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 반도체 학과 증원이 상책일까❸
연구·개발, 대학 강의 책임질 브레인 양성 급선무

윤석열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교육부가 연일 액셀을 밟고 있습니다. “반도체 등 첨단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교육부는 특별팀까지 조직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는데요. 교육부는 가장 먼저 대학에 있는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핵심 두뇌 인력’을 확보하는 겁니다.

반도체 기업은 물론 학계에서도 석박사급 인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사진=SK 하이닉스 제공]
반도체 기업은 물론 학계에서도 석박사급 인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사진=SK 하이닉스 제공]

# 반도체 그리고 상상 =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봇, 사물인터넷(IoT)….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최첨단 산업의 목록입니다. 이름만 보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각 분야의 최신 기술을 융합하면 언젠간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침 7시. 오늘의 일정을 알리는 인공지능 로봇 ‘사만다’의 목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다. 출근 준비를 마치면 스마트폰으로 집안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을 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앱으로 미리 호출해둔 차에 탑승한다. 출근길 운전은 차에 맡기고 회의 자료를 보며 회사로 향한다.

단, 이를 위해선 각각의 IT기술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하드웨어(기계장치)’가 필수입니다. 그중에서도 없어선 안 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가 바로 반도체입니다. 

# 반도체 그리고 기술 = 사실 반도체는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가령, 빨래나 설거지가 귀찮은 날 식기세척기와 스타일러에 대신 일을 맡기는 것도, 테슬라의 전기차에서 자율주행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반도체 덕분에 가능한 일이죠. 

반도체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편의도, 삶의 질도 지금보다 더 높아질 공산이 큽니다. 이런 측면에선 가장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 기업이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죠.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최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 해 ‘초격차’ 전쟁을 벌이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참고: 초격차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 격차를 뜻합니다.] 

# 반도체 그리고 인재 = 주목할 점은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이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인재영입을 두고도 펼쳐지고 있다는 겁니다. 업계를 선도하는 혁신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연구ㆍ개발(R&D)을 책임질 수 있는 ‘브레인(두뇌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를 역으로 풀어보면, 초격차 기술 전쟁의 성패는 결국 반도체 기업이 보유한 브레인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국내 양대 종합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브레인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현재 시스템반도체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고도의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R&D를 수행할 수 있는 석박사급 인재 영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는데요.[※참고: 시스템반도체는 데이터를 해석ㆍ계산ㆍ처리하는 반도체로 AI, 자율주행 등 각종 첨단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꼽힙니다.]  

자! 바로 이 지점에서 최근 우리나라 정부가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을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6월 정부는 수도권 대학에 있는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지금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은 입사지원자의 모수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대안으로 여길 게 분명합니다. 

핵심 브레인 필요한 이유

하지만 여기엔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 최신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려면 R&D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석박사급 인재의 확보가 시급한데, 정부는 학부생을 늘리는 데만 정책의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도체 관련 학과의 학생 수가 증가하면 학부 졸업생 중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도 어느 정도 늘어날 순 있습니다. 문제는 R&D 인력이 필요한 곳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뿐만은 아니란 점입니다. 이들 대기업의 1차 협력사인 소부장(소재ㆍ부품ㆍ장비) 기업에도 R&D 인력을 확보하는 건 중요한 과제입니다. 

반도체장비를 제조하는 F사 관계자는 “소부장 기업은 대기업이 새롭게 개발한 선행기술에 맞춰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대기업의 니즈와 기술을 숙지하고, 이를 제품 개발에 반영할 수 있는 R&D 인력이 필수”라고 말했습니다.  

학계에서도 반도체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석박사급 인재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황철성 서울대(재료공학부) 교수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재 서울대 공대만 하더라도 반도체를 주력으로 연구하는 교수는 10여명 남짓에 불과하다. 학부생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생 숫자만 늘린다면 되레 수업과 연구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달리 말해, 교수로 양성할 수 있는 석박사급 인재풀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반도체 관련 학과의 학생 수를 아무리 늘려봤자 이들의 역량이 ‘기대수준’에 못 미칠 공산이 크다는 뜻입니다. 

김지훈 이화여대(전기전자공학) 교수는 “지금도 기업은 수개월간의 신입사원 OJT (On The Job Training)를 통해 업무 관련 지식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전문적인 대학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했죠.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반도체 업계에 석박사급 두뇌 인력이 필요한 이유를 총 세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대기업은 첨단산업의 필수품인 시스템반도체의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고도의 지식과 전문성을 가진 두뇌 인력을 영입해야 합니다.

둘째, 중견ㆍ중소 소부장 기업은 대기업의 선행기술에 맞춰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R&D 전문 인재를 확보해야 하죠. 셋째, 일선 대학에선 반도체 전공생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석박사급 인재풀을 키워야 합니다. 

이는 정부가 반도체 업계 지원책을 마련할 때 단지 외형을 확대하는 데만 집중해선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반도체 업계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대학 정원을 늘리는 건 반길 만한 대안이지만, 기업의 니즈와 교육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자칫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과연 정부는 산학産學 모두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최적의 ‘마스터플랜’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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