식은 발표 당시 거래정지 상태였다.] 가장 최근 백신 개발 포기 소식을 전한 제넥신의 상황부터 살펴보자. 

지난 3월 11일 증시 마감 직후 제넥신 투자자는 혼란의 늪에 빠졌다. 제넥신이 공시를 통해 “인도네시아에서 진행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X-19N의 임상2·3상을 중단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제넥신은 보도자료를 통해 “세계 백신시장의 수급 상황을 비춰볼 때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해 글로벌 임상 시험에 돌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백신 접종률이 높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되면서 긴급성이 떨어졌다”고 임상 중단 이유를 밝혔다. 

당장 주가가 반응했다. 공시 다음날인 지난 3월 12일 제넥신의 주가는 전 거래일(4만7350원) 대비 11.52% 하락한 4만1850원에 장을 마쳤다. 백신 개발 중단 소식에 주가가 10% 넘게 떨어진 셈이다. 이는 제넥신의 주가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슈’ 덕분에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호재를 타고 치솟은 만큼 호재가 꺼지자 내려앉았다’는 건데,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제넥신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너무도 강한 자신감을 내비쳐왔기 때문이다.  

성영철 제넥신 회장은 2020년 2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2021년 초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엔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 출시를 위한 임상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2022년 9월 국산 코로나19 백신을 갖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제넥신의 자신감에 주가는 상승세를 탔다. 2020년 3월 6만원대를 기록했던 주가는 그해 9월 17만원대를 웃돌았다. 하지만 백신 개발이 차일피일 늦춰지면서 주가도 하락세를 탔고, 임상 중단 소식에 직격탄을 맞았다. 


백신·치료제 개발 포기가 악재로 작용한 곳은 제넥신뿐만이 아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3월 4일 코로나19 치료제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의 개발 중단 소식을 알린 일양약품의 주가는 하한가(-30.0%)를 기록하며 5만원에서 3만5000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코로나19 치료제 레보비르의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부광약품도 지난해 9월 30일 개발 중단을 발표했고, 그날 주가는 27.1%(2만600원→1만5000원) 떨어졌다. 

대웅제약은 2차례나 임상 포기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12월 예방 목적의 치료제 임상3상 중단을 시작으로 지난 3월 18일에는 경증과 중등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경구용 치료제(호이스타정)의 임상 2/3상을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이전까지 3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던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섰고, 공시 다음 거래일인 지난 3월 21일 6.86% 하락하며 장을 마쳤다. 

심각한 건 투자자 손실이 생각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을 중단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가 치솟은 게 임상 승인이 이뤄졌던 2020년 4 ~8월 무렵이기 때문이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는 이렇게 꼬집었다. “2020년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가 급등할 때 ‘추격매수’에 나선 투자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걸 감안하면 이른바 ‘고점’에 물린 투자자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야 경제성과 실익을 따져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중단했겠지만, 기업을 믿고 주가 하락세를 버틴 투자자는 손실만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웅제약의 주가가 20만원대를 웃돌던 지난해 12월 주식을 사들인 한 투자자는 “경구용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란 기대감에 1년 넘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며 “손실 금액이 커서 손절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연이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중단 소식에 불안함이 몰려온다. 더 늦기 전에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주식을 매도해야 할 것 같다.” 

개발 포기 제약사 늘어날 수도…

열풍이 지나간 자리엔 풀 한포기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 코로나19 백신·치료제 투자시장이 그렇다. 곳곳에서 ‘투자 포기’ 소식이 들려오자, 투자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그 사이 몇몇 최대주주는 큰돈을 거머쥐었다는 뒷말이 나돈다. 열풍이 또 상처만 남길지 모르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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