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올 들어 30여건… 빈번한 횡령범죄
부정의 징후 ‘레드 플래그’ 포착하고
명령휴가제 등 내부통제 수단 써야

극장가의 박스오피스 순위, 음원사이트의 ‘톱백(Top100)’ 순위보다 더 흥미진진한 순위가 등장했다. 국내 기업들의 ‘횡령 랭킹’이다. 올 초 오스템임플란트를 시작으로 연일 터지고 있는 횡령 사건에 누가 가장 많이 회삿돈을 빼돌렸는지 줄을 세워보는 ‘웃픈’ 상황이 벌어진 거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건 횡령범죄의 재발을 막는 것이다. 기업들이 레드 플래그(red flag)와 횡령 방지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올 들어 국내 기업들의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올 들어 국내 기업들의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올 초부터 터져나온 각종 횡령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단면을 보여줬다. 직장인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천하제일 횡령대회’란 이름으로 횡령범죄가 발생한 기업과 횡령 액수가 적힌 순위표까지 떠돌 지경이다. 

순위표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곳은 횡령범죄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던 치과용 임플란트 기업 ‘오스템임플란트’다. 이 회사의 횡령액은 연간 영업이익의 2배 수준인 2215억원에 달한다.

오스템임플란트의 뒤를 이어 우리은행이 횡령액 2위란 불명예를 안았다. 우리은행은 지난 4월 직원의 600억원대 횡령이 밝혀진 데 이어 5월 50여억원, 7월 24억원의 추가 피해정황이 드러나면서 총 횡령규모만 700억원대에 육박했다.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도 횡령순위 ‘톱텐’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는 7급 공무원의 공금(115억원) 횡령범죄가 발생한 강동구청, 또다른 하나는 수년간 85억원의 돈을 빼돌린 직원을 적발한 한국수자원공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 들어 발생한 30여건의 크고 작은 횡령범죄 중에는 생수(1만6128병ㆍ제주도개발공사), 포켓몬빵 스티커(600장ㆍ삼립) 등의 ‘현물’을 빼돌린 사건도 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회삿돈부터 이벤트성 굿즈까지 다양한 횡령 사례를 접하니 한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5000달러를 돌파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선 세계 10위(1조8239억 달러)를 차지하며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도 최근 더 많은 횡령사고가 터진 이유는 무엇일까. 

횡령 사고가 발생한 기업들을 살펴봐도 급여가 높고 복리후생이 좋은 안정적인 회사가 대다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횡령 범죄의 중심엔 내부직원이 있었다. 상식적으론 직장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부정不正을 저지른다는 걸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파괴적 부정’이 이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부정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부정의 유형부터 살펴보자. 부정이란 한마디로 사익私益을 위해 공익公益을 저버리는 행위다. 부정을 유발하는 요인으론 크게 ▲동기ㆍ압박(IncentiveㆍPressure) ▲기회(Opportunity) ▲자기합리화(Rationalization) 등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첫번째 동기ㆍ압박으로 인한 부정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급여ㆍ승진을 둘러싼 과도한 스트레스가 부정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두번째 기회를 틈탄 부정은 회사의 내부통제가 취약하거나 조직 내 비윤리적 관행이 만연할 때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자기합리화에 따른 부정은 업무 절차상의 문제나 조직문화 등을 핑계로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순간 나타난다. 

지금과 같은 파괴적 부정의 원인을 해석하려면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기회’를 따져봐야 한다. 쉽게 말해, 기업의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직원들에게 부정을 시도할 기회를 제공한 건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부정을 저지르는 직원에겐 반드시 징후가 있다. 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다른 직원들과는 다른 특징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동료들과 업무 공유하기를 꺼린다거나 본인의 업무 프로세스를 가능한 한 숨기는 식이다. 

그중에서도 강력한 레드 플래그(red flagㆍ위험 이전 나타나는 징조)는 따로 있다. 자신의 업무를 다른 동료 직원이 대신하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직원은 대체로 똑같은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하는가 하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휴가조차 떠나지 않는다. 주변에 이런 직원이 있다면 잠재적 부정행위자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부정은 은밀하면서도 치밀하게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징후를 포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레드 플래그를 발견했을 때 조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내부통제 수단으로는 직무순환시스템, 강제휴가제도 등이 있다. 

실제로 올 들어 끊이지 않는 금융권의 횡령 사고에 금융감독원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여기엔 은행의 ‘명령휴가제’를 강화한다는 방침도 포함돼 있다. 명령휴가제는 직원의 위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최소 2일 이상의 강제휴가를 보낸 후 (해당 직원의) 업무 수행 절차가 적정했는지 점검하는 제도다.

그동안 명령휴가제 대상은 금융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중요 업무’를 수행하는 임직원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우리은행농협 등 금융기관의 횡령범죄가 잇따르자 금감원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명령휴가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금융권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는 조치가 나왔다는 측면에선 분명 의의가 있다. 물론 일련의 제도와 시스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거다.

다만, 지금처럼 ‘천하제일 횡령대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선 작은 발걸음 하나도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횡령은 어쩌면 ‘작은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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