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판매업자만 잘못했나 
정부ㆍ국회 법적 공백 해결 안 해
지자체, 단속 못 하나 안 하나 

# “자업자득이다.”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다시 지정해달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쏟아지는 소비자들의 비판이다. 불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중고차 딜러들, 이른바 ‘차팔이’ 때문에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숱해서다. 

# 자격 없는 딜러에게 호되게 당했던 한 소비자는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허위매물로 소비자를 우롱하고, 엉터리 중고차를 고가에 떠넘기다가 소상공인에게만 허락되던 중고차 판매업에 완성차 업체도 뛰어들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뭘 잘했다고 다시 자신들을 위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해 달라고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따져봐야 할 것도 있다. 중고차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 책임이 오로지 중고차 판매업자들에게만 있느냐는 거다. 아울러 정부, 지자체, 국회가 중고차 시장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완성차 업체가 뛰어들든 글로벌 기업이 깃발을 꽂든 중고차 시장이 정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중고차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다. 혼탁함을 걷어내면 의미 있는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소비자가 중고차 시장을 불신하게 된 건 중고차 판매업자들의 탓만은 아니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에도 책임이 있다.[사진=뉴시스]
소비자가 중고차 시장을 불신하게 된 건 중고차 판매업자들의 탓만은 아니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에도 책임이 있다.[사진=뉴시스]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길이 열렸다. 지난 3월 17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참고: 배제 이유는 ▲중요한 지정요건의 하나인 ‘규모의 영세성(소상공인 평균 매출액 등)’ 미충족 ▲중고차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 ▲완성차 업계 진출로 제품 신뢰성 확보와 소비자 선택폭 확대 ▲동반성장위원회에서의 부적합 의견 등이다.] 

중기부 발표보다 열흘 앞서(7일) 중고차 사업 계획을 발표한 현대차는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당시 ‘5년ㆍ10만㎞ 이내의 자사 브랜드 차량’ 가운데 ‘200여개 항목의 품질검사를 통과한 차량(인증중고차)’을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4월 18일에는 기아도 중고차 사업 전략을 내놨다. 기아는 중고차 구매 시 소비자가 차량 성능과 품질을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최장 한달간의 ‘구독 체험’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내세운 전략의 핵심은 ‘믿을 수 있는 중고차’를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거다. 

물론 길이 열렸다고 당장 진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정부가 중고차 시장을 열어주는 대신 완성차 업체들에 기존 중고차 판매업계와 자율조정 절차(기한 2022년 1월)를 진행하라는 미션을 전제로 깔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율조정 합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존 중고차 판매업계가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서다. 회전율뿐만 아니라 마진율도 좋은 ‘5년ㆍ10만㎞ 이내의 중고차’ 시장을 완성차 업체에 뺏기게 생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슈❶ 중고차 시장 불편한 현주소 = 중요한 건 소비자들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한국소비자연맹은 중고차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도 조사(2020년 12월)를 진행한 후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긍정적이라고 답한 이들은 66.0%에 달했다.[※참고: 보통은 22.3%, 부정은 11.7%였다.] ‘믿을 만한 차량의 성능 상태 점검결과를 제공할 것 같다(34.4%)’ ‘허위매물이 줄어들 것 같다(33.3%)’ ‘시세정보가 투명할 것 같다(16.4%)’ 등의 이유에서였다. 

사실 소비자 중 상당수는 중고차 딜러에게 농락당하기 일쑤였다. 허위매물에 속아 중고차 매매단지를 방문했다가 신통치 않은 중고차를 원래 가격보다 턱없이 비싸게 샀다는 경험담은 약과에 속하는 예다. 현장에서 중고차를 구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금이나 폭행을 당한 소비자도 적지 않다. 중고차 시장이 어느샌가 소비자가 불안감부터 느껴야 하는 비상식적인 마켓으로 전락했던 거다. 

이같은 후진적 시장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용 가능한 자원(중고차)을 최대한 재활용하면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득이다. 더구나 최근엔 반도체 수급 문제로 신차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중고차 시장을 정화함과 동시에 키워야 하는 명분과 필요성이 충분하단 얘기다. 

■이슈❷ 누구의 잘못인가 = 문제는 중고차 시장이 혼탁해진 원인과 책임이 중고차 판매업계에만 있느냐는 거다. 중고차 판매업계 관계자 A씨는 이렇게 꼬집었다.

“시장을 흐리는 이들은 대부분 정식 딜러가 아닌 데다 중고차 시장과도 관련이 없다. 실제 매물을 갖고 있지도 않은 이들이 불법으로 중개를 하는 바람에 정직하게 일하는 이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거다. 가령, 부동산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사기꾼들이 득실득실하다고 해서 부동산 시장 전체를 대기업에 내주진 않지 않는가. 오히려 정부(국토교통부)와 국회가 사기를 근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자체가 꾸준한 모니터링으로 사기꾼을 막는 과정이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시장을 흐리는 판매업자나 자격증이 없는 딜러, 이른바 ‘차팔이’를 뿌리 뽑기 위해 정부와 국회, 지자체는 지금껏 뭘 했느냐는 일침이다.

[※참고: 중고차 판매업계 관계자 A씨가 말했듯 법적 테두리에서 활동하는 딜러나 업체까지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르는 일부 딜러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논리적 결함이 있다. 그 일부 딜러의 중개 덕분에 중고차 판매업자들도 이득을 얻는 게 중고차 시장의 구조여서다. 다만, 이는 또다른 문제인 만큼 이번 기사의 초점은 정부, 국회, 지자체에 맞췄다.] 

허위매물을 단속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는 할 일을 제쳐둔 채 대기업의 시장 진출만을 대안으로 내세웠다.[사진=뉴시스]
허위매물을 단속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는 할 일을 제쳐둔 채 대기업의 시장 진출만을 대안으로 내세웠다.[사진=뉴시스]

A씨의 지적처럼 정부, 지자체, 국회는 중고차 시장의 고질병을 근절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먼저 정부와 지자체의 단속 사례를 보자.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들어온 중고차 관련 상담 건수는 4만3093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한국소비자원에 들어온 허위ㆍ과장광고 상담은 841건이었다.[※참고: 1372소비자상담센터는 10개 소비자단체,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16개 광역지자체가 참여하는 전국 단위의 통합 소비자 상담처리시스템이다.]  

하지만 2016~2020년 지자체의 중고차 불법매매 적발 건수(국토교통부 자료)는 1789건, 허위ㆍ과장광고 적발 건수는 87건에 불과했다. 2016~2017년 81건을 적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8년 이후엔 단속 실적이 거의 없다.

실제로 지자체는 2018년 5건, 2019년 1건을 적발하는 데 그쳤고, 2020년 적발 건수는 제로였다. 피해를 입는 이들은 숱한데, 정작 피해를 막아야 할 단속은 허술했다는 얘기다. A씨는 “지금도 포털사이트만 들어가면 허위매물이 차고 넘친다”면서 “(지자체들이) 단속을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슈❸ 단속 못 하나 안 하나 = 실제로 이 지점에선 의문이 생긴다. “의지 하나로 허위매물을 단속할 수 있을까.” “혹시 불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딜러들의 사기수법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서 단속을 못 하는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자체에 의지만 있으면 단속이 가능하다. 

실례實例를 보자. 2020년 6~7월 경기도는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들을 대상으로 허위매물을 집중 단속했다. 이를 통해 당시 중고차 매물 3096대 중 2946대(95.2%)가 허위매물이라는 걸 밝혀내고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자 경기도민의 중고차 매매 관련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2019년 58건에서 2020년 28건으로 확 줄었다. 

그렇다면 정부, 지자체, 국회는 지금까지 뭘 잘못해온 걸까. 언급했듯 지자체들은 허위매물 단속에 힘을 쏟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중고차 시장을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을 게을리했다. 

대표적인 게 중고차 성능점검기록부다. 이 기록부는 중고차의 이력을 정리해놓은 보고서다. 고장ㆍ사고 등의 이력까지 촘촘하게 기록돼 있다. 그런데 중고차 시장에선 이렇게 중요한 성능점검기록부를 정비업자가 아닌 자격미달 업자가 만드는 경우가 숱하다. 혹여 단속되더라도 처벌 규정이 없어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정부나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를 몰랐던 것도 아니다. 지난해 1월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하 당시 기준)이 성능점검자가 준수할 사항과 이를 위반할 때 처벌하는 규정을 명시한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년이 넘도록 국회 소관위 심사만 진행 중이다. 2018년에도 원유철 미래통합당 의원이 중고차 성능점검을 올바로 하지 않은 이들의 처벌을 명확히 하는 동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매매업자가 아닌 이의 매물 등록을 규제해 허위매물을 막는 개정안(2021년 5월), 성능점검자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를 소비자가 부담하는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개정안(2021년 10월) 등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이슈❹ 대기업 진출 만병통치약인가 = 그렇다면 완성차 업체 등 대기업이 진출하면 중고차 시장의 시스템이 개선될까. 꼭 그렇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 

현재 KB금융그룹은 KB캐피탈을 통해 ‘KB차차차(2016년)’란 중고차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플랫폼을 운영하지만 소속 딜러는 없다. 그야말로 중개업이다. 그런데 일부 중고차 딜러가 자신들을 ‘KB차차차 소속 딜러’라고 사칭하면서 영업하는 일이 적지 않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KB차차차 (소속) 딜러’ ‘KB국민차차차 딜러(KB차차차+국민차매매단지)’라고 소개하는 이들이 숱하다. ‘KB’라는 브랜드를 영업에 악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꼭 시장이 정화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KB캐피탈 관계자는 “KB차차차 플랫폼에 회원으로 가입한 딜러들은 있겠지만 ‘인증’이나 ‘소속’ 딜러는 없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브랜드를 도용하는 딜러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연락하거나 포털사이트에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포털사이트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데다 우리가 일일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무리가 있어서 브랜드 도용을 근절하는 게 쉽지는 않다.” 

물론 ‘200여개 항목의 품질검사를 통과한 차량(인증중고차)’을 판매하겠다고 밝힌 현대차처럼 완성차 업체가 직접 인증을 하는 시스템이라면 이전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현대차는 ‘5년ㆍ10만㎞ 이내의 자사 브랜드 차량’만을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여기에 속하는 차량의 비율은 전체의 30%가 채 안 된다. 중고차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5년 이상, 10만㎞ 이상의 중고차’는 기존 중고차 판매업자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면 완성차 업체가 진출해 선진화된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중고차 시장 정화’란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정화는커녕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새롭게 불거질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름 아닌 ‘완성차 업계의 독과점’ 문제다. 

완성차 업계를 대변하는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지난 2월 온라인으로 열린 자동차산업발전포럼에서 “2026년 기준으로 완성차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계산하면 최대 12.9%에 그칠 것”이라면서 ‘독과점 우려는 기우’란 주장을 펼쳤지만 상황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중고차 시장엔 ‘판매’만 있는 게 아니다. 매입, 폐차, 정비, 수출, 보험, 경매, 할부금융 등 다양한 영역이 뒤섞여 있다. 그동안 완성차 업체가 발을 뻗지 않은 영역은 판매와 폐차밖에 없다. 단순히 판매 영역의 시장점유율만으로 “독과점이 아니다”고 단언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어떤가.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더라도 시장이 변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듯하다. 그만큼 중고차 시장은 혼탁하고 불법과 편법의 기준도 모호하다. 정부, 지자체, 국회는 과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중고차 시장’을 개막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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