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 반도체 학과 정원 증원이 상책일까
윤석열 대통령, 반도체 인력 확보 ‘특명’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 계획
인력풀 넓힌다는 점에선 의미 있지만
인재의 질 높일 수 있는 방법 고민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에 ‘특명’을 내렸습니다. “반도체는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국가안보 자산”이라면서 반도체 전문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혁신안을 요구한 것인데요. 교육부는 그 첫걸음으로 전국 대학에 있는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부터 늘리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산업계에도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을까요?

정부는 반도체 업계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 반도체공장 방문 모습.[사진=뉴시스]
정부는 반도체 업계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 반도체공장 방문 모습.[사진=뉴시스]

최근 교육부에 때아닌 ‘반도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를 미래 대한민국의 전략자산으로 삼으면서 교육부에 관련 인력을 양성할 대책 마련을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최첨단 산업에 없어선 안 될 핵심 부품입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반도체 매출은 5559억 달러(약 665조1899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일상의 디지털화ㆍ자동화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런 반도체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는 지난 6월 16일 정부가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미래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적시에 공급할 수 있도록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고등교육(대학) 전반에 걸쳐 규제를 개편한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핵심이죠. 

그 일환으로 정부는 전국 대학이 보유한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부터 늘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세로 기업들의 인력 수요는 늘어난 반면 기업이 채용할 수 있는 반도체 전문 인재는 부족한 현실을 고려한 대책입니다.[※참고: 반도체 관련 학과에는 전기ㆍ전자공학과, 신소재공학과, 화학공학과 등이 있습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인력난에 시달렸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사(2016년) 결과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기업 10곳 중 5곳이 ‘직무수행을 위한 요건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반도체 업계의 인력 부족분은 연간 3000여명에 달합니다(한국반도체산업협회).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국내 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는 건 시급한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대학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 누적된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반도체 관련 학과의 학생을 제아무리 늘리더라도 연간 1만명에 이르는 기업들의 채용 규모를 충족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참고: 현재 반도체 관련 학과의 연간 졸업생 규모는 650명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특단의 조치(대학 정원 확대)’는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 확대가 기업들의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업계 선두기업인 삼성전자는 물론 중견ㆍ중소 반도체 기업까지 “인력풀(pool)이 커진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 배경에는 반도체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있습니다.

정부 대책 효과 있을까 

국내 양대 종합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황을 보시죠. 이들 대기업의 지난해 반도체 시설ㆍ설비 투자액은 각각 43조5670억원, 13조3640억원이었습니다. 1년 전과 비교해 삼성전자는 32.5%(2020년 32조8915억원), SK하이닉스는 47.0%(20 20년 9조890억원) 증가한 수치입니다. 

시설ㆍ설비 투자액이 늘면 반도체 생산 장비가 증가하고 이를 운용할 인력도 더 많이 필요해집니다. 실제로 2020~2021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액이 늘어나는 동안 양사의 반도체 인력은 각각 8.1%(5만9117명→6만3902명), 4.0%(2만8902명→3만56명) 증가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인력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공산이 큽니다. 두 회사 각각 경기도 평택과 용인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죠. ‘시설ㆍ설비 확대→운용ㆍ관리 인력 증가’란 공식을 감안하면 반도체 관련 학과를 졸업하는 ‘예비 지원자’가 많을수록 인력 충원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이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ㆍ중소 소부장(소재ㆍ부품ㆍ장비)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도체 업계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소부장 기업들은 대기업보다 더 큰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F사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현재 채용 시장에 공급되는 인력 중 99%를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더욱이 대기업에서 신입 채용으로도 모자라 경력직 채용을 늘리면서 중견ㆍ중소업체의 인력들이 대기업으로 대거 이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반길 만한 조치”라며 “인력풀이 커질수록 대기업 입사에 실패한 후 차선책으로 소부장 기업을 선택하는 지원자도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남아있는 과제 ‘인재의 질’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전국 대학에 있는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확대하겠단 정부의 계획은 산업계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대책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인재의 ‘양量’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인재의 ‘질質’입니다.

전배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정책실장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 수준과 입사 지원자들의 역량이 일치하지 않는 ‘미스매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기술집약적인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 인재나 뽑을 순 없다는 점이다. 반도체 기업마다 인력이 부족한 파트, 요구하는 인재 조건도 천차만별이다. (인력풀을 넓히는 것만큼) 기업이 원하는 ‘우수 인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반도체 기업이 원하는 요건을 갖춘 ‘우수 인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기업이 원하는 요건을 갖춘 ‘우수 인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익명을 요청한 반도체 기업의 관계자 역시 “인력풀이 커진다고 해서 기업의 기준에 들어맞는 인재가 무조건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면서 기업이 원하는 요건을 갖춘 인재 매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업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정부는 반도체 전문 인력의 양과 질을 모두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산업계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요? 이미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란 카드를 꺼내든 만큼, 현재로선 이를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다듬는 작업이 긴요해 보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 팩트체크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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