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3년 진통 끝에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
내년부터 현대차·기아 본격적 사업 개시
일정 기간 판매 대수 · 매입 조건 등 제한
기존 중고차 업계도 경쟁력 갖춰 나가야

현대차 · 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 논란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3월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되면서 대기업에도 기회의 문이 열린 거다. 다만 현대차 · 기아는 내년부터 중고차 판매업을 시작하지만 일정 기간 판매 대수, 매입 조건 등에서 제한을 받는다. 완성차업계는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플랜을 이미 마련해둔 분위기다. 중요한 건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가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하느냐다.

지난 3월 현대차·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공식화됐다.[사진=뉴시스]
지난 3월 현대차·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공식화됐다.[사진=뉴시스]

지난한 3년이었다. 중고차 시장을 둘러싼 기존 업계와 대기업의 줄다리기를 두고 하는 얘기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두고 논란이 시작된 건 2019년 2월부터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난 3월 17일, 마침내 이 논란의 종지부가 찍혔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거다. 이로써 현대차 · 기아 등 국내 완성차기업도 합법적으로 중고차를 사고 팔 수 있게 됐다.

완성차기업에선 이번 중기부의 결정이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완성차기업의 중고차 판매를 금지한 국가가 없는 데다, 수입차 브랜드는 진작부터 국내에서 중고차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서다. 

더욱이 SK엔카 · 케이카 등 대기업에 뿌리를 둔 회사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 있었다. 형평성을 고려하면 국내 완성차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필연적인 결과였던 셈이다.[※참고: SK엔카와 케이카 모두 SK그룹의 사내 벤처 회사로 출발했다. 이후 SK엔카는 2017년 11월, 케이카는 2018년 4월 각각 호주의 중고차 업체와 국내 사모펀드(한앤컴퍼니)에 매각돼 SK그룹과는 별개의 독자적인 회사가 됐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미친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허위매물, 불투명한 거래 시스템 등 소비자들의 불편사항이 속출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진 거다. 

이런 측면에서 중기부가 이제라도 중고차 시장을 개방하기로 결론 내린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업계 간 실익 없는 명분 싸움과 소모전을 끝내고, 소비자 편익을 제고하기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어서다. 

중고차 시장의 재편을 위한 9부 능선을 힘겹게 넘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중기부의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에 따라 현대차 · 기아는 내년 5월께나 중고차 판매를 시작할 수 있다. 

더욱이 내년에 현대차 · 기아가 가까스로 사업을 시작해도 까다로운 규제가 이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참고: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 제도는 정부에서 대기업에 일정 기간 사업의 인수 · 개시 · 확장을 연기하거나 사업의 품목 · 시설 · 수량 등을 축소하도록 권고하는 제도다. 단,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대기업도 중고차 판매 1년 유예    

그 배경에는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의 저항이 있다. 그동안 중고차 매매업계는 현대차 · 기아의 중고차 사업 개시를 최대 3년간 연기하고, 매입 · 판매 범위에 제한을 둘 것을 요구해 왔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는 사업 개시 연기와 매입 제한은 불가능하며 대신 시장 점유율에 제한을 두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갈등 끝에 중고차 매매업계는 지난 1월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를 막아달라”며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이후 중기부는 지난 2월부터 당사자 간 자율조정(2차례)과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자율사업조정협의회(4차례)를 개최하며 합의안 도출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두 업계의 입장 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중기부는 지난 4월 28일 사업조정심의회를 열어 ▲현대차 · 기아의 중고차 판매 사업 개시 1년 유예 ▲향후 2년간 중고차 판매 대수 제한 ▲향후 3년간 매입 조건 제한 등의 결론을 내렸다. 중기부는 “기존 중고차 사업자들의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대기업 진출에 따른) 소비자의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킬지 절충선을 찾는 데 많은 고심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중기부의 결정에 완성차업계와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완성차업계는 당장 중고차 판매를 시작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권고안을 따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엔 3년만 지나면 중고차 시장에서 별도의 제약 없이 ‘전면경쟁’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는 “사업 유예 및 판매 대수 제한 기간이 너무 짧다”며 중기부의 권고안에 반발하고 있다.

중고차 시장 성장 위한 경쟁력 필요 

관건은 향후 3년간 두 업계가 얼마나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완성차업계의 경우 이미 중고차 시장 선진화를 위한 마스터플랜(기본 계획)을 마련했다. 중고차 품질 검사 시 점검 항목을 200여개로 세분화해 상품 가치를 높이고, 중고차 관련 통합정보 포털을 구축해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에서 ‘중고차 가치지수’ ‘허위 · 미끼 매물 스크리닝’ ‘적정가격 산정’ 등의 정보를 제시해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여나가겠다는 복안이다. 문제는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다. 중기부가 권고안을 발표한 이후 기존 업계에선 별다른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카플레이션(Carflation · 자동차 가격이 치솟는 현상) 우려로 중고차 가격 상승세마저 주춤하고 있는 시점에서 언제까지나 정부의 결정을 물고 늘어질 수 없는 노릇이다. 현대차 · 기아의 시장 진출을 늦추기 위해 또다른 ‘수’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차·기아는 소비자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을 구축할 예정이다.[사진=기아 제공]
현대차·기아는 소비자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을 구축할 예정이다.[사진=기아 제공]

언뜻 대기업의 진출로 기존 중고차 사업자들이 위기에 처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중기부에서는 권고안을 내놓으면서 중고차 매매업계에 “3년이라는 사업조정 기간을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준비 기간으로 삼아달라”고 당부했다. 3년 동안 기존 중고차 업계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기존의 중고차 사업자들을 살릴 수 있는 건 업계에 몸담고 있는 종사자들 자신이다. 3년이란 시간을 최후의 기회로 삼고 시장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기존 사업자들에게도 승산은 있다. 반대로 대기업을 몰아내기 위해 3년을 허비한다면 기존 사업자들이 설 자리도 사라질 것이다. 

정부는 결론을 내렸고, 공은 업계로 넘어왔다. 이제는 중고차 업계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심혈을 기울여 고민해야 할 때다.


글=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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