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의 재무설게 上

여기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부부가 있다. 사치품은 일절 사지 않고, 그 흔한 취미생활도 하지 않는다. 배달료가 비싼 배달음식을 멀리하고 주말엔 직접 요리도 해 먹을 정도로 열심이다. 그래도 가계부는 늘 마이너스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더스쿠프(The SCOOP)와 한국경제교육원㈜이 부부의 사연을 들어봤다.

요리로 식비를 줄이려면 체계적으로 식단을 짜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리로 식비를 줄이려면 체계적으로 식단을 짜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머, 이게 언제 상했지?” 냉장고를 열어본 안영희(가명·43)씨는 퀴퀴한 냄새를 맡고 깜짝 놀랐다. 냄새의 근원은 주말에 요리하려고 일주일 전 사뒀던 장어였다. 갑작스럽게 주말여행 일정이 잡힌 탓에 안씨는 장어를 제때 요리하지 못했고, 유통기한을 넘긴 장어는 금방 상해버렸다.

안씨는 냉동실도 열어봤다. 대게에선 상한 냄새가 풍겼고 소고기는 색이 변해 있었다. 회사원인 안씨는 평일엔 시리얼이나 빵으로 끼니를 간단히 때우지만, 주말엔 식재료를 사 직접 요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외식하는 것보다 식비를 더 아낄 수 있다는 말을 들어서다.

그럼에도 가계부는 좀처럼 적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안씨는 소고기·장어·연어·대게 등 평소에 값비싼 식재료를 산 게 적자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비싼 값에 식재료를 사놓고 정작 먹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충동적으로 식재료를 사지만 않았어도 적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안씨도 자신의 소비습관이 잘못된 걸 알고 있었지만,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부는 나름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보험료, 경조사비, 자녀(14) 학원비 등 지출이 다른 가정보다 컸다.

이사 문제도 있다. 아이 교육을 위해 안씨는 지난해 말부터 학원가에서 가까운 신도시의 아파트 매물을 알아보고 있다. 처음엔 아파트 분양을 노렸지만, 청약에 떨어져 매매로 집을 구할 생각이다. 하지만 안씨가 알아본 아파트 시세는 현재 사는 집(2억원)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나 비쌌다. 이전 같으면 대출을 받으면 그만이었지만,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해 그러기도 힘들다.

그래서인지 안씨는 남편 강희찬(가명·43)씨와 이사 문제를 두고 자주 옥신각신한다. 강씨는 안씨에게 “학원가가 많은 곳으로 이사한다고 해서 아이 성적이 오르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상담을 통해 들은 그의 속마음은 조금 달랐다. 남편은 직장 출퇴근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 이사를 위해 이전보다 부담스러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점 때문에 이사하길 꺼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무턱대고 이사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현재 부부는 수중에 적금으로 모아 온 1억5000만원이 있다. 남편은 이 돈으로 땅을 사뒀다가 나중에 집을 짓자고 아내에게 역제안한 상태다.

아내도 “앞으로 다가올 노후도 생각하자”는 남편의 제안이 나쁘게 들리진 않았다. 그 또한 40대 중반에 접어든 자신의 나이를 걱정하고 있어서였다. 부부의 정년은 남편 60세, 아내 55세로 앞으로 10년은 더 맞벌이 생활을 할 수 있다. 물론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부부는 결혼함과 동시에 연금저축에 가입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연금저축의 수익률은 5%에 불과했다. 부부로선 노후를 책임져 줄 ‘안전장치’가 더 필요했다.

하지만 아내는 자녀의 교육환경이 신경 쓰여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결국 부부는 재무상담을 통해 결정을 내리기로 했고, 필자의 상담실을 방문했다.

먼저 부부의 재무상태를 살펴보자. 둘 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부부의 월소득은 622만원으로 남편이 332만원, 아내가 290만원을 번다. 정기지출은 공과금 35만원, 식비·생활비 135만원, 휴대전화·TV·인터넷 요금 28만원, 주유비·교통비 25만원, 자녀 학원비 43만원, 부부 용돈 90만원, 보험료 60만원, 모임 회비 18만원, 의류비·미용비 40만원, 의료비 4만원, 신용카드 할부금 21만원, 여행비 22만원 등 521만원이다.

1년간 쓰는 비정기 지출은 명절비·경조사비 연 250만원(이하 1년 기준), 자동차 보험료 110만원, 각종 세금 80만원 등 440만원이다. 월평균 36만원을 쓰는 셈이다. 금융성 상품은 적금 50만원, 연금저축 20만원 등 70만원이다. 이렇게 부부는 한달에 627만원을 쓰고 5만원 적자를 보고 있다.

강씨 부부의 지출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다.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정기지출’과 1년에 걸쳐 쓰는 ‘비정기 지출’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정기지출에 포함된 여행비(22만원)다. 강씨는 “한달에 1~2번씩은 꼭 주말여행을 다녀온다”면서 이유를 설명했다.

별다른 취미생활이 없는 부부에게 주말여행은 한주간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장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출을 줄여야 하는 부부가 매달 적지 않은 돈을 여행에 쓰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반적으론 비정기지출에 있어야 할 의류비·미용비(40만원)를 정기지출에 넣은 것도 이상했다. 1년 기준으로 계산하면 480만원을 쓰는 셈인데, 이는 평범한 가구의 2배 정도 많은 액수다. 다음 상담 때 가계부를 대대적으로 손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상담에선 식비·생활비(135만원)만 조정했다. 언급했듯 부부는 식재료를 과하게 구매하는 소비습관을 갖고 있는데, 식단을 짜면 이런 습관을 고칠 수 있다. 하루에 먹을 양을 계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쓰고 남은 식재료를 다음 요리에 활용하는 등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서다. 필자의 조언대로 아내는 일주일 단위로 식단을 작성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고, 식비·생활비도 135만원에서 115만원으로 20만원 줄여보기로 했다.

이렇게 1차 상담이 끝났다. 부부는 식비·생활비를 20만원 절감해 총지출을 627만원에서 607만원으로 줄였다. 이에 따라 5만원이었던 적자는 15만원 흑자로 전환했다. 적자는 해결했지만 부부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디딘 것뿐이다. 정기지출과 비정기지출이 뒤섞인 가계부를 정리해야 하고,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있는 이사 문제도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해야 한다. 부부는 과연 효과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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