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저주거기준 괜찮나
일본 25㎡, 싱가포르 23㎡
국회에서 잠자는 법안들

우리나라엔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 면적을 정해둔 법이 있다. 최저주거기준이다. 말 그대로 최소치이긴 한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작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유도주거기준’이란 것도 마련해놨다. 하지만 구체성이 없어 효과가 아예 없다. 가령, ‘적절한 기준’이라고 써놓고 ‘적절한’의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저주거기준을 상향하고, 유도주거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됐음에도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 최저주거기준을 처음 만든 이후 2011년 단 한차례 상향했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는 2004년 최저주거기준을 처음 만든 이후 2011년 단 한차례 상향했다.[사진=뉴시스]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작은 집의 면적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는 법으로 그 최저선을 정해뒀다. 14㎡(약 4.2평)다. 주택을 팔기 위해선 14㎡ 이상의 면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당연히 존재해야 할 기준처럼 보이지만 2004년 이전엔 관련법조차 없었다.

2004년 처음 법으로 명문화한 최저주거기준 면적은 1인 가구일 때 12㎡(약 3.6평)였다. 이 면적은 2011년 한차례 개정되면서 14㎡로 커졌다. 7년 만에 고작 2㎡가 늘어난 셈인데, 공교롭게도 최저주거기준의 변화는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2011년에서 2022년이 되기까지 11년간 최저주거기준 면적은 1㎡도 커지지 않았다. ‘최저주거기준 면적을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현재 분양 중인 서울 오피스텔의 면적을 확인해보면 우리나라 최저주거기준 면적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7월 4일 기준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분양 중인 오피스텔은 총 7952실이다. 

그중 최저주거기준 면적인 14㎡를 간신히 충족하는 오피스텔은 168실로 전체 분양 오피스텔 실 중 2.1%를 차지한다. 나머지 77 84실은 최저주거기준 면적보다는 넓다는 건데 그렇다고 충분한 ‘집’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참고: 오피스텔은 업무시설로 분양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인 가구 민간 임대주택으로 자주 사용된다.]

그럼 우리나라 주변 국가들은 어떨까.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가장 비슷한 일본은 최저주거기준 면적을 25㎡(약 7.5평ㆍ1인 가구 기준)로 규정해뒀다. 국민 대부분이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최저주거기준 면적을 법적으로 정해두진 않았지만, 공공임대주택의 가장 작은 면적 23㎡(약 7평)가 사실상 최저주거기준 면적에 해당한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우리나라(14㎡)보다 최저주거기준 면적이 9~11㎡ 더 넓다.

일본 기준을 앞서 살펴본 서울 분양 오피스텔에 적용해보면, 36.0%(2862실)가 일본 최저주거기준 면적에 못 미친다. 우리나라 기준 2.1%보다 33.9%포인트나 많은 수다. 우리나라의 최저주거기준 면적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그만큼 작다는 방증이다. 

국회서 낮잠자는 법안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도 2015년 주거기준 면적을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유도주거기준’이다. 그해 제정된 ‘주거기본법’의 내용을 보자.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민의 주거수준 향상을 유도하기 위한 지표’로 유도주거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19조 1항)” “정부와 지자체가 주거정책을 수립하거나 시행할 때도 ‘유도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19조 3항)”…. 최저주거기준이 ‘최소한의 주거 조건’이라면 유도주거기준은 ‘이상향’인 셈이다.

[※참고: 유도주거기준이란 정의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일본 역시 유도주거기준과 비슷한 개념인 ‘적정주거면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유도주거기준’의 효율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유도주거기준’의 정확한 크기조차 설정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최저주거기준에서 더 나은 수준의 주거시설을 만들기 위한 목표치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최저주거기준은 구체적인 설비 기준을 정해두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의 최저주거기준은 구체적인 설비 기준을 정해두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일본의 적정주거면적 기준이 1인 가구당 40㎡(도시 기준ㆍ일반 기준은 55㎡)로 명시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1인 가구당 40㎡는 우리나라 최저주거기준 면적의 두 배 이상이다. 

물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국회에서도 여러 번 ‘유도주거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됐다. 2021년 2월 소병훈(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유도주거기준을 설정ㆍ공고할 수 있다’는 조문을 ‘유도주거기준을 설정ㆍ공고해야 한다’고 바꾸는 주거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송언석(국민의힘) 의원도 그해 11월 같은 내용이 포함된 주거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도주거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야 모두 한 셈이고, 정치적으로 대립할 만한 사안도 아니다. 그런데도 두 법안은 1년 넘게 소관 상임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참고: 최저주거기준 역시 마찬가지다. 2021년 7월 심상정 의원이 최저주거기준 면적을 25㎡(약 7.5평)로 상향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 또한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사실 우리나라 최저주거기준의 문제점은 크기만이 아니다. 이 기준은 ▲최소 주거면적 ▲용도별 방의 개수 ▲전용 부엌ㆍ화장실을 비롯한 필수 설비 기준 ▲안전성ㆍ쾌적성을 고려한 주택의 구조ㆍ성능 등 환경기준을 제시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적절한 방음ㆍ환기ㆍ채광 및 난방설비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그 ‘적절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규정하지 않았다. 

해외는 그렇지 않다. 미국의 주정부 대부분은 기준 미달 주택을 골라내기 위한 규정을 갖고 있다.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 특정 온도를 유지해야 하거나 레인지후드, 배수관 누수, 싱크대 등 주방에 있는 시설을 세분화해 상태를 확인하는 기준까지 있다. 

영국은 2015년 이후 만드는 주택의 최소 바닥 면적을 37㎡(약 11평)로 규정했다. 여기에 수도ㆍ현관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예시 기준이 있다. 샤워기의 수압은 1분에 10L가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게 대표적 예시다. 실제로 사람이 일반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주거 기준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최시억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유도주거기준은 현재 정책적 활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유도주거기준 설정을 의무화하는 것은 국민 주거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동물도 권장 거주환경 있는데… 

2022년 환경부는 동물원 수족관 관리 종합계획안을 근거로 법령을 개정한 후 동물 종에 따른 구체적 서식 환경을 지정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동물원은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동물조차 권장 거주 환경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에서 사는 일이 사라진다는 거다. 사람이 사는 집을 대상으로 한 최저주거기준은 작고, 유도주거기준은 모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선 1인 가구가 집을 찾을 때 ‘싱크대 수도를 틀어놓은 상태에서 샤워기 수압이 약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이 적당한 집을 찾는 꿀팁처럼 여겨진다. 최저주거기준 상향과 유도주거기준 설정을 이렇게 미뤄놔도 괜찮은 걸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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