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붉은 점
미래를 의심하는 사람들
대통령에게 보낸 3가지 요구

9월 23일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용산역 광장에 모였습니다. 기후위기 운동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중심이었지만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연령대는 다양했습니다. 이날 집회에서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체감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세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습니다. 아마도 지난여름의 기록적인 폭우가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그럼 윤 대통령은 답변을 내놨을까요? 

9월 23일 ‘우리도 위기가 보여’라고 말하는 시민들이 정부와 기업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9월 23일 ‘우리도 위기가 보여’라고 말하는 시민들이 정부와 기업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초등학교 때 ‘2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려보셨나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전 그때 기자가 아닌 천문학자를 그렸습니다. 지금 제 모습은 어릴 때 상상과는 다른 셈이죠. 그래도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20년 전 제게 ‘20년 후 나’를 상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미래를 알 순 없지만 미래를 의심해본 적은 없으니까요.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20년 후를 예상할 수 있으신가요? 지구는 온전하게 버티고 있을까요? 이 질문을 받은 어떤 이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지 모릅니다. 20년 뒤가 지금과 같은 세상일 거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난 9월 23일 금요일 용산역에 모였습니다. 20년 후의 자신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기후위기 운동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의 회원과 시민이었습니다. 기후위기를 두려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체감하는 사람들이 모였던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기후위기에 서둘러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날 세계 각지에서 모였습니다. 이날 모임은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뜻을 잇는다는 의미를 띠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어린 학생들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용산역 광장에선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호흡했습니다.

[※참고: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8년 8월 그레타 툰베리는 학교를 빠지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는 전세계 수백만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연령층이 기후위기 운동에 참여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지난여름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 폭우는 기후위기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걸 잘 보여줬습니다. 

사실 기후위기는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2년 3월 25일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을 시행하면서 공식적으로 기후위기를 인정했습니다. 이 시행령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30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그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게 기후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공언한 정부는 2024년까지 강원도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롭게 만들 계획입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건 모순矛盾입니다. 지난 9월 5만명의 사람들이 국회에 ‘석탄화력발전소 추가 건설 금지’를 요구하며 청원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용산역에 모인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학생들과 시민들은 이런 정부의 모습을 어떻게 볼까요? 시위에 참여한 중학교 3학년 박채은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가 걱정되는 게 아니라 화가 난다. 정부는 청소년을 미래라고 틈만 나면 언급하곤 하는데 지금 정부는 우리 안전조차 지켜주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

기후위기 앞에 선 이 학생의 말이 철없는 치기稚氣쯤으로 느껴지시나요? 아마도 누군가는 이런 주장으로 맞받아칠 겁니다. “에너지가 없다면 경제 발전이 불가능한데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만들지 말라는 건 과한 주장이다. 더구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는 어쩌란 말인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경제 발전이 없으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도 힘들테니까요. 

시민들도 이런 반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좀 더 넓은 의미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 김서경 활동가의 말을 들어보시죠. “석탄화력발전소를 하나 짓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쩌면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짓지 말자는 건 상징적인 주장일지 모릅니다. 지금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때입니다. 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기후 약자가 안심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를 마련해야 합니다.” 

청소년기후행동 입장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건 ‘탄소’를 줄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공기 중에 있는 탄소는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더라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기후는 당분간 변해갈 겁니다. “정부는 이런 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운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게 청소년기후행동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지난여름 폭우 때 피해를 입은 이들 중 대부분은 취약계층이었습니다. 여성환경연대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2022년 9월 발표)를 보면, 최근 5년간 폭염으로 상해나 피해(일사병ㆍ탈수ㆍ화상ㆍ피부질환 등)를 경험했다고 밝힌 응답자 중 74.5%의 월 소득은 100만원 미만이었습니다. 

그럼 용산역에 모인 청소년기후행동을 비롯한 사람들은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에게 어떤 요구를 했을까요?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요구는 2030년 탄소중립 감축 목표(NDC)를 2017년 대비 70% 이상 감축하자는 겁니다. 둘째는 1명의 전문가가 아닌 100명의 당사자가 기후위기의 현주소와 대안을 말할 수 있도록 논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점입니다. 셋째 요구는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겁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이 요구사항을 용산경찰서장을 통해 대통령실 국민소통비서관에게 전달했습니다. 거기까지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입니다. 윤 대통령은 기자들을 거의 매일 만나는 도어스테핑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날 용산역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만한 창구는 너무도 좁았습니다.

기후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즉각적 대응’을 요구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기후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즉각적 대응’을 요구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날 전달한 세가지 요구사항을 윤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요. 아직까지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정부가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청소년기후행동이 원하는 진짜 답변은 ‘고려해보겠다’ ‘기특하다’ ‘어른들이 미안하다’ 등등의 원론적인 말이 아닙니다. 이들이 바라는 건 명료합니다. 이날 용산에서 함께 있었던 고등학교 2학년 오민선 학생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겠습니다. 

“기후위기를 시민들에게 전가하지 마세요. 정부는 명확한 탈탄소 목표를 수립해야 하고 친환경 전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래 세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득을 줄 것이 분명합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더이상 학습된 무기력에 꺾이지 않도록 투명하고 속도 있는 변화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윤 대통령은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적절한 답을 내놓을까요? 지켜보겠습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