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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 필수 요소인 ‘수신호’
청각장애인 위한 배려에서 출발

야구 경기에서 수신호는 없어선 안 될 필수 요소다.[사진=연합뉴스]

9회말 2아웃, 점수는 2대2 동점, 주자는 만루 상황. 타석에 선 타자가 배트를 힘껏 휘두르자, 3루에 섰던 주자가 홈으로 돌진하기 시작합니다. 그사이 수비수는 주자를 아웃시키기 위해 그라운드에 떨어진 공을 재빨리 주워 홈으로 송구합니다.  

“주자가 먼저냐 공이 먼저냐” 절체절명의 순간, 만원 관중의 눈길은 오직 한사람에게 쏠립니다. 두툼한 점퍼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한 남자가 양팔을 바깥으로 활짝 펼치며 이렇게 외칩니다. “세이프!” 끝내기 역전타에 그라운드는 용광로처럼 달아오릅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승패를 결정짓는 심판의 몸짓에 울고 웃었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만큼 야구 경기에서 심판의 수신호手信號는 없어선 안 되는 필수 요소입니다. 

만약 수신호 없이 심판의 콜사인(call signㆍ목소리로 보내는 신호)만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심판의 목소리는 수만명의 관중이 쏟아내는 환호성에 묻히고 말았을 겁니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심판의 손짓 덕분에 선수도, 코치진도, 관중들도 어떤 판정이 내려졌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야구 경기에서 수신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요? 때는 18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입성한 신인 선수 윌리엄 엘스워스 호이(William Ellsworth Hoy)는 어린 시절 뇌수막염으로 청각을 잃은 장애인 야구 선수였습니다. 그는 빠른 발로 도루와 득점을 해내는 뛰어난 타자였지만, 청각 장애 탓에 좀처럼 심판의 판정을 알아듣기 힘들었죠. 

호이는 고민 끝에 한가지 묘안을 떠올렸습니다. “손가락을 사용해서 스트라이크와 볼을 표시해 보면 어떨까.” 코치진과 함께 스트라이크는 손가락 한개, 볼은 손가락 두개로 표시하기로 약속하고 경기에 나선 호이는 이전 경기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그해(1888년) 호이는 내셔널리그 도루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죠. 

이를 계기로 메이저리그 심판들 모두 호이를 위해 수신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청각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도 수신호를 통해 쉽고 편하게 야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됐죠.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호이의 노력과 심판들의 따뜻한 배려가 모여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야구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글 =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기획 = 장훈이 배리어 프리 프렌즈 대표
일러스트 =정승희 배리어 프리 프렌즈 디자이너 
storkjh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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