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유정은 마보 대표
명상은 행복해지기 위한 훈련
머지않아 명상 문화 자리잡을 것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마음병을 호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심리상담 건수가 150만건을 훌쩍 넘어섰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이 때문인지 최근 명상앱을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부쩍 증가했다. ‘마음병’을 명상이 치유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풀이된다. 국내 최초로 명상앱 ‘마보’를 출시한 유정은(44) 마보 대표를 만나 현대인에게 명상이 갖는 의미를 들어봤다.

유 대표는 명상법의 하나인 ‘마음챙김’을 통해 명상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유 대표는 명상법의 하나인 ‘마음챙김’을 통해 명상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 마보. 2016년 국내에서 론칭한 앱의 이름이다. ‘마음보기’의 줄임말인 마보는 언제 어디서든 앱을 통해 명상을 체험하고 마음을 단련하는 게 골자다. 국내 최초로 명상을 다룬 앱이어서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누가 돈을 내고 명상을 하겠냐”는 혹평도 공존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긋지긋했던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보란 듯이 성장했다. 2018년 1억410만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4억5740만원으로 339.4%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해 9월엔 ‘가입자 36만명’ 돌파란 성과를 올렸다. 소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얘기다.

# 이 회사를 창업한 유정은 대표는 삼일PwC·엑센츄어·IBM 등의 ‘인사 컨설턴트’를 두루 거쳤다. ‘구성원’의 마음을 좀 더 잘 읽기 위해 선택했던 조직심리학 박사 과정(2012년)이 뜻밖에도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유 대표는 ‘마음챙김’의 중요함을 깨쳤고, 명상앱을 고안해 냈다. 이 때문인지 마보에서 제공하는 명상법은 여전히 ‘마음챙김’이다. 유 대표는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고, 그 일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기르는 게 마음챙김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 마보를 창업하기 전 컨설턴트 회사를 다닌 걸로 알고 있어요.
“네.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2004년부터 외국계 회사에서 8년 정도 컨설턴트 업무를 했습니다. 당시 제 관심 분야는 ‘리더십’이었어요. 리더가 어떻게 해야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가 늘 궁금했죠.”

✚ 컨설턴트와 명상, 왠지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처음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당시 제 업무는 클라이언트인 기업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 거였어요. 하지만 제 생각대로 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죠.”

✚ 내부에 말 못할 ‘벽’이 있었나요?
“음, 내부경쟁 중인 두 부서의 업무 효율을 높일 방법을 찾고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제가 내린 결론은 두 부서를 하나로 합치는 거였어요. 하지만 각 부서 리더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합치는 것’ 자체가 어렵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컨설팅 회사가 해줄 수 있는 건 사실 별로 없어요. 결국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때 깨달았죠.”

✚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조직을 바꾸려면 사람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2012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조직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았죠. 그러다가 ‘마음챙김’이란 또다른 영역을 알게 됐어요.”

✚ ‘마음챙김’이 뭔가요?
“박사 과정을 밟을 때 구글의 엔지니어였던 차드 멩 탄이 쓴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 책에선 ‘마음챙김’을 명상의 한 방법으로 다뤘는데, 굉장히 과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이었죠. 그때까지 제가 생각해왔던 명상과는 완전히 달랐죠. 정말 감동받았어요. 그래서 2013년 차드 멩 탄에게 직접 연락해 만나보기도 했죠. 그게 저와 명상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마보를 개발한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차드 멩 탄을 만난 후에 구글과 연이 닿았는데, 그때 구글에서 제공하는 ‘지퍼즈(gPause)’란 명상 모임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직원들이 명상한 시간만큼 회사에서 기부해주는 등 명상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모임이었죠. 그 모임의 긍정적 가치에 반해서 차드 멩 탄에게 국내에서도 이 모임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죠. 2015년 한국에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가 생겼을 때 제가 그곳에서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지퍼즈 모임’을 진행하게 됐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유 대표는 자신이 명상앱을 개발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구글 캠퍼스 명상 모임의 구성원 중 한명이 “유 대표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싶다”고 요청한 게 명상앱 개발의 계기가 됐다. 우연이었지만 필연이기도 했다.

✚ 그분은 왜 유 대표님의 목소리를 녹음하려고 한 건가요?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엔 ‘마음챙김’ 명상과 관련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프로그램이나 앱이 없었어요. 그래서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영어로만 들어야 했죠.”

✚ 유 대표의 좋은 목소리가 낙점을 받은 셈이군요.
“아, 그렇게 되나요?(웃음). 어쨌거나 그 모임 구성원들이 ‘우리가 명상앱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어요. 거기 모이는 분들 중에 개발자 출신들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마보앱 초기 모델이 만들어졌죠.”

✚ 그때 만든 초기 모델을 바탕으로 마보앱을 개발한 거군요.
“맞습니다.”

유 대표는 2016년 회사를 세우고 그해 7월 마보앱을 론칭했다. 모든 스타트업 창업자가 그렇듯 유 대표도 마보앱을 론칭하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추어 개발자, 갓 대학을 졸업한 디자이너 등을 수소문한 끝에 앱을 출시할 수 있었지만, 미숙한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특히 마케팅 분야는 유 대표에게 또다른 영역이었다.

✚ 앱 론칭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홍보가 문제였을 것 같아요.
“저희도 막막했어요. 아마추어들끼리 만나서 기획한 프로젝트였기에 모든 게 미숙했죠. 일단 크라우드펀딩 업체에 프로젝트를 등록하고 펀딩을 진행했어요.”

유 대표는 2016년 10월 와디즈에서 마보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목표 금액은 200만원, 큰 기대를 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해외만큼은 아니지만 국내에도 명상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겠지’란 기대를 품긴 했지만 한국이 ‘명상 불모지’란 건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반전이 일어났다. 한달 만에 1446만원의 펀딩 금액이 모였던 거다. 기존 목표액의 7배가 넘는 액수였다.

펀딩 성공으로 유 대표는 마보에 확신을 가졌다. “펀딩 사이트엔 남들보다 신제품을 빨리 구매하는 얼리어답터가 굉장히 많거든요. 마보가 그분들을 만족시키는 데는 일단 성공했던 거죠. 아울러 한국에도 제대로 된 명상을 하길 원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명상앱이 ‘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죠.”

마보는 어디서든지 손쉽게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명상 서비스를 제공한다.[사진=마보 제공]
마보는 어디서든지 손쉽게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명상 서비스를 제공한다.[사진=마보 제공]

그럼에도 한국에서 명상은 아직 생소한 분야다.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직장인 1000명에게 ‘정신건강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가’라고 물어본 결과에 따르면, ‘명상’은 11.7%라는 낮은 선택을 받았다.

✚ 명상을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현대인에게 명상은 왜 필요한가요?
“그 질문에 답하려면 일단 이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현대인은 왜 사는 걸까요?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걸까요?”

✚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맞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때론 고통을 참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잖아요. 명상은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라고 보시면 돼요.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고통의 원인을 찾아나가는 거죠. 이를테면 명상은 행복해지기 위한 마음의 훈련인 셈이죠.”

✚ 사색하는 건 혼자서도 가능하지 않나요? 굳이 마보앱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마보의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명상하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마보에 ‘일기 쓰기’ 기능이 있거든요. 이걸 보면 다른 사람들이 명상하고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볼 수 있어요.”

✚ 그게 중요한가요?
“혼자 하면 아무래도 귀찮아지고 포기하기 쉽잖아요. 그래서 마보의 ‘일기 쓰기’는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 유용하죠.”

✚ 마보앱엔 또 어떤 강점이 있나요.
“마보는 명상 프로그램에 신경을 많이 써요. 다른 명상 영상은 성우가 녹음을 하거나, 강사분들이 명상을 하지 않고 녹음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우리는 엄격하게 선별한 강사분들이 직접 명상하면서 던지는 코멘트를 녹음해 쓰고 있어요. 그래야 회원들이 더 명상에 몰입할 수 있거든요.”

✚ 마보 이용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많은 구독자께서 일기나 후기, 또는 메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시고 있어요. ‘정희’라는 분은 자신이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마보앱 덕분에 ‘처음으로 계절이 바뀌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꼈다’고 말해주시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도 힘을 얻고 책임감을 느끼죠.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 이용자들의 반응이 좋더라도 어쨌거나 ‘구독요금’은 부담스러운 영역일지 모릅니다.
“마보의 한달 구독료는 5900원이에요. 비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커피 한잔에 몇천원 더 보탠 금액만 내면 한달 내내 마보를 이용할 수 있어요. 맛보기 형태로 마보를 체험하는 게 가능한 샘플도 제공하고 있고요. 앞서 말씀드린 정희님의 사례처럼 마보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5900원이면 자신을 위해 한번쯤 투자해 볼 만한 금액이지 않을까요?”

✚ 지금은 앱 구독으로만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 있나요?
“아직은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미국은 3명 중 1명이 명상을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명상이 대중화가 됐거든요. 하지만 미국도 그렇게 되기까지 십수년이 걸렸어요.”

✚ 구독서비스만으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사례가 있어요. 해외 명상 앱 중 업계 1위인 ‘캄(Calm)’은 구독서비스가 주요 수입원인데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선정될 정도로 성공했어요. 물론 마보가 캄처럼 성장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보를 알려야 하죠. 그래서 지난해부터 투자 유치를 받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마보 이용자들의 진솔한 후기는 마보의 ‘콘텐츠 속 콘텐츠’다.[사진=마보 제공]
마보 이용자들의 진솔한 후기는 마보의 ‘콘텐츠 속 콘텐츠’다.[사진=마보 제공]

✚ 한국은 언제쯤 명상이 대중화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 PD님이 요청해서 명상에 관해 자문을 드린 적이 있어요. 출연자가 명상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연락을 주신 건데, 자문을 하면서 생각했어요. ‘아, 이제 명상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구나’. 저는 지금으로부터 한 5~6년 뒤엔 한국에서도 명상이 대중화할 거라고 보고 있어요.”

✚ 2022년이 절반 지났습니다. 올해 초에 세웠던 목표가 무엇인지요?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올해 목표는 앱을 소셜 커뮤니티로 발전시키는 거예요. 명상이 입소문 나려면 파급력 있는 커뮤니티가 꼭 필요하거든요. 이를 위해 앱의 개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략 50% 완성한 것 같아요. 그다음 목표는 마보를 한국을 대표하는 명상앱으로 만드는 겁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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