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붉은 점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할 것 같지만
환경 변하면 그마저도 위태로워

기후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기술로 기후위기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이마저도 확신하긴 힘듭니다. 윤석열 정부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내세운 원자력 발전도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습니다. 같이탐구생활 붉은점 4편에선 ‘기술맹신론’을 꼬집어봤습니다.

초현대식 빗물펌프장이 비 피해를 막아줄 것이란 기대는 무너졌다.[사진=뉴시스]
초현대식 빗물펌프장이 비 피해를 막아줄 것이란 기대는 무너졌다.[사진=뉴시스]

저는 한강대교가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8월 12일) 눈앞의 한강은 짙은 흙색인데다 수위도 평소보다 높습니다. 건너편에 있는 나무 키는 절반쯤 줄어든 것처럼 보입니다. 이틀 전 쏟아진 비 때문입니다.

8월 8일부터 9일까지 이틀간 서울에 쏟아진 강우량은 252㎜였습니다. 기상청이 집계한 공식 수치입니다. 과거 기록과 살펴보면 눈에 띄게 많은 수치는 아닙니다. 1920년부터 2022년까지 2일 이상, 하루에 100㎜ 이상 비가 온 날을 모두 살펴보면 400㎜ 이상 쏟아진 경우도 흔했습니다.

하지만 8월 8일부터 9일 서울, 특히 한강 이남에 쏠린 비는 ‘공식’ 기록보다 더 큰 충격을 줬는데, 거기엔 빈부격차와 부실행정이란 ‘고질병’이 숨어 있었습니다. 동작구 등 일부 서울 남부에는 쏟아진 비 때문에 반지하 주민들이 대피하지 못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높아진 수압을 이기지 못해 열린 맨홀 뚜껑 앞에선 배달 노동자들이 공무원 대신 위험을 알리며 시민들에게 “비켜 가라”고 경고했습니다. 빗물 배수로는 쓰레기에 막혀 있었고 시민들이 직접 손으로 치운 다음에야 막혀 있던 빗물이 빠져나갔습니다. 갑작스러운 호우도 호우지만 평소 대비를 게을리했던 행정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입니다.

이 때문인지 서울시는 빗물펌프장의 처리 능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2013년에도 빗물펌프장의 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적 있습니다. 당시 1시간당 75㎜의 빗물을 처리할 수 있었던 빗물 펌프장의 능력은 1시간당 95㎜로 커졌습니다. 10년 빈도로 오는 비 대신 30년 빈도로 오는 비를 감당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이번 폭우로 빗물펌프장은 1시간당 100㎜까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듯합니다.

그럼 진화한 기술로 더 좋은 설비를 만들면 이상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류는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자연에 맞서왔다. 늘 그렇듯, 기술의 진화는 자연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반론도 많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은 이전보다 더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만큼 위험을 예측하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기후위기로 자연이 변하는 속도를 기술이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자료도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시죠. “1960년 이후 20세기 후반, 추운 날 밤이 따뜻해지는(온난화) 빈도가 줄어들었다. 반면, 더운 날 밤이 더워지는(온난화) 빈도는 늘어났다. 고온, 열파(열의 파동), 호우도 늘어났다. 이들 모두 인간의 활동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 활동은 ‘탄소 배출’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에너지를 쓰며 탄소를 계속 배출하는 동안 폭염과 폭우는 더 잦아질 거라는 얘깁니다. 이상기후 탓에 날씨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엔 사례 한 토막을 살펴볼까요? 우리나라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원전 수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탄소를 배출하는 화력 발전량을 2050년까지 ‘0(제로)’로 만들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 참고: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실제로 펼쳤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 기사에선 여권의 시각과 정의를 인용합니다. 윤 대통령의 시각에 반론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그럼 윤 대통령의 생각대로 원전은 친환경의 대안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70%를 원전으로 충당하고 있는 프랑스의 사례를 보시죠. 프랑스는 지난 7월 트리카스탱 원전의 원자로 1기를 정지시켜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강물의 온도’였습니다. 냉각수로 사용해야 하는 강물 온도가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론을박 끝에 프랑스는 원자로를 멈추는 대신 2022년 9월 11일까지 한시적으로 원전을 둘러싼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강물로 다시 배출하는 냉각수 온도의 기준치(28~32도)를 끌어올린 겁니다.


프랑스 입장에선 절박했을 겁니다. 언급했듯 에너지 소비량의 70%를 원전이 충당하고 있어 원자로를 중지시키는 건 위험한 결정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 완화가 합리적인 선택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강물로 배출하는 냉각수 온도가 높아지면 강물은 더 쉽게 뜨거워질 겁니다.

이런 규제 완화가 반복되면 언젠가는 프랑스가 원자로를 정말 멈춰야 할지 모릅니다. 강물의 온도가 냉각수로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상승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는 간단한 사례이지만 원전이 화력 발전의 영원한 대안이 아니라는 걸 입증합니다. 기술 발전과 설비 증진이 기후위기의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냉각수로 사용하는 강물이 뜨거워져 원자로를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진은 프랑스 폐쇄 원자력 발전소.[사진=뉴시스]
프랑스는 냉각수로 사용하는 강물이 뜨거워져 원자로를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진은 프랑스 폐쇄 원자력 발전소.[사진=뉴시스]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은 이번 폭우와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차車’를 잃었지만 누군가는 생명을 잃었습니다. 낮은 주거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일수록 위험이 발생했을 때 피난하거나 그 위험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공교롭게도 그런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약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폭염 역시 마찬가집니다. 10년 전에 비해 6배나 늘어난 폭염은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입니다. 그만큼 기후위기의 위험이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기술의 진화로는 이상기후를 막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기후운동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정부의 빠른 변화를 촉구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정부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의 이윤만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묵묵부답인 정부와 또 다른 권력 집단을 향해 전 세계 시민은 다시 한번 기후 파업에 나섭니다. 올해 예정일은 9월 23일입니다. 기후운동가들은 ‘남은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이제는 너무 느긋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어제 벌어진 일들이 기후위기를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할 때입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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