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의 재무설계 上

여기 자녀의 결혼자금을 마련할 방법을 고민 중인 부부가 있다. 부부는 자녀의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연금을 해지하는 등 ‘미래’까지 끌어다 쓴 상태다. 최소한 전셋값이라도 마련해주고 싶은데, 부부의 수중엔 그만한 돈이 없다. 지금으로선 부부가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해 돈을 마련하는 게 최선책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더스쿠프와 한국경제교육원㈜이 이 부부의 사연을 들었다.

자녀의 결혼자금은 대부분의 부부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녀의 결혼자금은 대부분의 부부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회사 상사의 자녀 결혼식을 다녀온 한희나(가명·45)씨는 결혼식장을 나오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행진하는 신랑에게서 언젠가 결혼할 외아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다. 20대 중반에 남편 이성환(가명·45)씨를 만나 갖게 된 아들은 어느새 훌쩍 커 올해 대학교에 입학했다. 군대는 물론이고 대학교 졸업과 취업도 남아 있는 만큼 아들의 결혼은 먼 미래의 일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아들이 독립해 집을 떠날 거란 상상을 하니 한씨는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론 걱정도 앞선다. 아들에게 결혼자금을 지원해줄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결혼을 앞둔 자녀에게 적어도 수천만원, 많게는 전세금 전부를 내줬다는 주변 지인들의 말도, 요새 전세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는 점도 그의 걱정을 키운다.


한씨는 “아이가 결혼할 때 과연 내가 제대로 지원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통장을 만들고 저축계획을 세우는 등 나름 노력도 해봤지만 목돈은 좀처럼 모이질 않았다. 공과금부터 관리비·식비·대출이자·자녀 학자금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지금보다 소득을 늘릴 방법은 없었다.

부부가 걱정하는 건 또 있다. 조금씩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부부는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한씨는 2년 전, 오랫동안 납입해 온 노후연금저축을 해지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의 사교육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썼다. 곧바로 20만원짜리 연금보험에 새로 가입하긴 했지만 납입기간이 줄어든 만큼 노후 대비책으론 충분하지 않다. 이밖에 2200만원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 잔액을 갚는 것도 부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부부에게 결혼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현재 사는 집(시세 5억2000만원)을 팔고 크기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수가 있는데, 부부는 이 방법까지는 쓰길 원하지 않는다. 집을 노후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있어서다.

부부의 희망사항은 간단하다. 결혼자금을 얼마나 도와줄 수 있냐는 아들의 질문에 당당하게 답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활하다간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낼지 모른다. 부부는 지금부터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가계부를 고쳐보기로 결정했고,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연을 들었으니 이제 가계부를 살펴보자. 중소기업을 다니는 부부의 월 소득은 571만원으로, 남편이 290만원, 아내가 281만원을 번다. 정기지출은 공과금 19만원, 생활비(식비 포함) 92만원, 통신비 26만원, 교통비·주유비 32만원, 보험료 81만원, 부부 용돈 80만원, 자녀 용돈 10만원, 부모님 용돈 20만원, 대출이자 7만원, 기부금 1만원, 신용카드 할부금 16만원, 회비 15만원 등 399만원이다.

1년간 쓰는 비정기 지출은 명절비·경조사비(연 20만원·이하 1년 기준), 각종 세금(110만원), 휴가비(100만원), 자동차 보험료(60만원) 등 290만원이다. 월평균 24만원을 쓰는 셈이다. 금융성 상품은 생각보다 많다. 적금 150만원, 주택청약종합저축 15만원 등 165만원이다. 이렇게 부부는 총 588만원을 쓰고 17만원 적자를 내고 있었다.

적자가 있다곤 하지만 부부의 재무상태는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저축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을 칭찬할 만하다. 부부는 매월 150만원을 총 4개의 적금통장에 나눠 저축하고 있는데, 각각의 통장엔 여름휴가(10만원)·비상금(20만원)·자녀 학자금(100만원)·대출상환(20만원) 등의 목표를 부여했다. 저축할 때 목표를 세우면 동기가 부여되고 구체적인 플랜을 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부부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녀 학자금과 여름휴가는 단기 목표에 해당한다. 따라서 부부가 붓는 적금의 상당수는 수년 내에 전부 소진된다고 봐야 한다. 부부의 고민거리인 결혼자금을 모으려면 저축액을 지금보다 더 늘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언급했듯 부부가 노후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점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보험료(81만원)엔 연금보험(20만원)이 포함돼 있지만 납입기간이 짧아 은퇴 후 수령액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부부는 ▲자녀 결혼자금 만들기 ▲대출금 전액 상환 ▲노후 월 300만원 연금 수령 등을 재무 목표로 정했다. 남은 2번의 재무상담으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솔루션을 세울 것이다. 이번 상담에선 가볍게 지출을 줄여보기로 했다.

타깃은 식비가 포함된 생활비(92만원)다. 3인 가구 기준으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액수지만 부부에겐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므로 줄여볼 생각이다. 요즘 배달음식의 배달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배달비만 7500원인 지역이 있을 정도로 배달비가 치솟고 있어서다. 이러니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횟수가 늘수록 과소비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맞벌이인 부부도 배달음식을 즐겨 먹는 편인데, 앞으로 횟수를 절반 이하로 줄여보기로 했다. 이렇게 생활비는 92만원에서 72만원으로 20만원 줄일 예정이다.

1차 상담이 끝났다. 부부는 생활비 절약을 통해 적자 17만원을 흑자 3만원으로 전환했다. 그렇지만 가계부에서 줄여야 할 군살은 여전히 많다. 보험료(81만원), 부부 용돈(80만원) 등 지출이 과한 항목이 몇몇 눈에 띄는데, 다음 상담 때 본격적으로 줄여보기로 하겠다.

글=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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